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스팟 데이터베이스 555 ABOUT
alleymag. 골목을 걷고, 재고,
기록하는 로컬 아카이브
기록한 골목92
발행 아티클2192
등록 스팟555
실측 업소0
기록 시작2026.09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책방골목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계단 마흔 개

이재모피자를 배불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걸어본 골목에서 만난 피란 시절의 계단입니다.

글
alleymag.
발행
2026.05.22
골목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책방골목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계단 마흔 개

책방골목을 몇 번이나 드나든 사람도 정작 이 계단은 처음 마주했다고 고백합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간 적은 있어도, 두 발로 걸어 오른 적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아이와 함께 근처에서 배불리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나선 걸음이었는데, 그 느린 걸음 덕분에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누비다 보면 바닥에 큼직하게 새겨진 글귀 하나가 발길을 붙잡습니다. '그날, 그곳, 그들의 이야기.' 뻥튀기 기계 옆에서 두 귀를 틀어막고 의젓하게 서 있는 아이들 동상과, 구수한 뻥튀기 아저씨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 그 글귀 아래 놓여 있습니다.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장면이라, 그 앞에 멈춰 서서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방문객도 있었습니다.

SCENE 01 : 그날, 그곳, 그들의 이야기
계단 한가운데 놓인 '사십계단기념비'와 그 너머로 까마득히 이어지는 돌계단입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까지 뻥 뚫려 보이는 구도가,
▲ 부산 중구 40계단 일대 · 2026.09 / 사진 penguinnews · https://blog.naver.com/penguinnews/224398957086 계단 한가운데 놓인 '사십계단기념비'와 그 너머로 까마득히 이어지는 돌계단입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까지 뻥 뚫려 보이는 구도가, 이 계단이 산비탈을 오르내리던 통행로였다는 걸 그대로 보여줍니다.

피란민이 오르내리던 계단

이 계단은 1909년부터 1912년 사이에 조성되어 북항부두와 고지대를 잇는 통행로였습니다. 전쟁이 나던 해에는 피란민들이 서로를 찾아 헤매던 상봉의 자리였고, 구호물자를 사고팔던 삶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원래 자리에서 조금 남쪽으로 옮겨 새로 만들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애환을 간직한 채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나치는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품은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무거운 사건과 그 시절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박물관 수업보다 값진 경험이었다고 적은 방문객이 있었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이 좁은 계단을 서성이며 눈물 흘렸던 이들의 자리라는 걸 알고 나면,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음의 무게가 조금 달라집니다.

남포동을 수없이 드나들었으면서도 이 계단만은 처음 마주했다는 고백은, 원도심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나옵니다. 익숙한 동네일수록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큰길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었던 계단이, 두 발로 직접 밟고 올라서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SCENE 02 : 산비탈에 새겨진 시간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 동상과, 그 옆에서 두 귀를 막고 선 아이들 동상입니다.
▲ 부산 중구 40계단 일대 · 2026.09 / 사진 penguinnews · https://blog.naver.com/penguinnews/224398957086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 동상과, 그 옆에서 두 귀를 막고 선 아이들 동상입니다. 이 블로거는 이 조형물 앞에 멈춰 서서 아이에게 피란 시절 이야기를 눈높이에 맞춰 들려주었다고 적었습니다.

책방골목에서 헌책 냄새를 맡으며 걷다가, 조금만 발걸음을 넓혀 이쪽으로 건너오면 전혀 다른 결의 원도심을 만나게 됩니다. 헌책방들이 사고파는 자리였다면, 이 계단은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던 자리였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피란의 기억을 품은 두 공간이 걸어서 닿을 거리에 나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원도심을 걷는 이유를 하나 더 보태줍니다.

유명하다는 맛집 한 곳을 배불리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배가 부르니 소화도 시킬 겸 걸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걸음이, 뜻밖에 칠십 년 전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간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책방골목을 둘러본 뒤 어디로 갈지 고민된다면,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걸음만 더 옮겨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헌책 한 권의 무게와 계단 한 칸의 무게가 이 원도심 안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두 곳을 다 걸어본 뒤에야 알게 됩니다.

40계단

역사 계단길

북항부두와 고지대를 잇던 옛 통행로로,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상봉 장소이자 구호물자 거래의 중심지였습니다. 지금은 그 시절을 기리는 조형물과 글귀가 계단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나치는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품은 공간.

주소
부산 중구·동구 일대(남포동 인근)
비고
1909~1912년 조성 ·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 현재 위치로 이전 · 조형물·글귀 바닥판 설치
네이버 블로그 방문 기록 1건 (2026.09)
이 글의 역사 서술은 이 골목 조사에서 확인된 자료와, 2026년 9월에 올라온 네이버 블로그 방문 기록 1건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작성자: penguinnews. 기록이 한 건뿐이라 다른 시점의 방문기가 확인되면 내용을 보강할 예정입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합니다.
보수동책방골목부산40계단원도심앨리매거진alleymag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