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묵호 논골담길) 낡은 담장은 그림이 되기로 한 것이다
명태와 오징어를 나르던 지게에서 흘러내린 바닷물이 이 비탈길의 이름을 만들었다. 탄광과 어업이 함께 떠난 뒤, 그 가난한 담장에 2010년 누군가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동해 묵호 논골담길

묵호등대 주차장 쪽에서 좁은 계단 골목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름이다. 논골1길. 바랜 보랏빛 표지판 하나가 길의 번호를 알려준다. 그 아래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지고, 계단 양옆으로는 색을 입은 담장이 끝없이 따라붙는다.
논골이라는 이름은 누가 예쁘게 지어 붙인 것이 아니다. 명태와 오징어를 가득 실은 지게와 고무 대야가 이 비탈을 오르내릴 때마다, 거기서 흘러내린 바닷물이 흙바닥을 적셨다. 마른 날이 드물 만큼 길은 늘 질척거렸고, 그 모습이 꼭 논길 같다 하여 사람들은 이 동네를 논골이라 불렀다. 자랑할 만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저 발이 푹푹 빠지던 가난한 비탈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그 가난이 거저 생긴 것도 아니었다. 묵호항은 1941년,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작은 항구로 문을 열었다. 1963년에는 묵호등대가 처음 불을 밝혔고, 1964년에는 국제항으로 승격했다. 1968년에는 쌍용양회 시멘트 공장까지 들어서면서, 1960~70년대의 묵호는 석탄과 오징어와 뱃사람들로 불꽃처럼 호황을 누렸다. 그 호황을 떠받친 손들이 비탈 위 논골에 모여 살았다.
영원할 것 같던 불빛도 오래가지 않았다. 1983년 동해항이 국제무역항으로 떠오르면서 묵호항은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탄광 산업마저 함께 쇠퇴하자 한때 불야성이던 이 동네는 긴 침체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에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빛바랜 담장만 남았다.
그 담장을 지우지 않고 그림으로 채우기로 한 것은 2010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연합회가 함께한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평생 바다와 함께 산 마을 사람들의 삶이 슬레이트 담벼락 위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지게를 진 어부, 명태를 손질하는 아낙, 파도치는 배. 누군가 지어낸 예쁜 그림이 아니라, 이 골목에 실제로 살던 사람들의 하루였다.

2015년에는 '도시관광 활성화 공모사업'을 통해 벽화가 한 번 더 전면 보수됐다. 색이 바래면 다시 칠하고, 금이 가면 다시 메웠다. 담장을 고쳐 쓰는 마음은 매번 같았다. 지우지 않고, 덧입히는 것.
지금의 논골담길은 논골1길과 논골2길, 논골3길, 그리고 등대오름길까지 네 갈래 길로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등대오름길은 바다 조망이 가장 뛰어나 많은 사람이 오징어잡이 배와 오징어 지게를 그린 트릭아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느 길로 들어서든 결국 비슷한 풍경과 마주친다. 산비탈을 따라 옹기종기 붙어 앉은 지붕들, 그 지붕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바다.

계단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알게 된다. 이 길이 가파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평평한 땅이 귀했던 어촌 마을은 산을 깎아 집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고, 그 집들을 잇는 길은 계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가파름이 사진에 담기 좋은 각도가 되었지만, 한때는 지게를 진 사람들의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고단한 오르막이었다.
묵호역을 거쳐 가는 KTX가 다니기 시작한 뒤로 이 골목을 찾는 걸음은 눈에 띄게 늘었다. 2025년 묵호역 승하차 인원은 42만 7206명으로, 전년보다 11만 명 넘게 늘었다. 월평균 이용객은 약 35% 증가했다. 가난을 가리지 않고 색을 입힌 담장이, 이제는 역에서 내린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 비탈 꼭대기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질척거리던 길이라는 뜻의 이름을 간직한 채로, 논골담길은 지금도 매일 그 이름의 무게를 딛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맞는다. 그 담장에 그려진 건 결국 그림이 아니라, 떠나지 않고 이 비탈에 남았던 삶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