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중앙시장) 계피 향이 남는 자리
서른아홉 도를 견딘 얼음 위로 계피 물이 끼얹어진다. 다 먹고 우산을 접은 뒤에도 그 냄새만은 따라온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2.14
- 골목
- 진주 중앙시장

며칠 사이 선선해진 날씨를 생각하면, 그때 한낮 기온이 서른아홉 도까지 올랐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그 더위 속에서는 계피 물을 끼얹은 얼음이 유독 반가운 법이다.
원래 계피 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향이 너무 강하게 올라와서 선뜻 손이 가는 맛은 아니다. 그런데도 너무 더운 날에는 그 시원한 맛에 이끌려 숟가락을 계속 움직이게 된다.
그 계피 팥빙수를 파는 곳은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빵집이다. 파란 간판에는 상호와 전화번호만 짧게 적혀 있다. 유리문 안쪽으로 줄이 보이고, 아이 손을 잡은 부모와 친구들끼리 온 손님들이 뒤섞여 있다.
찐빵을 포장하려면 최소 두 사람 몫부터 된다는 안내문이 벽에 붙어 있다. 사람이 많아 줄이 길어질 때는 다들 그 안내문 앞에서 서로 눈치를 본다. 그래도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이 가게는 단골에게는 살짝 새침한 태도로, 처음 온 손님에게는 조금 낯선 태도로 대하는 편이라고 한다. 오래 다닌 사람과 처음 온 사람을 대하는 결이 다르다는 뜻일 텐데, 그 미묘한 온도차마저 이 노포가 오래 지켜온 방식처럼 느껴진다.

접시 위에 남는 것
자리를 잡고 앉으면 붉은 테이블 위로 접시가 놓인다. 갈색 소스를 두른 찐빵 네 개, 그 옆에 놓인 얼음 그릇. 얼음 위로는 계피 물과 팥이 넉넉히 올라간다.
벽에 걸린 차림표에는 찐빵과 꿀빵, 단팥죽과 팥빙수까지 네 가지 메뉴 값이 나란히 적혀 있다. 사진 두 장도 함께 붙어 있어서 처음 온 사람도 뭘 주문해야 할지 헤매지 않는다. 오래된 자리인데도 안내는 의외로 친절하다.
숟가락을 얼음 속에 넣을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 사이로 계피 향이 훅 올라온다. 향이 세다고 느끼면서도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게 되는 건, 아마 이 더위 때문일 것이다.
김밥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장 안쪽 김밥집 앞을 지날 때는 냄새가 먼저 붙잡는다. 반질반질한 김 위로 깨가 솔솔 뿌려진 김밥이 진열대에 나란히 놓여 있고, 그 냄새를 맡으면 차에 타기도 전에 하나 집어먹고 싶어진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화려하게 이것저것 넣은 요즘 김밥과 달리, 햄과 계란과 오이처럼 익숙한 재료들이 딱 옛날 시장김밥 스타일로 말려 있다.

점심때가 되면 국수집도 김밥집도 순식간에 북적인다. 테이블 간격이 좁다 보니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통에 분위기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국수 한 그릇과 김밥 한 줄을 같이 시키는 사람이 많은데, 국수만으로는 허전한 배를 김밥이 채워 주는 조합이다. 여유롭게 앉아 있기보다는 먹고 금방 일어서게 되는 자리지만, 그 분주함마저 이 시장의 점심시간다운 풍경이다.
국수집 내부는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다. 오래된 시장 맛집이라는 인상은 겉에서부터 짙게 풍기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서면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돼 있어서 다시 한 번 눈이 간다. 복잡할 줄 알았던 안쪽 테이블도 의외로 여유 있게 나뉘어 있어서, 아이를 데려온 사람도 부담 없이 자리를 잡는다.
시장 골목에는 간판조차 걸지 않은 칼국수집도 있다고 한다. 이름 없이도 입소문만으로 손님이 찾아온다니, 간판보다 오래 쌓인 소문이 이 시장에서는 더 힘이 센 모양이다.

비가 오는 날의 장독대
다른 날, 다른 골목에서는 빗소리가 시장의 냄새를 바꿔 놓는다. 오래된 노포 한 곳의 뒷마당에는 장독 수십 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빗방울이 장독 뚜껑 위로 떨어질 때마다 마른 흙냄새가 올라온다.
통유리 너머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빗소리와 대화 소리가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섞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가게 앞에는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가 비를 맞으며 놓여 있고, 그 위로도 물방울이 하나둘 맺힌다.
장독 몇 개에는 하얀 천이 뚜껑 대신 덮여 있다. 그 위로 빗물이 고이면 천이 축 처지면서 색이 더 짙어진다.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나무 가지가 장독 열을 반쯤 가리고 있는데, 비를 맞아 잎이 유난히 짙은 초록으로 보인다.
이 시장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아마 냄새일 것이다. 계피 향이든 젖은 흙냄새든, 접시를 비우고 우산을 접은 뒤에도 한참을 따라오는 냄새들. 다음에 이 골목을 다시 찾을 때, 그날의 날씨는 또 어떤 냄새를 얹어 줄지 모른다. 더운 날이면 계피 향일 것이고, 비 오는 날이면 젖은 장독의 흙냄새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