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카페거리) 카페가 카페를 부른 자리
성수동의 공식 지명 중에 '카페거리'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구역을 그렇게 부른다. 가죽을 자르고 재봉틀을 돌리던 자리에, 공장이 아니라 카페가 다시 들어섰기 때문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07
- 골목
- 서울 성수동 카페거리

성수역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오늘 들어온 신메뉴 사진이 걸린 입간판과 어제 막 문을 연 팝업의 현수막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성수동 카페거리'라는 이름은 지도 어디에도 공식으로 박혀 있지 않다. 행정동도 아니고 도로명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구역을 그렇게 부르고, 그 부름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몇 걸음만 걸어보면 알게 된다.
이름 없는 땅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대개 둘 중 하나다. 원래 있던 것이 워낙 강해서 이름이 저절로 따라붙거나, 아니면 예전에 있던 것이 완전히 지워지고 새로 들어온 것이 자리를 통째로 차지했을 때다. 성수동 카페거리는 후자에 가깝다. 이 구역이 지금처럼 불리기까지, 이 땅은 전혀 다른 일을 하던 자리였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성수동 카페거리'를 쳐 보면 특정 건물 하나가 아니라 성수역과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상권 전체가 그 이름으로 묶여 나온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카페거리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대림창고가 있는 자리까지만 좁게 잡고, 누군가는 서울숲으로 이어지는 길목까지를 통틀어 부른다. 경계가 이렇게 흐릿하다는 것 자체가 이 거리의 성격을 말해준다. 행정구역이 그어 놓은 선이 아니라, 카페가 들어선 자리를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그어지는 선이기 때문이다.

원래 여기 있던 것
이 땅은 원래 카페를 위해 비워진 자리가 아니었다. 1960년대부터 공업지역으로 개발된 성수동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죽과 피혁을 다루는 공장, 수제화 공장, 자동차 정비소와 창고가 빼곡히 들어찬 준공업지역이었다. 1980년대에는 금호동과 명동, 충무로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그곳에 있던 수제화 업체들이 떠밀리듯 이 동네로 옮겨왔고, 그렇게 모인 공장들이 수제화 집적지를 이뤘다.
흐름이 바뀐 건 2005년이다. 서울숲이 문을 열면서 공장지대였던 이 일대의 인상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수제화를 비롯한 토착 산업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문을 닫는 공장이 하나둘 늘었고, 비어 가는 자리의 싼 임대료를 보고 예술가와 작은 카페, 공방이 들어왔다. 공장이 다 떠난 것도 아니고 카페가 다 들어선 것도 아닌, 두 가지가 한동안 어색하게 어깨를 맞대던 시절이었다.
카페가 카페를 부르기까지
2010년을 전후해서는 수제화 산업 자체의 축도 바뀌었다. 공장에서 신발을 '만드는' 일보다, 장인이 직접 '파는' 작은 브랜드를 꾸리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갔다. 서울시가 이 일대를 수제화 특화산업 지역으로 지정해 힘을 보탰지만, 그 지원이 공장의 숫자를 다시 늘리지는 못했다. 대신 이때부터 거리의 간판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상징으로 가장 자주 불려 나오는 건물이 대림창고다. 1970년대 초에는 정미소였고, 1990년대부터는 공장에서 쓰는 부자재를 쌓아 두는 창고로 쓰였다. 그 창고가 갤러리를 품은 카페로 바뀌면서, 전국 대형 카페 바람의 시작점으로 꼽히게 됐다. 정확히 언제부터 간판을 바꿔 달았는지는 기록마다 다르지만, 창고였던 자리가 카페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동네에 처음 보여준 건물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한 건물이 성공하면 그 옆 건물도 따라 한다. 카페 하나가 사람을 불러모으면, 그 사람들을 노리고 다음 카페가 옆자리에 들어선다. 공장이 떠난 빈자리를 상점 하나가 채운 게 아니라, 카페가 카페를 부르며 거리 전체가 통째로 다시 짜인 셈이다. 최근 몇 해 사이에는 또 다른 층이 얹혔다. 무신사는 2020년 성수동 스파크플러스 성수2호점에 입주하며 이 동네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부지를 사들여 사무공간과 상업시설을 늘려갔다. 국내외 브랜드의 팝업이 줄을 잇고, 하루 임대료가 10평 기준 백만원까지 오른 자리도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이 거리를 원하는 돈도 함께 몰렸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
지금 이 거리를 걷는 사람은 그 겹겹의 시간을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건 줄을 선 디저트 가게와, 일주일이면 간판이 바뀌는 팝업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인파뿐이다. 하지만 발밑의 보도블록 아래에는 여전히 가죽 자르던 손과 재봉틀 돌리던 소리가 쌓여 있다. 그 위에 원두 볶는 냄새가 덮인 지 아직 스무 해가 채 안 됐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간판이 없거나 유난히 작은 가게가 많다는 것도 눈에 띈다. 상호를 크게 내걸기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내부 풍경과 그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이 간판을 대신한다. 어느 가게인지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후기나 사람들 사이의 입소문으로 먼저 알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건물의 겉모습보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더 큰 정보가 되는 동네인 셈이다. 큰 프랜차이즈 카페도 섞여 있지만, 그보다는 저마다 개성을 내세운 개인 카페가 골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걷는 재미를 만든다.
가죽 냄새가 원두 냄새로 바뀌기까지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공장에서 카페로, 다시 카페에서 팝업과 브랜드 쇼룸으로, 이 거리는 한 세대 안에서도 몇 번씩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다음 번에 이 거리를 채우고 있을 냄새는 지금의 커피 향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