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금리단길) 아이들 통학로가 먼저 넓어졌다
구미역 뒷골목, 전봇대를 걷어내고 인도를 넓힌 자리에 제일 먼저 들어선 건 가게가 아니라 걸음이었다. 그 걸음을 따라 카페가 뒤따라왔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구미 금리단길

구미역에서 내려 뒤편으로 몇 걸음만 걸으면 원평동 골목이 시작된다. 금오산로22길을 따라 각산네거리 쪽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사람들은 금리단길이라 부른다. 구미역과 금오천 사이에 끼인 자리라, 기차 소리와 물소리가 한 블록 간격으로 번갈아 들리는 동네이기도 하다.
금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정확히 언제 누구에게서 처음 나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전국 곳곳에 비슷한 이름의 거리가 하나둘 생겨난 흐름 위에 이 길도 함께 올라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름이야 어디서 왔든, 이 길이 지금의 얼굴을 갖추게 된 사정은 따로 있다.

통학로에서 카페거리로
시작은 카페가 아니라 통학로였다. 구미여중과 구미초, 경상북도교육청 구미도서관을 오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머리 위로 지나던 전선을 땅 아래로 내리는 지중화 사업이 이 골목에서 먼저 벌어졌다. 선주원남동 도시재생 보행환경개선사업과 함께 차가 다니는 폭을 줄이고 사람이 다니는 폭을 넓히는 작업이 이어졌다. 자동차의 자리를 걸음의 자리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렇게 넓어진 인도 위로 자동차 대신 걸음이 늘어나는 걸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다. 2020년 9월 구미시가 발표한 걷기 좋은 길 목록에 이 길의 이름이 올랐을 무렵엔 아직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가까웠다. 그 사이 몇 해, 걷기 좋아진 길을 알아본 이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 문을 연 쪽은 큰 자본이 아니었다. 오래된 저층 주택과 창고를 그대로 빌려, 벽만 손보고 들어간 작은 가게들이 먼저였다. 그래서 이 골목의 가게들은 하나같이 크지 않다. 간판을 바꿔 달고 테이블 몇 개를 들였을 뿐인데, 지나던 사람들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책이 있는 골목
구미시는 이 길을 그냥 카페 골목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책 읽는 금리단길' 사업을 통해 거리의 카페와 북카페, 술집, 게스트하우스가 책과 출판을 테마로 시낭송회와 북토크를 여는 자리를 만들었다. 커피 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이 이 길에 섞여 있다면, 그 출처는 아마 여기일 것이다.
독립서점 책봄이 이 길에서 지역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며 독서모임과 필사모임을 연다. 매장 하나가 책방으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이 거리가 단순히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만 소비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닻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골목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금 금리단길을 걸으면 감성 카페와 음식점, 작은 공방과 소품샵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일본식 라멘과 우동을 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바로 옆 가게는 오래전부터 돌곱창을 구워온 노포다. 꽃집과 메이크업숍, 레코드를 틀어놓는 카페까지 섞여 있어서, 이 길의 업종을 한마디로 묶기는 어렵다. 주말이면 구미역 후면광장 주차장까지 외지 차량이 들어차고, 평일 오전이면 같은 골목을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지나간다. 둘 다 이 길의 진짜 모습이다.
봄이 오면 구미도서관을 낀 금오천을 따라 금오산 입구까지 벚꽃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 계절이 아니어도, 전선을 걷어내고 넓힌 인도 위로 사람이 계속 걸어 들어오는 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길이 앞으로 무엇으로 더 채워질지는, 아직 아무도 다 쓰지 않은 페이지처럼 열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