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다리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
밀물 때 배를 대던 다리는 이제 없다. 그런데 이 골목은 여전히, 무언가를 건너게 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7
- 골목
-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배다리라는 이름은 지도에 다리가 없어도 남는다.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에 밀물이 들면 바닷물이 골목 깊숙이 들어왔고, 그 물을 건너려면 배를 대어 만든 다리가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배다리라 불렀고, 다리가 사라진 지금까지도 이름만은 그대로 걸려 있다.
지금 이 골목에 물은 없다. 갯골은 오래전에 메워졌고, 그 위로 철길과 도로가 지난다. 그런데도 이 골목을 걷다 보면 여전히 무언가를 건너는 기분이 든다. 다리가 없어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쪽과 저쪽을 잇고 있었다.
책이 아니라 성냥이 먼저였다
지금은 헌책방으로 알려진 이 골목이지만, 정작 일제강점기의 배다리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1917년, 지금의 금곡동과 창영동 일대에 조선인촌주식회사가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이었다. 인촌(燐寸)이라는 옛말은 도깨비불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는데, 성냥 한 개비가 그만큼 낯설고 신기한 불이었던 시절의 이름이다.

성냥을 만드는 일은 공장 담장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배다리에 살던 사람들이 성냥갑을 붙이고 성냥을 포장하며 공장과 함께 살아갔고, 1921년에는 이곳 노동자들이 착취에 맞서 동맹파업을 벌였다. 인천 지역 노동운동의 시작으로 꼽히는 일이다. 지금 그 공장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골목 한쪽의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이 그 자리를 대신 기억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만든 책방
배다리가 책방골목이 된 것은 그보다 뒤의 일이다.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두고 간 책이 고물로 쏟아져 나왔고, 뒤이은 한국전쟁은 살던 곳을 잃은 사람들을 이 골목으로 불러들였다.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수레에 책을 싣고 나와 팔았고, 그 책을 사려는 학생과 시민이 모여들며 노점이 골목의 형태를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집현전은 1953년부터 이 자리를 지켰고, 아벨서점은 1973년에 문을 열어 지금껏 곽현숙 대표가 오십 년 넘게 책방을 건사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마흔 곳이 넘는 헌책방이 이 골목에 늘어서 있었다.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세 손가락 안에 꼽히던 헌책방거리였다.

지금 남은 책방은 대여섯 곳 정도다. 시절을 따라가지 못하고 줄어든 숫자만 보면 이 골목은 저물어가는 곳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대여섯 곳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문을 연다. 줄어들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골목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골목 바로 곁에는 이 도시의 다른 기억들도 쌓여 있다. 1897년 경인철도 공사가 처음 시작된 우각역 옛터, 1892년 문을 연 영화학교, 1907년 개교한 창영초등학교가 모두 걸어서 닿는 거리에 모여 있다. 책방 하나만 지키는 일이 아니라, 이 밀도 높은 근현대의 흔적을 통째로 지키는 일이었던 셈이다.
사라질 뻔한 골목
1998년부터 이 골목을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건설이 추진됐다. 주민과 시민단체는 역사와 문화를 지닌 마을이 도로에 잘려 나간다며 십 년 넘게 반대했다. 2009년에는 일부 구간을 지하로 넣기로 결정됐고, 그 뒤로도 오랜 논의 끝에 2022년에야 해결 국면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골목 하나를 지키는 데 이십 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도로 문제가 가라앉은 뒤 인천 동구, 지금의 제물포구는 이 일대를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로 가꾸는 사업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배다리 에코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옛것을 밀어내지 않는 또 다른 골목 재생의 방식을 제안해왔다.
지금 이 골목
몇 해 전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이 한미서점 안에서 촬영됐다. 그 뒤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발걸음이 늘었다. 해방 이후 국내 최초의 문예지로 꼽히는 문예탑과 동화세계가 태동한 곳도 이 골목이었고, 소설가 박경리가 이곳에서 헌책방을 연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냥을 만들던 사람들, 책을 팔던 피란민들, 도로에 맞서 골목을 지킨 주민들, 그리고 지금 카메라를 든 이들까지 이 좁은 골목을 거쳐 갔다.
다리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 골목은 처음부터 다리였는지도 모른다. 조계지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이어 붙이고, 전쟁으로 흩어진 이들을 책 한 권으로 이어 붙이고, 지금은 옛 책방과 새로운 발걸음을 이어 붙이는 자리. 배다리라는 이름이 아직 이 골목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