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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여수 낭만포차거리) 해마다 3월, 낯선 이름이 켜진다

아홉 해 전 이 자리에서 아흔억 원 넘게 벌던 이들이 있었다. 지금 같은 번호판 아래엔 절반의 장부를 쥔 사람들이 새로 앉는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31
골목
여수 낭만포차거리
해마다 3월, 낯선 이름이 켜진다
Artwork by alleymag.

3월이 되면 이 거리는 다시 낯설어진다. 지난겨울을 넘기고 새로 정비된 천막 안에 냉장고가 들어오고, 처음 보는 이름이 간판에 붙는다. 단골이라 해도 작년에 앉았던 자리의 사장님을 올해도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 거리만의 개업일이다.

낭만포차거리의 천막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여수시가 해마다 새로 상인을 뽑아 일 년씩 자리를 내준다. 신청 자격은 여수시에 여섯 달 넘게 산 사람으로 한정되고, 인근 주민과 청년, 형편이 어려운 이웃까지 몫을 나눠 뽑는다. 서류를 통과한 이들은 다시 음식을 차려 내는 품평회를 거친 뒤에야 열여덟 자리 중 하나를 받는다. 2025년 12월에 나붙은 공고에는, 이 절차가 벌써 열 번째 기수를 뽑는다고 적혀 있었다.

심사는 서류로 끝나지 않는다. 신청자는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 서서, 그 자리에서 맛과 손놀림을 평가받는다. 관광지 한복판에서 일 년 치 장사를 할 자격을, 매번 새로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떨어진 사람은 내년을 기약하고, 붙은 사람은 3월 첫 주부터 낯선 냉장고와 낯선 손님을 함께 마주한다.

Artwork by alleymag.

품평회 날, 천막 앞에는 접시들이 나란히 놓인다. 같은 재료라도 손끝에 따라 다르게 익고 다르게 썰린다. 그 작은 차이가 일 년 치 벌이를 가르는 첫 관문이 된다. 천막 앞에 줄을 서는 손님들은 대개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자리에 앉는다.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오늘 저녁의 돌문어삼합과, 바다 쪽으로 트인 창뿐이다.

아홉 해 전의 장부와 지금의 장부

자리를 옮겨 앉은 2019년, 그러니까 네 번째 기수가 이 다리 밑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아흔억 육천오백만 원이었다. 다섯 번의 봄이 지나 여덟 번째 기수가 마감한 2024년의 매출은 마흔일곱억 천만 원이었다. 어느 해에는 전년보다 삼분의 일 수준까지 꺾이기도 했다. 같은 다리 밑, 같은 열여덟 자리인데 장부의 무게는 절반 가까이 가벼워졌다.

Artwork by alleymag.

이 절반이라는 무게는 어느 한 해의 우연이 아니다. 자리를 옮기기 전, 중앙동 시절의 상인들 입에 오르내리던 '연 매출 십억'이라는 말은 이 거리에서 이제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리 밑으로 옮겨 온 뒤에도 한동안은 그 기세가 이어졌지만, 해가 갈수록 장부는 조금씩 얇아졌다.

매출이 줄어드는 동안, 재계약을 위한 재추첨에 나서지 않는 상인들이 늘었다. 한 해를 겨우 버티고 다음 해를 신청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셈이다. 그 사이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사라지지 않았다. 주차할 곳이 부족하다는 항의와 소음에 대한 항의는 여전했고, 한 번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이 접수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애초에 이 자리는 도시를 다시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열여덟 개의 자리는 여전히 그 취지대로 해마다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다만 그 일자리가 예전만큼의 벌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두 해의 매출 표 사이에 조용히 남아 있을 뿐이다.

Artwork by alleymag.

그래도 세트 메뉴판은 새로 걸린다

어느 천막이든 입구에는 세트 메뉴판이 붙어 있다. 돌문어해물삼합에 딱새우회를 더할지, 서대회무침을 더할지 묻는 가격표다. 정찰제로 붙은 숫자들은 매년 큰 틀에서 비슷하게 이어진다. 장부는 가벼워졌어도, 손님을 맞는 방식만큼은 크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처음 온 사람도 메뉴판만 보면 지갑 사정을 가늠할 수 있고, 굳이 흥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앞자리의 안정감이, 그 뒤에 선 상인의 장부까지 안정시켜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 눈에는 달라진 게 잘 보이지 않는다. 번호판은 그대로고, 천막이 늘어선 자리 배치도 그대로다. 장부 뒤에서 이름이 바뀌는 일은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에는 언제나 불빛과 사람들만 담긴다.

열 번째 기수를 뽑는 공고가 나붙은 뒤에도, 이 거리에 지원한 이름들은 줄지 않았다. 전보다 가벼워진 장부를 알면서도 자리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매해 있다는 뜻이다. 관광지 한복판의 번호판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일 년을 걸어 볼 만한 자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리 밑 불빛은 올해도 3월이면 다시 켜질 것이고, 그 아래 앉을 얼굴만 또 한 번 바뀔 것이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번호를 단 천막들, 그 안에서 바라본 항구
risteard85가 담은 낭만포차 100도 앞과 그 안에서 바라본 항구입니다. 나란히 붙은 번호판 천막들,risteard85가 담은 낭만포차 100도 앞과 그 안에서 바라본 항구입니다. 나란히 붙은 번호판 천막들,
▲ 전남 여수시 종화동 · 2026.07 / 사진 risteard85 · https://blog.naver.com/risteard85/224358215575 risteard85가 담은 낭만포차 100도 앞과 그 안에서 바라본 항구입니다. 나란히 붙은 번호판 천막들, 그리고 자리에 앉아야 보이는 하멜등대와 주차된 차들까지 한 프레임에 들어옵니다.
SCENE 02 : 세트 메뉴판과 밤의 술상
eli_joy_story가 담은 한 천막의 세트 메뉴판과 밤의 술상입니다. 정찰제 가격표 옆으로, 여수 낭만이슬 소주와 홍합탕이 놓인 테이블이 이어집니다.eli_joy_story가 담은 한 천막의 세트 메뉴판과 밤의 술상입니다. 정찰제 가격표 옆으로, 여수 낭만이슬 소주와 홍합탕이 놓인 테이블이 이어집니다.
▲ 전남 여수시 종화동 · 2026.09 / 사진 eli_joy_story · https://blog.naver.com/eli_joy_story/224407575418 eli_joy_story가 담은 한 천막의 세트 메뉴판과 밤의 술상입니다. 정찰제 가격표 옆으로, 여수 낭만이슬 소주와 홍합탕이 놓인 테이블이 이어집니다.
이 글은 2026년 9월 기준 공개 자료를 종합했습니다. 매출과 운영자 선발 방식, 민원 관련 내용은 여수시 공고, 뉴스탑전남 기획기사(여수 낭만포차 9년), 서울신문 보도를 참고해 확인했습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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