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관아길) 관아가 떠난 자리에, 누군가 다시 문을 열었다
조선의 관아가 있었고, 그다음엔 법원과 은행이 있던 자리. 관공서가 모두 떠나고 한동안 아무도 반기지 않던 이 골목에, 다시 불을 켠 건 행정이 아니라 몇 명의 청년이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충주 관아길

관아길이라는 이름은 이 골목이 유명해진 뒤에 붙은 것이 아니다.
충주시 성내동 일대에는 조선시대 충청도의 행정을 맡아보던 관아, 충청감영이 있었다. 그 이름이 그대로 지명에 남아 지금의 관아길, 관아골이 됐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이 골목은 여전히 충주의 중심이었다. 법원과 검찰청, 한일은행 같은 관공서가 이 일대에 모여 있어서, 볼일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관공서와 상권이 하나둘 신도심으로 옮겨가면서, 이 골목은 조용히 등을 돌리는 거리가 됐다. 빈집이 늘어 한때 공실률이 60퍼센트까지 치솟았고, 해가 지면 인적이 끊긴 자리에는 담배를 피우는 비행청소년들이 모여들어 담배 골목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청년 다섯이 다시 쓴 이름
충주시는 2017년부터 성내동 관아골 일원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그 지원으로 이 골목에 가장 먼저 문을 연 가게는 인형공방 제이플래닛이었다.
정작 골목을 바꾼 결정적인 움직임은 지원이 끊긴 자리에서 나왔다. 이상창을 포함한 청년 다섯은 준비하던 지원 사업이 무산되자 행정의 도움 없이 2018년 5월 협동조합을 꾸렸고, 같은 해 십삼 년 동안 비어 있던 집 한 채를 칠천만 원에 사들여 개조했다. 그렇게 문을 연 카페가 세상상회다.

세상상회가 자리를 잡자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졌다. 화실이 들어오고, 사진가의 인화 작업실 겸 전시 공간이 생기고, 작은 잡화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담배 연기로 자욱하던 골목에 커피 볶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가게 하나가 다음 가게를 불러오는 식으로, 빈집이었던 자리들이 순서를 기다리듯 차례로 채워졌다.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사람 중 상당수는 관아가 있던 자리라는 사실보다, 세상상회나 고티맨숀이라는 이름을 먼저 알고 찾아온다. 한때 60퍼센트에 달했던 공실률은 이제 12퍼센트 수준으로 줄었다. 빈집이 가게로 바뀌는 속도가, 이 골목이 다시 쓰이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증명한 셈이다.

이 골목은 걸어서 채 2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짧다. 길이로 치면 일흔에서 여든 미터 남짓이다. 그 짧은 거리 안에 세상상회와 하이라이트 같은 카페, 사과김치짜글이를 내는 짜글옥,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복서울해장국까지 업종도 세대도 다른 가게들이 나란히 서 있다. 관아가 있던 자리에,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불러모으는 가게들이 들어선 셈이다.
아침이면 해장국집 앞에 차를 대고 들어가는 손님이 있고, 낮이면 소품샵을 구경하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고, 저녁이면 화덕 피자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골목인데 찾아오는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
골목 어귀 안내판에는 이제 둘째 주 토요일마다 선다는 담장마켓 소식이 붙어 있다. 조선의 관아가 세운 골목을, 몇백 년 뒤 청년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세운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