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낭만포차거리) 이 자리는 노래가 골라준 것이다
여수 낭만포차거리에는 오래된 유래담이 없다. 있는 것은 2012년의 노래 한 곡과, 다리 밑으로 옮겨 앉은 2019년의 결정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7
- 골목
- 여수 낭만포차거리

거북선대교 아래,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 삼십 분 동안 이 거리는 하루 중 가장 바쁘다. 빨간 파란 줄무늬 천막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다리 상판 아래로 조명이 보라색으로 물든다. 처음 온 사람은 이 자리가 얼마나 된 골목인지 궁금해하지만, 답은 예상과 다르다.
돌을 깔아 다진 너른 광장 위, 두 줄로 늘어선 천막이 다리의 교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가운데 넓은 통로로 사람들이 오가며 천막 앞에 내걸린 번호와 메뉴판을 훑어본다. 이 거리엔 오래된 유래담이 없다. 조선시대 병사가 지나갔다거나, 피난민이 고향의 시장을 본떠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 자리에는 붙지 않는다. 대신 있는 것은 노래 한 곡과, 시청의 결정 두 번이다.
시작은 2012년 3월에 나온 노래 한 곡이었다. 버스커버스커가 부른 '여수 밤바다'가 그해 봄 차트 상위권을 오래 지켰고, 노래를 듣고 여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 해 평균 칠백만 명 수준이던 방문객이 그해 천오백만 명을 넘겼다. 마침 같은 해 열린 여수세계박람회와 겹치면서, '낭만'이라는 말이 이 도시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여수시가 그 흐름에 응답해 자리를 마련한 것은 2016년 5월이었다. 중앙동 바닷가에 포장마차 상권을 새로 조성했는데, 도시를 다시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목적이 앞선 사업이었다. 개장 초에는 줄을 서야 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한 점포는 한 해에 십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다리 밑으로 옮겨 앉은 사연
손님이 몰리자 자리도 함께 몸살을 앓았다. 골목을 채운 차와 사람들,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취기 어린 소란이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쌓였다. 2018년 11월, 여수시가 주민을 대상으로 물었을 때 자리를 옮기거나 없애자는 응답이 절반을 넘겼다.
그 결과로 2019년 가을, 낭만포차거리는 지금의 자리인 거북선대교 하부 광장으로 옮겨왔다. 거북선대교라는 이름은 여수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거북선을 처음 띄웠다는 1592년의 기록에서 따온 것이지만, 다리 자체는 낡은 유산이 아니다. 여수세계박람회장과 돌산도를 잇기 위해 2012년에야 놓인, 이 거리보다 겨우 몇 해 앞서 태어난 다리다.

다리는 한쪽 끝으로 박람회장 부지를, 반대쪽 끝으로 돌산도를 이어 놓았다. 낭만포차거리는 그 다리가 여수 시내 쪽으로 내려앉는 교각 밑, 딱 그 그늘의 폭만큼을 자리로 받았다. 옮겨 오기 전과 후를 통틀어, 이 거리가 실제로 가져 본 주소는 두 곳뿐인 셈이다.
지금 이 자리를 채운 것
지금 이 다리 밑에는 열여덟 개의 천막이 나란히 서 있다. 저마다 번호를 달고, 돌문어삼합과 딱새우회, 낙지탕탕이 같은 메뉴를 내건다. 상인들은 일 년 계약으로 들어와 해마다 3월이면 새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니까 이 거리는 오래 묵은 골목이 아니라, 해마다 다시 채워지는 명단에 가깝다.
번호는 자리마다 고정돼 있지만, 그 번호를 쓰는 사람은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손님들이 '몇 번 포차가 맛있더라'는 식으로 기억을 이어 가는 동안에도, 정작 그 번호 안쪽의 얼굴은 계약이 끝날 때마다 새로 채워진다. 골목의 이름은 하나인데, 그 골목을 이루는 단위는 늘 갱신 중인 셈이다.

노을이 걷히고 천막마다 백열등이 켜지면, 다리 상판의 보라색 조명과 천막의 주황빛이 물 위에 겹쳐 흔들린다. 그 풍경 앞에서 카메라를 드는 사람들은 이 자리가 몇 년이나 됐는지 잘 묻지 않는다. 눈앞의 불빛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거리를 다녀간 기록은 블로그와 SNS에 수백 장씩 쌓인다. 저마다 다른 날, 다른 사람이 남긴 사진인데도 천막의 줄무늬와 다리 아래의 보라색 조명만큼은 거의 매번 똑같이 등장한다. 짧게 머물다 가는 사람들 눈에는, 이 거리가 늘 같은 모습으로 있어 온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유래담 없이 시작한 거리가 십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는 동안, 정작 변하지 않은 것은 이름뿐인지도 모른다. 자리도 한 번 옮겼고, 그 안을 채운 사람들도 해마다 새로 바뀐다. 그래도 '낭만'이라는 두 글자만은, 저 노래가 붙여준 그대로 다리 밑에 남아 있다. 노래가 먼저 이름을 붙였고, 시청이 두 번 자리를 정했다. 그 사이 어디에도 '원래 이랬다'는 문장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