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모란시장) 그 이름은 꽃에서 온 게 아니다
모란(牡丹)이라 불리지만 유래는 꽃이 아니다. 두고 온 봉우리 하나를 그리며 연 5일장이, 반세기를 지나 수도권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 되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성남 모란시장



모란(牡丹)이라는 이름은 꽃에서 왔을 것처럼 들리지만, 정작 이 이름은 꽃에서 온 게 아니다.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홀어머니를 북한 평양에 두고 혼자 남으로 내려온 사람이 있었다. 예비역 대령으로 예편한 김창숙은 함께 내려온 이들과 성남 일대의 황무지를 개간해 자리를 잡았다.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그는 1964년, 주민들이 생필품을 구하고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5일장을 열었다. 장의 이름에는 어머니가 계신 평양의 모란봉에서 한 글자를 가져와 붙였다고 전한다.
꽃 이름처럼 들리는 이 간판 뒤에는 그런 그리움이 있다. 장이 서는 순간부터 모란은 피난의 끝에서 다시 뿌리내리려는 사람들의 자리였던 셈이다.
1970년대 서울의 재개발로 성남에 사람이 몰려들면서, 장은 처음 섰던 자리를 넘어 성남 대로변까지 넓게 번져 나갔다. 작게 시작한 5일장이 도시가 커지는 속도를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닷새마다, 수도권에서 가장 큰 장이 선다
지금 모란시장은 매달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날, 그러니까 4, 9, 14, 19, 24, 29일에 장이 선다. 장날이면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곳곳에서 사람이 몰려들어, 쉬는 날에는 하루 최대 10만 명이 이 골목 사이를 오간다고 한다.


장이 서면 좌판은 품목별로 나뉘어 늘어선다. 화훼 자리에는 장미며 다육이며 화분이 쌓이고, 약초 자리에는 산더미 같은 한약재가 나무껍질째로 쌓인다. 그 옆으로는 토끼와 새, 미꾸라지와 자라가 담긴 통이 놓이고, 한쪽켠에는 오래된 그릇과 옷가지를 펼쳐놓은 구제 좌판까지 더해진다. 양곡과 생선, 의류와 잡화, 그리고 온갖 먹거리까지 한 골목 안에서 동시에 펼쳐지니, 5일장이라는 이름 하나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품목이 다양하다.
4와 9, 숫자 두 개가 전부다. 복잡한 셈법도 음력도 필요 없다. 그 단순한 규칙 하나가 반세기 넘게 이 골목의 리듬을 정해 왔고, 좌판 상인들은 그 리듬에 맞춰 트럭을 몰고 왔다가 해가 지면 다시 거리를 비운다.
다시 지은 자리
오래 쓰던 장터는 2018년 2월, 바로 옆 공영주차장 부지에 새로 지어진 자리로 옮겨갔다. 성남시가 2014년부터 추진한 이전이었다.
옮긴 자리에는 635명의 상인이 들어섰다. 635개의 서로 다른 생업이 한 지붕 아래 모여, 날마다 혹은 닷새에 한 번씩 저마다의 좌판을 펼치는 셈이다.
피난지에서 이름 하나를 걸고 선 장이,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지나 수도권에서 가장 큰 5일장이 되었다. 두고 온 봉우리의 이름을 걸었던 그 마음까지는, 지금 이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닷새에 한 번, 그 이름 아래 여전히 사람이 모인다는 사실만은 그대로다. 간판에 적힌 두 글자를 읽을 때, 그 뒤에 이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