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노가리골목) 제주침시술소, 간판만 보면 침 맞으러 가는 곳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의원 간판과 약재 서랍을 그대로 두고, 제주에서 온 메밀국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점심이면 을지로에서 가장 긴 줄이 서는 골목 한 칸.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1
- 골목
- 을지로 노가리골목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걸어 들어가면, 수표로 48-12 1층에 파란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제주침시술소. 처음 이 앞을 지나는 사람은 거의 다 같은 생각을 합니다. 침 맞으러 들어가는 곳인가. 간판 아래 걸린 나무 약재 서랍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더욱 한의원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 자리는 사장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의원이었다고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문을 닫은 뒤 간판과 서랍은 그대로 두고, 제주에서 건너온 메밀국수 가게가 그 안에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본 간판에 발길을 돌릴 뻔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을지로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상대가 한 시간이나 늦는 바람에 혼자 카페에서 기다리다 잔뜩 삐진 채로 배고픔을 참았고, 화해의 메뉴로 고른 곳이 하필 간판만 보면 침 맞으러 가는 곳 같았다고 적었습니다. 면이라면 일단 먹고 보는 사람이라 망설임 없이 들어갔고, 결국 그 자리에서 화해를 마쳤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의 이 골목은 전쟁에 가깝습니다. 회사 점심시간이 11시 30분부터라 그 시간에 맞춰 나가면 엘리베이터부터 줄을 서야 하고, 을지로의 웬만한 맛집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메밀면이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예전부터 가보고 싶다고 지도에 점을 찍어 두었다가 마침 회사에 여유가 생긴 날 11시 오픈런으로 달려간 사람도 있습니다. 11시 15분에 도착해도 이미 대기가 길었다는 기록이 있고, 11시 25분부터 줄을 섰는데 앞에 일곱 팀이 있었고 그 뒤로도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대기가 계속 늘어났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약은 받지 않고 워크인만 가능해서, 캐치테이블로 대기를 걸 수 있는 시간도 낮 12시부터로 정해져 있습니다.
줄이 더 길어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식당 줄 설집 특집에서 을지로의 은갈치 메밀국수집으로 소개된 뒤, 출연진 여럿이 다녀간 가게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문을 연 지 두 달쯤 된 가게가 방송 한 번으로 줄 서는 집이 됐다고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간장과 한약재로 끓인 육수
대표 메뉴는 들기름 메밀국수입니다. 간장에 한약재와 디포리, 가쓰오부시를 넣어 직접 끓인 육수를 쓴다고 적은 사람이 있고, 그 위에 통째로 올라가는 은갈치튀김의 비주얼이 압도적이라 그것 하나만 보고 방문을 결심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콤달짝지근한 양념에 버무린 한치비빔메밀도 있고, 더운 날엔 시원한 한치냉메밀을 고른 사람도 있습니다. 사이드로 나오는 돔베냉족발은 국내산 돼지 앞다리를 삶아 차갑게 숙성한 메뉴로, 사장님이 직접 추천하는 메뉴라고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한의원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벽을 채운 나무 약재 서랍, 그 위에 걸린 오래된 레코드와 사진들, 테이블마다 놓인 레트로 유리병에 담긴 물까지. 옛날 광고들을 구경하느라 음식이 언제 나왔는지도 몰랐다고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걸려 있어서, 식사하는 내내 옛날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세월이 묻은 간판과 서랍 사이로 사람들이 메밀국수를 먹는 풍경이, 이 가게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낮과 밤의 얼굴도 다릅니다. 낮에는 제주 식재료로 만든 메밀국수를 팔지만, 저녁이 되면 오뎅탕과 각종 안주를 두고 소주 한잔하는 술집으로 바뀝니다. 선선한 가을 저녁엔 뜨끈한 오뎅탕과 소주 한 잔이 딱 어울린다고 적은 사람이 있고, 창가석에 앉으면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먹기 좋다고 추천한 사람도 있습니다. 웨이팅 줄에 서 있으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자주 마주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침 맞으러 가는 줄 알았던 골목 간판 하나가, 지금은 을지로에서 가장 긴 점심 줄을 만드는 가게가 되었습니다. 한 번 다녀간 사람이 또 찾아오고, 그 줄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발길을 멈춥니다.
제주침시술소
메밀국수·주점을지로3가역 11번 출구 골목 안, 간판과 약재 서랍을 그대로 둔 옛 한의원 자리에 제주에서 건너온 메밀국수집이 들어섰습니다. 낮에는 메밀국수, 밤에는 오뎅탕과 안주를 파는 공간입니다.
침 맞으러 간다 그래서 그래요? 하고 따라갔는데
- 주소
- 서울 중구 수표로 48-12 1층
- 영업
- 평일 11:00 - 다음날 01:00(라스트오더 23:40) / 주말 12:00 - 01:00, 브레이크타임 15:00-17:30(주말 15:00-17:00)
- 가격
- 들기름 메밀국수 13,000원 / 한치비빔메밀·한치메밀 18,000원 / 은갈치튀김메밀(냉·온) 17,000원 / 돔베냉족발(150g) 16,000원 / 수제 등심 돈까스 10,000원
- 비고
- 예약 불가, 워크인·캐치테이블 웨이팅(낮 12시부터 오픈) /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 도보 2분 / 저녁엔 안주·소주 중심 술집으로 운영 / 주차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