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진골목) 부잣집 터에 들어선 학교, 대구화교협회와 화교소학교
근대골목투어 2코스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한때 대구 제일의 부자였던 서병국의 저택 부지가 지금은 화교들의 학교와 협회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대구 진골목

걷다 보면 눈에 띄는 이정표들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입니다. 무작정 생각 없이 걷던 길에 특별함이 묻어난다고, 이 길을 걸은 한 방문자는 적었습니다. 대구읍성 안 종로, 진골목, 장관동으로 이어지는 '천 개의 골목, 천 개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한국대구화교소학교와 대구화교협회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입구 벽면에는 '한국대구 화교소학교'라는 한자 현판이 붙어 있고, 그 아래 '대구화교협회 Chinese Residents Association Daegu Korea'라는 파란 표지판이 걸려 있습니다. 주소를 적은 작은 명패에는 '34 종로'라 쓰여 있습니다. 벽면에는 전통 복식을 입은 인물들을 그린 벽화와, 이 자리의 내력을 적은 동판 안내문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부자의 저택이 있던 자리
1900년대 초반, 이 자리는 대구 제일의 부자로 꼽히던 서병국의 저택 부지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화교소학교와 화교협회가 들어선 넓은 터가 바로 그 집이 있던 자리입니다. 노란 외벽에 파란 창틀을 두른 2층짜리 협회 건물은 주차장 너머로 담담하게 서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외관이지만, 이 골목이 거쳐온 시간의 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19세기 말부터 화교들이 이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지금도 이 골목이 화교거리로 불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근대골목투어 2코스는 청라언덕에서 출발해 계산성당과 고택들을 지나 진골목에 닿은 뒤, 이 화교협회 앞에서 끝이 납니다. 부자의 저택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이 작은 터 하나가 품고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관광객의 걸음으로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중식당이나 카페 간판과 달리, 학교와 협회 건물은 요란하게 자신을 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골목을 여러 번 걸어본 사람만이 벽에 붙은 동판 안내문까지 눈여겨보게 됩니다.
진골목이라는 이름의 뜻이 그저 '긴 골목'이라는 평범한 사실에서 시작했듯, 이 자리도 평범하게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아래 깔린 시간, 부잣집에서 학교로, 다시 지역 화교 사회의 구심점으로 이어진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근대골목투어의 마지막 도장을 이 건물 앞에서 찍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입니다.
화교소학교와 화교협회는 지금도 실제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관광지로 꾸며진 전시관이 아니라, 대구에 뿌리내린 화교 공동체가 여전히 일상을 꾸려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른 근대골목투어 코스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담장 안쪽에서는 아이들의 등하교가, 협회 사무실에서는 지역 화교들의 크고 작은 모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관광객의 카메라와 지역 주민의 생활이 한 울타리 안에서 겹치는 드문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앞을 지날 때는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걸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