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로데오거리) 빈자리가 다시 채워지는 시간
육 년을 버틴 카페가 가로수길로 떠나는 자리 옆에서, 다른 매장은 벌써 개업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29
- 골목
- 압구정 로데오거리

골목 안쪽, 벽돌로 쌓은 아치문 앞에 늘 줄이 있었다. 육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찬가지였다. 그 아치문 안쪽에서 커피를 팔던 카페가 2026년 8월 25일, 문에 안내문 하나를 내걸었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도산점은 가로수길로 간다고. 8월 25일까지만 이 자리에서 영업하고, 가로수길 어딘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육 년간 이 골목의 사계절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익숙했던 아치문 하나가, 그렇게 다른 주소를 향해 떠날 채비를 했다.
붉은 벽돌을 반원으로 쌓아 올린 그 아치문은 골목 안쪽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모양이었다. 전구를 두르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그 아래를 지나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그저 줄을 서기 위해 뒤를 잇는 사람도 있었다.
이 거리를 조금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이동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십몇 년 전, 이 골목을 떠난 이름들이 향했던 곳이 가로수길이었다. 땅값이 상권 크는 속도보다 가팔라지자 세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하나둘 그 길로 옮겨 갔고, 그 흐름을 따라 이 거리는 '패션 1번지'라는 이름을 내주었다. 그런데 지금, 그 흐름을 거스르는 가게가 이 골목 한복판에 서 있다.

육 년이라는 시간은 이 골목에서 짧지 않다. 비 오는 봄날에도, 눈 내리는 겨울에도 그 아치문 앞에는 우산을 든 줄이 늘어서 있었다. 크리스마스마다 전구가 아치를 감쌌고, 여름이면 그 자리에 초록이 무성했다. 한 계절도 빠짐없이 사람을 불러 모으던 문이었다.
영업 마지막 날 저녁, 그 자리를 오래 지켜본 이는 이렇게 적었다. 이삿짐은 다 떠나고 폐기물만 남았다고. 사진으로 육 년의 사계절을 하나씩 기록해 온 사람에게, 대형 가게 하나가 한순간에 문을 닫는 모습은 이 거리가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를 다시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새 이름이 들어오는 속도
물론 이 거리를 떠나는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대 이후 도산공원 일대와 손잡은 '착한 임대료 사업' 같은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마뗑킴이나 위글위글 같은 MZ세대 겨냥 브랜드들이 이 거리로 들어왔다. 임대료가 예전만큼 버겁지 않아진 덕분에 큰 브랜드부터 작은 브랜드까지 대표 매장을 내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2024년 12월, 압구정로데오 상권에는 상가 천서른한 곳이 있었다. 바로 옆 도산대로는 그해 3분기, 백 곳 중 여섯 곳 남짓이 비어 있었다. 누군가 떠난 자리 여섯 곳마다, 다음 간판을 걸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도산공원 인근은 이미 명품 브랜드숍과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세계 각지의 스트리트 패션 매장이 밀집한 자리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 옆 로데오거리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재정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리를 잡은 브랜드와 이제 막 들어오는 브랜드, 떠나는 가게가 한 골목 안에 동시에 있다.
한 골목 안에 세 가지 시간이 겹쳐 있는 셈이다. 이미 자리 잡고 오래 버틴 시간, 이제 막 들어와 자리를 다지는 시간, 그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시간.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이 골목은 전혀 다른 표정으로 보일 것이다.

골목 한 귀퉁이, 초록색 차양을 두른 가게 앞에는 파란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벽돌 사이로 아직 마감하지 않은 자리가 드러나 있고, 통유리에는 '곧 오픈 예정이네요'라는 문구가 붙었다. 몇 걸음 옆 가게는 이미 저녁 손님으로 테이블이 채워져 있었다. 문을 닫는 자리와 문을 여는 자리가 같은 골목, 같은 시간 안에 나란히 있는 셈이다.
착한 임대료 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도가 노린 것도 결국 이 회전을 늦추는 일이었을 것이다. 임대료를 눌러 두면 오래 버티는 가게가 늘어날 거라는 계산이다. 그 계산이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는, 육 년을 채우고 떠난 카페 하나를 보고 나면 쉽게 단언하기 어려워진다. 임대료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이동도 이 골목에는 분명 있다.
육 년을 버틴 카페가 떠나는 것도, 초록 차양 아래서 누군가 새로 문을 여는 것도 이 거리에서는 같은 흐름의 다른 얼굴이다. 자리는 비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어떤 이름이 얼마나 오래 걸려 있을지는, 이번에도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