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온양온천거리) 목욕 수건 옆에 커피잔이 놓였다
백 년 넘은 목욕탕 거리에서 가장 먼저 식지 않는 것은 온천수가 아니라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다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문은 조금씩 다른 쪽으로 바뀌고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29
- 골목
- 아산 온양온천거리

온양온천역 뒤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간판이 아니라 길의 폭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어깨가 스칠 만큼 좁다. 그 틈으로 해장국집의 노란 간판이 걸려 있고, 가스통과 플라스틱 의자가 아무렇지 않게 길가에 나와 있다. 몇십 년을 그 자리에서 영업했을 법한 모습이다.
이 골목은 원래 목욕탕과 여관의 동네였다. 온천수가 나오는 자리마다 탕이 섰고, 탕 주변으로 하룻밤 묵을 여관과 해장할 식당이 따라붙었다. 몸을 녹이고 땀을 빼고 나면 배가 고파지는 게 사람의 당연한 순서였으니, 이 길의 업종 배치는 지극히 실용적이었다. 지금도 그 순서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신천옥사우나처럼 옛날 동네 목욕탕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곳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그 앞을 지나는 걸음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목욕탕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현대탕, 신정관, 신천옥사우나처럼 걸어서 몇 분이면 닿는 거리에 탕이 여러 곳 모여 있다. 하루 날을 잡아 이 탕 저 탕을 옮겨 다니며 목욕탕 세 곳을 도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탕마다 물값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서, 단골들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문을 민다. 이런 밀집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온천수가 솟는 자리마다 탕을 앉혀 온 오래된 습관의 결과다.

그 길에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동네의 생활감이 더 또렷해진다. 부동산 간판과 미용실 간판이 나란히 걸린 좁은 도로,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사람들이 조심스레 건넌다. 관광객보다 주민이 더 익숙하게 오가는 길이다. 이 거리의 바탕은 여전히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같은 골목 안에 다른 문이 하나둘 늘었다.
레트로라는 이름의 새 간판
역에서 멀지 않은 뒷골목에 자리한 마농커피가 그런 경우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사장님이 고른 LP판 음악이 매장 안을 채운다.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레트로 감성이 짙게 묻어난다고 적는다. 흥미로운 건 그 레트로가 꾸며낸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부터 오래된 골목이었고, 그 골목의 결을 그대로 살려 카페를 얹었을 뿐이다. 옛 목욕탕 거리의 낡음이 다른 세대에게는 고스란히 분위기가 된 셈이다.
역 건너편 골목의 쎄파르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같은 흐름을 탄다. 통유리 너머로 환하게 불을 밝힌 매장 안이 거리에서부터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밤 열 시까지 영업하는 이 카페는 주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와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몇 안 되는 자리 가운데 하나다. 온천을 끝내고 나온 사람들이 몸을 녹인 뒤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사우나가 아니라 카페인 밤이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썸머체리케이크카페처럼 역에서 몇 분 거리에 따로 자리를 잡은 디저트 전문점도 생겼다. 케이크를 앞세운 이런 가게들은 애초에 온천을 목적으로 오지 않은 손님도 끌어들인다. 목욕탕 거리였던 곳이 카페 거리로도 함께 불리기 시작한 배경이다.
변화는 카페에서 그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건물 안쪽에는 일식 오마카세를 내는 추자도 같은 집도 들어섰다. 문을 열면 정갈한 조리 향이 먼저 퍼지고, 두툼하게 썬 활어회와 초밥, 튀김, 매운탕까지 코스로 이어진다. 개별 룸 구조라 여름철에도 시원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후기가 붙는다. 목욕탕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간판치고는, 안쪽 풍경이 제법 낯설다.
같은 길, 다른 목적지
흥미로운 건 두 흐름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양관광호텔이나 온양제일호텔처럼 오랫동안 이 거리의 중심이었던 온천 시설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주말이면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 바로 옆 골목에서는 혼자 노트북을 펼친 사람이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한쪽은 몸을 데우러 왔고, 다른 한쪽은 분위기를 즐기러 왔다. 같은 역에서 내려 같은 골목을 걷지만 목적지는 서로 다르다.

호텔급 온천 시설 바로 주변에는 여전히 청국장집과 냉면집, 오래된 국밥집이 가깝게 붙어 있다. 온천욕을 하고 나면 뜨끈한 국물이 당긴다는 손님들의 공통된 습성을 받아내는 자리들이다. 세련된 카페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동안에도, 이런 노포들은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새로 생긴 가게와 오래 버틴 가게가 같은 골목 안에서 등을 맞대고 있는 셈이다.
2008년 수도권 전철이 온양온천역까지 이어진 뒤로 이 거리를 찾는 사람의 폭이 넓어졌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변화가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는, 역 앞 대로가 아니라 이런 뒷골목 카페들을 봐야 비로소 보인다. 전철이 실어 온 것은 관광객만이 아니었다. 이 동네의 낡음을 다르게 읽는 눈을 함께 실어 왔다.
목욕탕과 여관이 주인이던 거리에, 카페가 세입자로 들어와 사는 모양새다. 아직은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밀어내지 않았다. 다만 저녁이 되어 사우나 간판 불이 하나둘 꺼질 때, 카페의 통유리는 그제야 더 환해진다. 이 골목의 다음 저녁은 어느 쪽 불빛이 더 오래 켜져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하나다. 몸을 녹이러 오는 사람과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사람이 같은 골목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간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 둘이 맞물려 돌아가는 한, 이 거리의 저녁은 당분간 꺼지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