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풍물시장) 옮겨온 자리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
23년 다닌 단골은 벽에 걸린 방송 액자를 알아보고, 처음 온 손님은 이 가게가 원래 여기 있던 줄 압니다. 깃대봉냉면은 두 시선이 한 그릇 앞에서 만나는 곳입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4.24
- 골목
- 황학동 풍물시장

베네치아메가몰 2층, 통유리 너머로 청계천로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깃대봉냉면이 있습니다. 신설동역이나 동묘앞역에서 걸어오는 사람이라면 황학동 이마트 옆 건물이라는 설명이 더 빠를 것입니다. 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만 보면 원래부터 이 자리였던 것 같지만, 실은 창신동 쪽에서 옮겨온 자리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는 가게이기도 합니다.
23년 다닌 사람이 보는 것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 집을 다녔다는 손님이 있습니다. 친구가 좋아하는 냉면을 먹이려고 찜질방에 가기 전 들렀다는 그 걸음에는, 가게가 어디에 있었는지보다 무엇이 그대로인지가 먼저 보입니다. 벽에 걸린 방송 출연 액자들, 예전엔 자리가 없어 대기가 당연했던 기억, 그리고 이사 후 처음으로 평일 오후에 기다림 없이 앉았다는 낯선 여유까지. 오래 다닌 사람에게 이 가게는 위치가 아니라 벽에 걸린 그 사진들로 증명되는 곳입니다.

반대로 이 집이 옮겨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찾아온 손님도 있습니다. 방송에서 보고 이름만 저장해뒀다가 혼자 시간을 내어 찾아갔는데, 매장이 너무 깨끗하고 새것 같아서 오히려 원래 이 자리였나 싶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야 다른 동네에서 이 자리로 옮겨왔다는 것을 전해 듣고서야, 자신이 새 매장을 옛 매장인 줄 알고 들어갔다는 사실에 신기해했습니다. 통유리라 테이블 간격이 넓고 시원시원한 인상도 그 손님에게는 그저 이 가게의 원래 얼굴이었을 뿐입니다.
주문은 두 사람 모두 같은 방식을 거칩니다. 입구 키오스크에서 자리 번호를 먼저 입력하고, 매운맛을 다섯 단계 가운데 하나로 고른 뒤에야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고 밝힌 손님들도 이 단계 선택 덕분에 마음을 놓았다고 적었습니다. 자신 있게 제일 매운 단계를 골랐다가 결국 물만 찾게 됐다는 손님의 후기도 있으니, 처음이라면 가운데 단계에서 시작해 보는 편이 안전할 것입니다.


한 시간을 달려 이 집을 찾아온 손님도 있습니다. 냉면을 좋아하는 일행 덕분에 먼길을 나섰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자리가 생각보다 넓어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아이를 데려온 손님은 식기까지 따로 챙겨 주는 배려에 마음을 놓았고, 어린이냉면이 따로 있어 가족 단위로 와도 부담이 없었다는 후기도 있습니다. 이사 전부터 다녔다는 손님, 소문만 듣고 처음 찾아온 손님, 먼길을 달려온 가족까지, 이 집 앞에 줄을 세우는 이유는 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언젠가부터 이 집에는 서울 매운 냉면 가운데서도 손꼽힌다는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정작 그 순위를 누가 정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녀온 사람들도 그 점을 알면서 웃어넘기고, 그래도 첫 젓가락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매운맛만큼은 다들 인정합니다. 순위표의 진위와 상관없이, 이 골목 냉면 한 그릇이 사람을 땀 흘리게 하는 힘만은 여러 사람의 기록에서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23년을 다닌 사람도, 오늘 처음 온 사람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온육수를 받아 듭니다. 한쪽은 낯익은 액자를 올려다보고, 다른 한쪽은 낯선 통유리를 신기해합니다. 두 시선이 가리키는 곳은 다르지만, 젓가락을 들고 땀을 흘리는 순간만큼은 다르지 않습니다.
깃대봉냉면
냉면 전문점숭인동·창신동 인근에서 영업하다 황학동 베네치아메가몰로 옮겨온 냉면집입니다. 매운맛을 다섯 단계로 골라 주문할 수 있고, 여러 방송에 소개된 이력과 블루리본 서베이 선정 이력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 매운 냉면으로 손꼽힌다는데, 그 순위와 상관없이 매운맛에는 다들 동의한다
- 주소
- 서울 중구 청계천로 400 베네치아메가몰 2층 2038호
- 영업
- 화~일 11:00-20:30 (라스트오더 20:00, 월요일 정기휴무)
- 가격
- 물냉면·비빔냉면 10,000원 / 어린이냉면 6,000원 / 만두 8,000원 / 바싹불고기 15,000원
- 비고
- 키오스크 주문(자리번호 입력 후 결제) / 매운맛 5단계 선택 가능 / 건물 내 주차 2시간 무료 / 창신동 인근에서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