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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스팟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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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서점에서는 아무도 혼자가 아니다

낮은 지붕 아래 오래된 종이 냄새가 고여 있다. 어느 책방 유리창에는 누군가 이렇게 써 두었다. 그 누구도 서점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

글
alleymag.
발행
2026.02.13
골목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서점에서는 아무도 혼자가 아니다
Artwork by alleymag.

동인천역을 나서면 먼저 전철 소리가 따라온다. 경인선 철길이 골목 바로 곁을 지나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소리가 한 번씩 머리 위로 지나간다. 낮은 지붕과 바랜 간판이 나란히 그림자를 늘어뜨린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그 소리도 한 겹 멀어진다.

골목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의 높이다. 이층을 넘지 않는 낮은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어서, 하늘이 이상하리만치 넓게 남는다. 큰길에서는 못 보던 하늘이다.

노란 벽과 나란한 책방

노란 외벽의 한미서점과 그 곁의 아벨서점이 나란히 서 있는 구간을 지날 때는 저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빼곡하게 꽂힌 책장이 유리 너머로 먼저 보이고, 그 뒤로 오래된 종이 냄새가 문틈을 넘어온다. 새 책에서는 나지 않는 냄새다. 간판의 색도, 글씨체도 가게마다 다르지만 이 냄새만큼은 어느 문 앞에서나 비슷하게 풍겨 나온다.

책장 사이를 걷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책과 마주친다. 절판된 책도 있고, 처음 듣는 출판사의 낡은 책도 있다. 그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다 보면, 어느새 손끝은 책등에 쌓인 먼지를 훑고 있다.

Artwork by alleymag.

몇 걸음 더 걸으면 책 냄새 사이로 다른 냄새가 섞여 든다. 오래된 목조 건물을 개조한 카페에서 원두를 내리는 냄새가 골목으로 새어 나오고, 그 옆 책방에서는 여전히 종이 냄새가 난다. 두 냄새가 뒤섞이는 지점을 지날 때마다, 이 골목이 책만의 자리도 커피만의 자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코끝으로 먼저 알게 된다.

낮과 밤의 골목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해가 있을 때는 책장에 꽂힌 책등의 색이 다 드러나 골목이 알록달록해 보이지만, 저녁이 되면 노란 백열등만 남고 나머지는 그림자에 잠긴다. 밤에 이 골목을 걸어 본 사람은 낮과는 전혀 다른 골목을 만났다고 말한다.

유리에 쓰인 문장

한 책방의 유리문에는 누군가 이렇게 써 두었다. 그 누구도 서점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 유리 너머로 겹겹이 꽂힌 책이 비치고 그 위에 이 문장이 얹혀 있어서,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간 기분이 든다.

Artwork by alleymag.

다른 책방 문 앞에는 손글씨로 적은 문장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삶이 지친 밤의 길에 설 때, 자신의 길을 찾아 희망이라는 살아낼 힘을 부를 줄 알게 한다는 짧은 문장이다. 무슨 책에서 옮겨 적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용한 책방 분위기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려서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책이 건너가는 자리

헌책은 낡아서 남은 물건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건너가는 문장에 가깝다. 책장을 펼치면 예전 주인이 그어 둔 밑줄과 여백에 남긴 메모가 그대로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같은 문장을 짚어보는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집현전,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대창서림. 골목을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이름들이다. 저마다 다른 간판, 다른 서체, 다른 색으로 걸려 있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는 비슷하다. 낮은 조도의 백열등과 빽빽한 책장, 그리고 오래 머문 이들의 발걸음이 다져 놓은 바닥이다. 이름은 다섯 개로 갈려도, 그 안에 고인 시간의 두께는 서로 닮아 있다.

Artwork by alleymag.

책방 문 앞에는 어김없이 자전거가 한두 대 세워져 있다. 책방 주인의 것일 수도, 잠깐 들른 손님의 것일 수도 있다. 바퀴에 앉은 먼지의 두께가 이 골목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 그 옆으로 작은 화분 몇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가게와 가게 사이의 좁은 틈을 조용히 메운다.

곁가지로 이어지는 골목

책방이 모인 구간 자체는 길지 않다. 몇 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걸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로 곁가지처럼 이어지는 작은 골목과 문화공간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반나절로도 부족해진다.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들이 골목 안쪽에서 하나씩 나타난다.

평일 낮, 책방 안에는 손님보다 정적이 먼저 자리를 채우고 있을 때가 많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저 또렷하다. 그 정적을 깨는 것은 대개 바깥에서 들려오는 전철 소리뿐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뒤를 돌아보면, 낮은 지붕들 사이로 아직 켜진 책방 불빛이 보인다. 다리는 오래전에 사라졌다지만, 이 불빛 하나하나가 여전히 누군가를 이쪽으로 건너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유리창에 남은 문장
책방 유리문에 붙은 손글씨, 그 누구도 서점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 옆 책방 서가에는 거리 풍경이 유리에 그대로 겹쳐 비친다.책방 유리문에 붙은 손글씨, 그 누구도 서점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 옆 책방 서가에는 거리 풍경이 유리에 그대로 겹쳐 비친다.
▲ 인천 동구 금곡동 · 2025.10 / 사진 2jimoon · https://blog.naver.com/2jimoon/224043744126 책방 유리문에 붙은 손글씨, 그 누구도 서점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 옆 책방 서가에는 거리 풍경이 유리에 그대로 겹쳐 비친다.
SCENE 02 : 나무 간판에 새긴 말
아벨책방 입구에 걸린 작은책 詩가 있는 마을이라 새긴 나무 간판과, 그 아래 빼곡히 쌓인 책들.아벨책방 입구에 걸린 작은책 詩가 있는 마을이라 새긴 나무 간판과, 그 아래 빼곡히 쌓인 책들.
▲ 인천 동구 금곡동 · 2025.10 / 사진 rsakesi1 · https://blog.naver.com/rsakesi1/224055211200 아벨책방 입구에 걸린 작은책 詩가 있는 마을이라 새긴 나무 간판과, 그 아래 빼곡히 쌓인 책들.
SCENE 03 : 골목의 낮은 지붕
파라솔이 올라간 낮은 상가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 하늘과, 책방 안 구리색 선풍기 너머로 빼곡한 메모지가 붙은 벽.파라솔이 올라간 낮은 상가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 하늘과, 책방 안 구리색 선풍기 너머로 빼곡한 메모지가 붙은 벽.
▲ 인천 동구 금곡동 · 2026.02 / 사진 incheontogi · https://blog.naver.com/incheontogi/224180011412 파라솔이 올라간 낮은 상가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 하늘과, 책방 안 구리색 선풍기 너머로 빼곡한 메모지가 붙은 벽.
이 글의 장면은 2026년 방문 기록에 반복해 나타난 감각과 문장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실제 풍경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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