(청주 원도심 성안길) 성은 없어도 성안길이다
청주읍성은 백 년도 더 전에 헐렸다. 그런데 이 거리는 여전히 성 안쪽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8
- 골목
- 청주 원도심 성안길

청주 원도심을 아무리 걸어도 성벽은 나오지 않는다. 흙을 다져 쌓았다는 담장도, 성문이 있었다는 자리도 지금은 그저 평범한 도로다. 그런데 이 거리의 이름에는 여전히 성(城)이 들어 있다. 성안길, 성 안에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름의 유래는 어렵지 않다. 조선시대 청주목의 읍성이 이 일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성벽 안쪽을 가로지르던 큰길이 지금의 성안길이다. 성이 있던 자리, 성문 안쪽이었던 자리라는 뜻이 지명 하나에 고스란히 담겼다.
청주읍성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신라 685년에 서원소경이 설치되고 689년에 서원경성이 쌓였다는 기록이 이 자리의 시작을 알린다. 조선시대에 들어 흙으로 쌓았던 성벽을 돌로 고쳐 쌓았고, 그 공사는 1487년, 성종 18년에 마무리됐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 점령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이 성을 되찾은 것은 관군이 아니라 의병이었다. 성을 지키는 일도, 잃었다가 되찾는 일도 결국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의 몫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지켜낸 성이 정작 무너진 것은 전쟁이 아니라 도로 공사였다. 일제는 1911년 시구개정사업을 시작해 1915년까지 성벽을 헐었다. 헐어낸 돌은 하수구를 만들고 길을 넓히는 데 쓰였다. 성벽이 있던 자리에는 길만 남았고, 그 길에는 본정통(本町通)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안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자리
본정통이라는 이름은 해방 이후에도 오래 쓰였다. 그 이름이 일본식 지명이라는 자각이 퍼진 것은 1990년대였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바른지명찾기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본정통 대신 성안길이라는 이름이 이 거리에 다시 붙었다. 성벽은 이미 사라진 뒤였지만, 성 안쪽 길이라는 뜻만은 이름으로 돌아온 셈이다.

해방 이후 이 길을 중심으로 관청과 은행, 상점이 모여들었다. 행정과 금융, 시장과 문화가 한곳으로 집중되며 성안길은 청주 원도심의 상권으로 몸집을 키웠고, 1970년대를 지나며 행정기관과 금융점포, 로드숍이 촘촘히 들어찼다. 한때는 연매출 1조 2천억 원대를 올리는 로데오 상권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 성안길을 걸으면 그 시절의 흔적과 최근에 들어온 가게가 나란히 서 있다. 기와지붕을 얹은 소금빵집이 전선이 어지럽게 늘어진 간판 거리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고, 바로 옆 건물에는 커피 프랜차이즈의 노란 간판이 걸려 있다. 성 안쪽 길이라 불리던 자리에, 지금은 성 대신 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성 안쪽 길, 지금은
국민은행남문지점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백화점과 영화관이 있던 상업지구였고, 남쪽은 석교동시장과 육거리시장 같은 재래시장이 이어졌다. 한 길이 두 얼굴을 가진 셈인데, 최근 이 거리의 사정은 예전만 못하다. 외곽에 새 상권이 들어서면서 원도심은 서서히 비어갔고, 성안길도 그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청주시는 육거리시장과 성안길, 소나무길을 하나의 벨트로 묶어 되살리겠다며 168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고, 그중 40억 원이 성안길상점가로 향한다. 성벽 없이도 이름을 지켜온 이 거리가, 상권 없이도 그 이름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길은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의 뜻을 다시 증명해야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