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총독부를 등지려 북향으로 지은 집, 심우장을 걷다
누구는 점심을 먹고 산책 삼아 들렀고, 누구는 시집 한 권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마지막 십일 년을 보낸 작은 한옥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걸음을 멈췄습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1
- 골목
- 성북동

성북동 골목 안쪽, 좁고 가파른 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심우장이 나옵니다.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처마 아래 걸린 현판에는 '尋牛莊'이라는 글자가 정갈하게 쓰여 있는데, 소를 찾는 것에 빗대어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르는 불교의 심우 설화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집을 다녀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건 방향입니다. 한옥은 보통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짓는데, 이 집은 북향입니다.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총독부 건물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고 북향 터를 골랐다는 이야기가 여러 방문자의 기록에 똑같이 등장합니다. 작은 한옥 하나에 이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처마와 마당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고 한 방문자는 적었습니다.
점심 끝에 들른 사람
성북동에서 보리밥으로 점심을 먹은 뒤 근처라서 들렀다는 방문자가 있습니다. 성북동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식사 후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보기 좋은 코스였다고 적었습니다. 정문의 하얀 벽면과 검은 철문, 그 옆에 붙은 관람 시간 안내판을 지나 들어서면 마당 한편에 심우장의 뜻과 한용운의 시가 적힌 안내 벽면이 세워져 있다고 했습니다. 내부에는 선생이 남긴 친필 글씨와 서예 작품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는데, 옛 선비의 방에 들어온 듯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적었습니다.

가옥 한편에는 옛 부엌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흙으로 바른 아궁이와 무쇠 가마솥 두 개, 깨끗하게 엎어놓은 사발들이 당시의 소박한 생활을 보여준다고 이 방문자는 적었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검소한 가옥의 형태가 선생의 성품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말로, 소란스러운 도심 속에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시간을 정리했습니다.
시집을 들고 찾아온 사람
다른 방문자는 이 집을 문학으로 먼저 기억합니다. 한용운 하면 흔히 시집 「님의 침묵」을 떠올리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흑풍, 박명, 후회 같은 소설도 연재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쓴 승려였으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그의 여러 얼굴을, 이 작은 한옥 앞에서 다시 떠올리게 된다고 이 방문자는 적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함께 짚었습니다.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은 또 다른 걱정을 안고 옵니다. 성북동은 오래된 골목과 언덕길이 많아 여기까지 차를 가져가도 되나 싶은 순간이 있다고 한 방문자는 적었는데, 성북동길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머지는 걷는 방법을 택했다고 했습니다. 큰 도로에서는 그냥 서울의 한 동네처럼 보였는데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담장과 주택, 나무들이 나타난다고, 이 길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들이가 되는 곳이라고 적었습니다.


규모가 큰 관광지는 아닙니다. 내부도 크지 않아 조용히 걸으며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은 한옥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록에는 하나같이 방향과 이름의 사연이 등장합니다. 북향으로 지은 집, 소를 찾는 이름의 집. 크기로 압도하지 않는 자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마 그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심우장
역사 가옥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한옥입니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 북향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고, 친필 서예 작품과 옛 부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 주소
- 서울 성북구 성북로29길 24
- 영업
- 매일 09:00 - 18:00
- 가격
- 무료
- 비고
- 인근 성북동길 공영주차장 이용(서울 성북구 성북동 230-20, 26면) /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올라가는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