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원도심 성안길) 성안길에서 보자는 말
청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성안길은 오랫동안 약속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도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얼굴이 눈에 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2.15
- 골목
- 청주 원도심 성안길

청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 거리를 이름 대신 다른 말로 부르곤 한다. 성안길에서 보자는 말. 학창 시절 친구를 기다리던 자리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약속을 잡는 자리도 대개 이 거리 어딘가였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에게는 그냥 쇼핑 거리 하나로 보일지 몰라도, 이 거리를 오래 다닌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약속이 쌓인 장소다.
보행자 거리로 들어서면 바닥부터 다르다. 차량이 다니던 시절의 흔적인 화살표와 차선 표시가 아직 아스팔트 위에 남아 있고, 그 옆으로 주황색 안전 콘이 줄지어 서 있다. 휴대전화 매장과 전자담배 가게, 오래된 병원 간판이 한 건물에 층을 나눠 걸려 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가로등마다 배너 깃발이 걸려 있다. 이번엔 청주의 밤을 빛으로 물들이는 행사를 알리는 깃발이다. 그 아래로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간다. 옷가게 진열창 안 마네킹은 정장을 입은 채로 거리를 내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그보다 훨씬 가볍다.
그 깃발이 알리는 행사는 국가유산 야행이라는 이름으로 가을마다 열린다. 성안길과 그 주변 골목을 빛으로 물들이는 밤 행사인데, 낮에 진열창을 들여다보던 발걸음이 밤에는 조명 아래를 걷는 발걸음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같은 거리인데 해가 지고 나면 표정이 조금 달라진다.
여름 한 철, 다시 2000년대가 된 거리
2026년 여름, 이 거리는 이름 그대로 성안이즈백이라는 축제로 들썩였다. 음악과 춤이 골목 구석구석에서 펼쳐졌고, 오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공연 앞에서 잠시 멈췄다. 사람들은 이십 년 전 감성을 옷차림으로 불러와 이 거리를 다시 걸었다.

축제가 끝나면 거리는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명절 연휴에 혼자 청주를 찾은 어느 여행자는 이 거리를 느긋하게 걷고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적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것이 이 거리가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골목 한켠에는 기와지붕을 얹은 작은 가게가 있다. 원래 이 자리에 없던 형태의 건물이지만, 전선이 어지럽게 늘어진 간판 거리 안에서도 이상하게 자리가 어울린다. 입구 양옆에는 옹기 항아리가 놓여 있고, 그 옆 건물 옥상에는 청주호떡과 부산어묵을 함께 판다는 간판이 걸려 있다. 기와지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통 방식으로 지은 가게와, 철골 구조물 위에 세운 간판이 나란히 서 있는 셈이다.

휴대전화 매장 유리문에는 오늘 개통 조건을 적은 전단지가 붙어 있고, 전자담배 가게 옆으로는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킨 듯한 오래된 병원 간판이 걸려 있다. 새로 생긴 가게와 오래 버틴 가게가 한 건물 안에서 층을 나눠 쓰는 풍경은 이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지금도 이 거리 어딘가에 서 있다. 휴대전화로 정확한 위치를 주고받는 시대에도, 성안길에서 보자는 말은 여전히 통한다. 이름이 가리키는 자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약속, 그것이 이 거리가 오래 지켜온 역할일 것이다. 약속 장소로 이 거리를 대는 사람이 있는 한, 성안길이라는 이름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