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닫힌 문 옆에 연 문
회나무로에는 셔터가 내려간 자리와 새로 문을 연 자리가 나란히 서 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이 골목은 아직 정하지 못한 눈치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28
- 골목
- 경리단길

회나무로를 걷다 보면 몇 걸음마다 닫힌 문을 만난다. 색이 바랜 메뉴판이 셔터에 그대로 붙은 자리도 있고, 안내문 하나 없이 그냥 잠겨 있는 자리도 있다.
어느 가게는 셔터 아래로 예전 메뉴를 적은 입간판 세 개를 그대로 세워 두었다. 새우와 곱창, 감밥 사진이 바랜 채로 나란히 걸려 있다. 손님을 부르던 물건이 이제는 문이 닫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지가 됐다.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인지, 아직 미련이 남아 남겨둔 것인지는 지나가는 사람으로선 알 수 없다.
한때는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던 골목이라고 다들 말한다. 요즘은 평일 낮에 걸으면 오히려 한산해서 사진 찍기 좋다는 후기가 심심찮게 보인다. 붐비지 않아서 여유롭다는 말과 발길이 줄어 허전하다는 말이, 같은 골목을 두고 동시에 나온다. 어느 쪽 말을 믿을지는 온전히 걷는 사람의 몫이다.
임대료가 오르며 가게를 접는 자리가 늘었다는 건 이 골목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얘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빈자리 바로 옆에서 누군가는 또 새로 문을 연다.

밤에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이 많은 골목에 아침 장사를 하는 가게가 들어오면, 애초에 손님과 가게가 서로 마주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간이 맞지 않는 자리에 맞지 않는 가게가 들어오면 목이 아무리 좋아도 헛일이라는 뜻이다. 이 골목에서 살아남는 가게와 문 닫는 가게를 가르는 기준 하나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닫힌 문 옆에 연 문
오래된 간판 아래 비어 있던 상가 한 켠에, 알록달록한 캐릭터 스티커로 벽을 채운 작은 편집숍이 들어섰다. 낡은 시멘트벽과 새로 붙인 포스터가 한 프레임 안에서 어색하게 겹친다.
간판을 새로 달지 않고 예전 것을 그대로 쓰는 가게도 있다. 안에서 파는 물건도, 손님의 나이대도 완전히 달라졌는데 밖에서 보면 몇 해 전과 똑같은 자리처럼 보인다. 겉모습만으로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골목이 됐다.
가게 안쪽에는 사장이 직접 고른 듯한 소품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다. 예전 이 골목을 채웠던 왁자지껄한 술집들과는 결이 다른 손님을 부르는 방식이다. 말없이 둘러보다 그대로 문을 나서는 손님들, 그 정적도 이 골목의 지금을 보여준다.

이 자리를 예전에는 어떤 가게가 썼는지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새로 들어온 사장은 이 골목의 전성기를 사진으로만 본 세대에 가까운데, 그에게 이 골목은 한창때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부터 자기 손으로 채워야 할 빈 공간이다. 그 태도의 차이가 간판 색깔보다 더 크게 골목의 분위기를 바꾼다.
테라스는 비어 있어도 불은 켜져 있다
언덕 위쪽, 계단을 올라야 나오는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는 저녁이 되어도 빈 테이블이 많다. 그래도 조명은 하나씩 다 켜져 있고 의자도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자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은 태도처럼 보인다.
붉은 벽돌 건물에 저녁볕이 닿는 시간,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빈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화분에 물을 준다.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하루의 마감은 똑같이 온다는 사실을 그 손끝에서 읽는다. 손님이 없다고 문을 일찍 닫지는 않는다.

이 골목의 원래 상권과 언덕 안쪽에 새로 생긴 가게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있다. 큰길가 가게들은 오래 다닌 단골로 버티고, 골목 안쪽 새 가게들은 지도 앱을 보고 찾아온 낯선 손님으로 하루를 채운다. 같은 골목인데 손님이 오는 경로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예전만큼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는 말과, 그래서 오히려 걷기 좋아졌다는 말을 이 골목에서는 같은 사람 입에서 듣는다. 빈 상가와 새로 연 가게가 나란히 서 있는 지금의 회나무로는 어느 한쪽 말이 완전히 맞다고 정하기 어려운 얼굴로 서 있다.
확실한 건 이 골목이 한 가지 얼굴로 멈춰 있지 않다는 사실뿐이다. 셔터 하나가 내려가면 그 옆에서 다른 문이 열리고, 손님의 발길이 줄어든 자리에는 다른 종류의 손님이 새로 들어선다. 회나무로는 지금도 계속 다시 채워지는 중이다. 그 속도가 예전만큼 빠르지 않을 뿐이다.
닫힌 셔터에 켜켜이 붙은 낡은 포스터와, 그 옆 편집숍에 새로 붙은 스티커가 나란히 있는 걸 보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 골목은 지금 저무는 중일까, 아니면 또 한 번 다른 얼굴로 넘어가는 중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