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낭만포차거리) 해마다 3월, 낯선 이름이 켜진다
아홉 해 전 이 자리에서 아흔억 원 넘게 벌던 이들이 있었다. 지금 같은 번호판 아래엔 절반의 장부를 쥔 사람들이 새로 앉는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31
- 골목
- 여수 낭만포차거리

3월이 되면 이 거리는 다시 낯설어진다. 지난겨울을 넘기고 새로 정비된 천막 안에 냉장고가 들어오고, 처음 보는 이름이 간판에 붙는다. 단골이라 해도 작년에 앉았던 자리의 사장님을 올해도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 거리만의 개업일이다.
낭만포차거리의 천막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여수시가 해마다 새로 상인을 뽑아 일 년씩 자리를 내준다. 신청 자격은 여수시에 여섯 달 넘게 산 사람으로 한정되고, 인근 주민과 청년, 형편이 어려운 이웃까지 몫을 나눠 뽑는다. 서류를 통과한 이들은 다시 음식을 차려 내는 품평회를 거친 뒤에야 열여덟 자리 중 하나를 받는다. 2025년 12월에 나붙은 공고에는, 이 절차가 벌써 열 번째 기수를 뽑는다고 적혀 있었다.
심사는 서류로 끝나지 않는다. 신청자는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 서서, 그 자리에서 맛과 손놀림을 평가받는다. 관광지 한복판에서 일 년 치 장사를 할 자격을, 매번 새로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떨어진 사람은 내년을 기약하고, 붙은 사람은 3월 첫 주부터 낯선 냉장고와 낯선 손님을 함께 마주한다.

품평회 날, 천막 앞에는 접시들이 나란히 놓인다. 같은 재료라도 손끝에 따라 다르게 익고 다르게 썰린다. 그 작은 차이가 일 년 치 벌이를 가르는 첫 관문이 된다. 천막 앞에 줄을 서는 손님들은 대개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자리에 앉는다.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오늘 저녁의 돌문어삼합과, 바다 쪽으로 트인 창뿐이다.
아홉 해 전의 장부와 지금의 장부
자리를 옮겨 앉은 2019년, 그러니까 네 번째 기수가 이 다리 밑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아흔억 육천오백만 원이었다. 다섯 번의 봄이 지나 여덟 번째 기수가 마감한 2024년의 매출은 마흔일곱억 천만 원이었다. 어느 해에는 전년보다 삼분의 일 수준까지 꺾이기도 했다. 같은 다리 밑, 같은 열여덟 자리인데 장부의 무게는 절반 가까이 가벼워졌다.

이 절반이라는 무게는 어느 한 해의 우연이 아니다. 자리를 옮기기 전, 중앙동 시절의 상인들 입에 오르내리던 '연 매출 십억'이라는 말은 이 거리에서 이제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리 밑으로 옮겨 온 뒤에도 한동안은 그 기세가 이어졌지만, 해가 갈수록 장부는 조금씩 얇아졌다.
매출이 줄어드는 동안, 재계약을 위한 재추첨에 나서지 않는 상인들이 늘었다. 한 해를 겨우 버티고 다음 해를 신청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셈이다. 그 사이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사라지지 않았다. 주차할 곳이 부족하다는 항의와 소음에 대한 항의는 여전했고, 한 번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이 접수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애초에 이 자리는 도시를 다시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열여덟 개의 자리는 여전히 그 취지대로 해마다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다만 그 일자리가 예전만큼의 벌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두 해의 매출 표 사이에 조용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세트 메뉴판은 새로 걸린다
어느 천막이든 입구에는 세트 메뉴판이 붙어 있다. 돌문어해물삼합에 딱새우회를 더할지, 서대회무침을 더할지 묻는 가격표다. 정찰제로 붙은 숫자들은 매년 큰 틀에서 비슷하게 이어진다. 장부는 가벼워졌어도, 손님을 맞는 방식만큼은 크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처음 온 사람도 메뉴판만 보면 지갑 사정을 가늠할 수 있고, 굳이 흥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앞자리의 안정감이, 그 뒤에 선 상인의 장부까지 안정시켜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 눈에는 달라진 게 잘 보이지 않는다. 번호판은 그대로고, 천막이 늘어선 자리 배치도 그대로다. 장부 뒤에서 이름이 바뀌는 일은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에는 언제나 불빛과 사람들만 담긴다.
열 번째 기수를 뽑는 공고가 나붙은 뒤에도, 이 거리에 지원한 이름들은 줄지 않았다. 전보다 가벼워진 장부를 알면서도 자리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매해 있다는 뜻이다. 관광지 한복판의 번호판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일 년을 걸어 볼 만한 자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리 밑 불빛은 올해도 3월이면 다시 켜질 것이고, 그 아래 앉을 얼굴만 또 한 번 바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