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명주동 커피거리) 카바레였던 자리를 헐지 않기로 했다
명주라는 이름은 천 년 가까이 강릉을 대표하던 행정의 중심이었다. 시청이 떠나고 골목이 빛바랜 뒤, 이 자리를 다시 채운 것은 낡은 건물을 헐지 않기로 한 결정들이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5
- 골목
- 강릉 명주동 커피거리

명주동 골목 한켠에는 오월(五月)이라는 이름을 단 카페가 있다. 이 자리는 원래 카바레였다. 건물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 올리는 대신, 뼈대를 살리고 안쪽만 고쳐 복고풍 카페로 다시 열기로 한 것이다. 이 골목에서 일어난 일들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대개 이런 식이다. 헐지 않고 고쳐 쓰기로 한 결정들이 쌓여 지금의 풍경이 되었다.
카바레였던 골조를 카페로 되살리는 일이 간단했을 리는 없다. 유흥업이 남긴 흔적 가운데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길지 하나하나 가려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 그 결정을 내렸고, 그 덕분에 이 자리는 완전히 새 건물이 아니라 예전 뼈대 위에 새 쓰임을 얹은 자리로 남았다.
명주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런 겹침의 결과다. 신라 시대 강릉은 명주(溟州)라 불렸다. 신라가 전국을 아홉 개 주와 다섯 개 소경으로 나누었을 때 그 아홉 주 가운데 하나였고, 명주군왕 김주원이 이 자리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고려에 들어서는 이름만 동원경, 하서부, 명주도독부, 명주목으로 몇 차례 바뀌었을 뿐 행정의 중심이라는 역할은 그대로였다. 지금 골목 이름에 남은 명주라는 두 글자는, 이 동네가 한때 강릉 전체를 대표하던 자리였다는 사실을 가장 짧게 요약한 표지인 셈이다.

행정이 떠난 자리
그 중심이 흔들린 것은 강릉시청이 이 골목을 떠나면서다. 행정의 무게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자 명주동은 오래도록 빛바랜 골목으로 남았다. 걷는 사람이 줄고 간판이 낡아 가는 동안에도 건물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구도심이라는 말이 흔히 그렇듯, 한때 중심이었다는 사실은 당장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 시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명주동을 지날 때 일부러 걸음을 서두르곤 했다고 말한다. 불 꺼진 상점이 늘어선 골목은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자리였다.

낡은 것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사람들
이 골목이 다시 사람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은 남아 있던 건물들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방앗간으로 쓰이던 자리, 세탁소였던 자리, 백 년을 넘게 버틴 적산가옥까지, 저마다 다른 오너가 저마다의 감성에 맞춰 카페와 갤러리로 고쳐 썼다. 한 회사가 기획해 한꺼번에 밀어붙인 결과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건물 하나씩을 살려낸 결과라는 점이, 이 골목의 재생을 구도심 재생의 한 모델로 꼽히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곡식을 빻던 자리에 원두 그라인더를 놓았고, 누군가는 세탁물을 널던 자리에 그림을 걸었다. 업종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건물이 서 있던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16년에는 강릉문화재단이 이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행정기관 하나가 옮겨 왔을 뿐인데, 그 뒤로 골목골목에 문화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갤러리가 하나 늘 때마다 그 옆 건물도 비슷한 결을 따라가는 식이었다.
같은 도시, 다른 커피
강릉이라는 도시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커피는 이 골목보다 먼저 시작된 이야기다. 1980년대 강릉항 일대에서 택시 기사들이 자판기 커피를 즐기던 것이 이 도시 커피 문화의 첫 장이었다고 전한다. 그 소박한 습관은 2002년 은행원 출신 김용덕이 테라로사를 세우면서 스페셜티 커피로 옮아갔고, 강릉시는 2009년부터 국내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커피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명주동의 카페들은 이 흐름의 한복판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구도심을 고쳐 쓰는 작업의 결과로 뒤늦게 합류한 쪽에 가깝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지나면서는 해안가에도 커피전문점이 무더기로 문을 열어, 강릉은 도시 전체가 커피로 이름을 얻었다. 바다를 낀 그 거리들과 명주동은 같은 도시 안에서 커피를 파는 방식이 다르다. 한쪽은 파도를 앞에 두고 새로 지어졌고, 명주동은 시청이 떠난 자리에서 낡은 벽을 그대로 두고 고쳐 썼다. 관광객은 대개 바다 쪽 커피거리를 먼저 찾는다. 명주동까지 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검색으로 이 낡은 골목의 존재를 미리 알고 오는 경우가 많다. 우연히 지나치다 들르기보다는 이름을 찾아서 오는 자리에 가깝다.
오월이라는 이름을 단 카페의 손님들은 아마 이곳이 카바레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커피를 마실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명주라는 이름이 천 년 가까이 살아남은 것도, 뜻을 다 아는 사람보다 그냥 그 이름을 쓰는 사람들 덕분이었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