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객리단길) 분수 옆에서 빵 냄새를 맡는 저녁
객리단길을 걷는 일은 한 골목 안에서 몇 번씩 시간을 갈아 끼우는 일이다. 빵 냄새가 나는 아침과, 타코 소스 냄새가 나는 오후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 한 블록 안에 다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전주 객리단길

작은 분수 하나가 빵집 앞에 놓여 있다. 사자 머리 장식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그 위로 'No.1 LeFrank'라는 간판이 조명을 받아 빛난다. 아침마다 빵을 굽는다는 문구가 간판 아래 작게 적혀 있다. 분수 앞을 지나는 사람 중 몇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천장 아래 또 다른 냄새가 기다리고 있다.
안쪽은 나무 색이 짙다. 긴 원목 카운터 위로 작은 조명들이 늘어서 있고, 유리 진열장 안에는 크루아상과 휘낭시에가 줄지어 놓여 있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 하나가 켜져 있고, 그 옆으로 크리스마스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솔잎 장식이 걸려 있다. 계산을 기다리는 줄이 짧게 늘어서 있어도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조금 더 걸으면 다른 냄새가 난다. 타코 소스와 구운 토르티야 냄새다. 접시 위에 놓인 파히타는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하고, 매운 소스가 손끝에 묻는다. 어느 방문자는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적었고, 또 다른 방문자는 집에만 있는 성격인데도 이 골목만큼은 다시 찾게 된다고 썼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카페도 있다. 올라가는 내내 숨이 조금 찬데, 그 수고를 감수할 만큼 계단 끝의 공기가 다르다는 평이 여럿이다. 내려올 때는 난간을 꼭 잡으라는 당부가 후기마다 붙는다. 책장 앞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음료를 받으면, 유리잔 가장자리에 말린 오렌지 한 조각이 얹혀 있다. 빨대로 얼음을 휘젓는 소리가 책장의 고요함과 섞인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이 골목은 이런 식이다.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 간판들은 저마다 다른 글씨체로, 저마다 다른 색의 조명을 켠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나면 공기가 바뀐다. 낮의 카페 앞에 서 있던 줄은 사라지고, 대신 술집 앞에 다른 줄이 생긴다. 안쪽에서는 잔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나온다. 어느 혼술바에서는 손님이 작은 조명 하나만 켜진 테이블에 앉아 잔을 들고, 그 옆 인형 장식이 불빛을 받아 그림자를 늘어뜨린다. 좀 더 걸어가면 초가지붕을 얹은 이자카야 앞에 빈 맥주통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그 위로 조명이 걸린 줄이 지붕 끝까지 이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나온다.
골목 한쪽에서는 피아노 한 대가 식당 구석을 지키고 있다. 체크무늬 천이 덮인 상판 위로 마른 꽃과 작은 조명이 놓여 있는데, 누구도 건반을 두드리지는 않는다. 장식으로 자리를 지키는 피아노 옆으로 손님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채소 바구니가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다. 낮 동안 커피잔이 놓였을 법한 그 자리에, 밤이 되면 불판과 앞접시가 대신 놓인다.

낮에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과, 밤에 술잔을 드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이 골목은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빵 냄새로, 오후에는 소스 냄새로, 밤에는 술 냄새로 채워지는 하루를 그저 순서대로 흘려보낼 뿐이다.
골목을 빠져나오기 전, 다시 분수 앞을 지난다. 낮에 봤던 사자 머리 조형물에서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다. 물소리는 낮이나 밤이나 같은데,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만 계속 바뀐다. 이 골목이 하루에 몇 번이나 다른 얼굴을 갖는지는, 아마 이 분수만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