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성남동 젊음의거리) 기차가 다니던 자리에 청춘이 걸어 들어왔다
울산 최초의 기차역이 있던 이 자리는 산업도시의 스물 몇 살들이 밤늦도록 서성이던 골목이 됐고, '젊음의거리'라는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8
- 골목
- 울산 성남동 젊음의거리

성남동 아케이드 지붕 아래로 들어서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둥근 유리 지붕이 하늘을 가리고, 그 아래로 옷가게와 분식집, 오락실 간판이 색색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바닥은 자주 젖어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한때 기차가 지나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울산 땅에 처음 기차가 놓인 것은 1921년이다. 경주를 거쳐 대구까지 잇는 경동선이었고, 그 역은 지금의 성남동 일원에 섰다. 화물을 부리고 사람을 실어 나르던 역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가게와 사람이 모여들었다. 역은 1935년 학성동으로 옮겨 갔지만, 역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동네가 사람 모이는 자리로 자리 잡을 기틀은 이미 만들어진 뒤였다.
역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이 일대는 눈에 띄지 않는 변방에 가까웠다.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좁은 골목과 낮은 지붕들 사이로 조용한 날들이 이어졌고, 지금처럼 사람이 몰리는 거리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시기다.

사정이 바뀐 건 1962년, 울산이 시로 승격되면서다. 공장이 들어서고 산업도시로 몸집을 키우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낮 동안 기계 앞에서 시간을 보낸 산업인력들이 퇴근 후 발걸음을 옮기는 자리가 바로 이 거리였다.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놓던 곳이었으니, 청춘의 거리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이름 그대로, 젊음의 거리
1970년대부터 노점상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상권의 뼈대가 짜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국도 7호선이 지나는 울산 중구 상권의 한복판이 됐다. 서울의 명동과 남대문에 비견될 만큼, 이 거리의 형편이 곧 지역 경제의 형편을 가늠하는 잣대였던 시절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성남동 번화가부터 중앙전통시장과 신중앙시장에 이르기까지 지붕이 덮였다. 차량을 막은 자리에 사람들의 걸음만 남았다. 길이 724미터, 울산에서 처음 놓인 아케이드 거리이자 지금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라고 전해진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지붕 덕분이다.

아케이드는 성남동 번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노란 현수막이 걸린 중앙전통시장 입구가 나온다. 시장과 거리는 애초에 담을 맞대고 있었던 셈이라, 걸음이 둘로 나뉜 적이 없다. 한쪽에서 옷을 고르던 사람이 몇 걸음 옮겨 시장에서 저녁 찬거리를 산다.
그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복고풍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한 전구로 테두리를 두른 '맨발의 청춘길'이라는 글자, 그 아래 빨간 바지를 입은 조형물이 좁은 골목을 지키고 서 있다. 산업화 시절 청년들의 애환을 담았다는 이름이다. 거리 안쪽에는 이렇게 그 시절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골목이 몇 군데 더 있다. '똑딱길'도 그중 하나다.
이름을 지어 붙인 사람들은 아마 알았을 것이다. 간판을 새로 달고 조형물을 세워도, 그 골목을 걷던 실제 걸음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는 걸. 그래도 이름은 남겨 두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번이라도 고개를 들어 그 이름을 읽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골목은 완전히 잊히지 않는 셈이다.
지금 이 거리를 채운 가게들의 얼굴은 그때와 다르다. 즉석사진관과 뽑기 기계, 사격 게임장과 방탈출 카페, 볼링장 같은 실내 놀거리가 골목 곳곳에 들어서 있다. 청춘을 달래던 방식이 바뀌었을 뿐, 이 거리가 여전히 젊은 걸음을 불러 모으는 자리라는 사실은 그대로인 셈이다.

지금 남은 이름
2010년대로 접어들며 상권의 무게 중심은 남구 삼산동, 이른바 신도심으로 옮겨 갔다. 성남동은 한동안 조용해졌다. 아케이드 지붕은 그대로였지만, 그 아래를 지나는 걸음의 숫자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젊음의거리'라는 이름만큼은 끝내 자리를 지켰다. 아케이드 입구에는 지금도 그 이름을 새긴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다. 영문으로 'ULSAN YOUTH STREET'라는 글자까지 나란히 붙었다. 오래된 이름 위에 새 단장을 한 겹 얹은 모습이다.
지붕이 끝나는 자리에는 초록빛 돔 구조물이 하늘을 향해 활짝 펼쳐져 있다. 그 아래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오래된 이름과 새로 세운 구조물이 한 골목 안에서 나란히 걸음을 받는다.
이름은 시대를 따라가지 않는다. 기차가 다니던 자리였다가, 산업도시 청춘들이 밤늦도록 서성이던 자리였다가, 지금은 또 다른 얼굴을 준비하는 이 거리에서 변하지 않은 건 딱 하나다. 걸음을 불러 세우는 그 이름, 젊음의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