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포동 깡통시장·BIFF광장) 깡통에 불이 켜졌다
전쟁통에 미군 부대 통조림이 흘러들어와 생긴 이름이, 지금은 밤마다 불을 켜는 야시장이 되었다. 몇 걸음 옆에는 영화인들의 손자국이 남은 광장도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부산 남포동 깡통시장·BIFF광장

부평시장이라는 정식 이름보다 깡통시장이라는 별명이 먼저 입에 붙는다. 그 별명이 생긴 자리는 한국전쟁 이후다. 이 일대에 미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군용 통조림과 외제 물품이 함께 흘러들었고, 사람들은 이 골목을 자연스럽게 깡통시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도 함께 쓰였다. 밀수가 성행하던 시절, 상인들은 물건을 가게 안이 아니라 창고에 숨겨두고 손님이 찾을 때만 꺼내 팔았다.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가 귀신처럼 물건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두 별명 가운데 지금까지 남은 쪽은 깡통시장이고, 도깨비시장이라는 말은 옛이야기로만 전한다.
지금 이 골목은 국제시장, 자갈치시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세 시장으로 꼽힌다. 전쟁통에 아쉬운 대로 구해다 팔던 통조림 몇 상자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은 없는 게 없다고 할 만큼 커진 시장의 뿌리가 되었다.

해가 지면 이 골목은 또 한 번 얼굴을 바꾼다. 2013년 10월, 부평깡통시장은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의 야시장을 눈여겨보다가 국내 최초의 상설 야시장을 열었다. 낮 동안 장을 보던 좁은 통로에 밤이 되면 떡볶이와 어묵, 튀김을 파는 포장마차가 줄줄이 들어선다.
낮에 지나칠 땐 보이지 않던 조명이 저녁 무렵부터 하나씩 켜진다. 좁은 통로마다 먹거리 매대가 들어서면 시장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관광객만큼이나 현지 사람들도 섞여 있어서, 밤이 깊을수록 골목은 오히려 더 북적인다.

몇 걸음 옆, 손자국이 남은 광장
깡통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몇 걸음만 옮기면 전혀 다른 내력을 가진 공간이 나온다. BIFF광장이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면서 남포동 극장가 일대에 이 이름이 붙었다. 영화인들이 남긴 핸드프린팅이 바닥에 줄지어 있고, 한동안 이 광장은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무대였다.
2011년 해운대에 영화의전당이 들어서면서 영화제의 주 행사장은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렇다고 이 광장이 완전히 비워진 것은 아니다. 주 행사장을 내준 뒤에도 BIFF광장에서는 해마다 전야제 같은 행사가 이어지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다시 이 바닥의 손자국을 찾아 제 손을 대본다.
시장과 광장 사이, 다른 간판들
이 골목을 야시장 먹거리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도 못 본 셈이 된다. 좁은 통로 안쪽에는 산리오 캐릭터 상품을 모아 파는 소품샵이 있고, 그 몇 칸 옆으로는 사우나용품만 따로 모아 파는 가게가 있다. 오래된 그릇가게와 주방용품점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소품샵이 숨어 있는지 처음 온 사람은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영화를 보러 온 사람과 장을 보러 온 사람, 소품샵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같은 통로에서 어깨를 스친다. 누군가는 통조림이라는 단어조차 모른 채 이 골목에 들어와 지금 눈앞의 야시장과 소품샵만 보고 돌아간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름은 전쟁이 지어줬어도, 지금 이 골목을 채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시절의 발걸음들이다.
깡통시장이라는 이름도, BIFF광장이라는 이름도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던 말은 아니었다. 하나는 궁핍한 시절이, 하나는 축제가 지어준 이름이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두 이름이 몇 걸음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다는 것. 그것이 이 골목을 걸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