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중앙시장) 새벽 네 시와 비단길 사이
같은 지붕 아래 서로 다른 시계가 세 개 돌아간다. 한쪽이 걷히기도 전에 다른 쪽이 문을 연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2.01
- 골목
- 진주 중앙시장

새벽 네 시, 아직 캄캄한 시간에 이 시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좌판이 하나둘 깔리고 상추와 오이, 마 뿌리 같은 것들이 비닐에 싸여 바닥에 놓인다. 정식 이름 대신 사람들은 이 시간의 장을 번개시장이라 부른다. 번개처럼 잠깐 열렸다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번개시장은 여덟 시쯤이면 걷힌다. 좌판을 깔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나서야 상설 점포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다. 상설 점포 대부분은 오전 열 시가 지나야 셔터를 올린다. 같은 시장 안에서 여섯 시간의 시차를 두고 두 개의 장이 번갈아 선다.
두 시장은 파는 물건도, 파는 방식도 다르다. 번개시장 상인들은 바닥에 깐 천 위에 채소를 쌓아 놓고 손글씨로 값을 적은 종이를 꽂아 둔다. 반면 상설 점포는 간판을 달고 가격표를 붙인 채 손님을 기다린다. 하나는 그날 들여온 것만 팔고 사라지고, 다른 하나는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킨다.

번개시장 좌판에는 참외와 마 같은 그날그날의 작물이 많다. 마는 흙 묻은 뿌리째 대야에 걸쳐 놓이고, 참외는 노란 알들이 붉은 소쿠리마다 수북하다. 값은 종이에 적혀 바닥에 놓이는데, 상설 점포의 인쇄된 가격표와는 결이 다르다. 하나는 그날 들여온 물량에 맞춰 값이 바뀌고, 다른 하나는 정해진 값을 오래 유지한다.
2층에서는 다른 시계가 돈다
두 시장의 시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 번째 시간도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비단길'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있다. 이십대와 삼십대 청년 상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좌판이 깔리는 새벽이나 셔터가 오르는 오전과는 전혀 다른 손님, 전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시장 통로에 걸린 안내판 하나가 이 배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쪽 화살표는 상인회가 있는 3층을 가리키고, 다른 화살표는 청년몰, 비단길이 있는 2층을 가리킨다. 같은 건물 안에서 위아래로 층을 나눠 서로 다른 세대가 자리를 잡은 셈이다.
그 안내판 옆에는 '진주중앙시장, SINCE 1884'라는 문구와 함께 시장 가격표시제를 알리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상품마다 값을 눈에 잘 띄게 표시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번개시장 좌판의 손글씨 가격표와, 이 현수막이 가리키는 인쇄된 가격표 사이에도 또 하나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시장 바깥에도 변화는 이어진다. 시장 인근에는 레트로한 분위기의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턴테이블과 옛 음반 재킷을 벽에 걸어 둔 자리에, 시장에서 장을 보러 온 손님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시장 통로 곳곳에는 방범용 CCTV가 녹화 중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 새벽 좌판과 한낮의 인파, 그리고 2층 청년몰의 늦은 손님까지, 하루 종일 같은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이 카메라 하나가 전부 지켜보는 셈이다.
이 시장이 정책의 손길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에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됐다. 그때의 지원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 진행되는 사업은 시장 안의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한꺼번에 손보는 쪽에 가깝다.

삼십억 원이 겨냥하는 시간
2026년부터 2년 동안, 이 시장에는 최대 30억 원이 투입되는 '백년시장 육성사업'이 진행된다. 어시장 구역에는 따로 20억 원을 들여 지붕과 도로, 배수로, 전기와 소방시설을 정비하는 환경개선 공사도 추진되고 있다. 시장 전체가 한 번에 손볼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새벽 상인과 상설 상인, 청년몰 상인이 하루 중 서로 마주치는 시간은 길지 않다. 번개시장이 걷힐 때쯤에야 상설 점포들이 하나둘 셔터를 올리고, 청년몰의 간판에 불이 들어오는 건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세 시간대가 겹치는 순간은 짧고, 대부분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교대하듯 자리를 넘긴다.
이 돈이 어느 시간을 향해 있는지는 아직 또렷하지 않다. 새벽 네 시에 좌판을 까는 사람들의 몫인지, 오전 열 시에 셔터를 올리는 상인들의 몫인지, 아니면 2층에서 다른 리듬으로 장사를 시작한 청년들의 몫인지는 공사가 끝나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지금 이 시장은 하루 안에 세 개의 다른 시계를 동시에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세 개의 바늘이 앞으로도 같은 지붕 아래서 나란히 갈 수 있을지는, 이 공사가 끝난 뒤에야 드러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