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전포카페거리) 볕이 이 골목을 통과하는 방식
공구와 부품을 팔던 자리마다 지금은 커튼이 걸려 있다. 같은 골목을 걷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남긴 말은 결국 '여유'였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부산 전포카페거리

창을 통해 들어오는 볕은 가녀린 커튼을 거쳐 한 번 걸러진 뒤에야 테이블 위에 닿는다. 어느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았던 누군가는 그 빛을 유독 오래 기억했다. 회색의 적막한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초록빛 식물 몇 그루가 놓여 있었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볕이 따뜻했다고 적었다. 공구상가였던 시절의 거친 벽은 허물지 않은 채로, 그 위에 식물과 빛만 새로 들였다.
이 골목을 걷는 사람들이 남긴 문장에는 비슷한 말들이 반복된다. 여유롭다, 아늑하다, 조용하다. 좁은 상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인데도,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소란과는 다른 공기가 흐른다고 다들 적는다. 바 테이블 하나짜리 작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도,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그 한 뼘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문 앞에 남은 글씨
어느 카페 입구 옆 벽에는 누군가 테이프로 붙여 둔 쪽지가 있다. 기똥찬 하루 보내세요, 라고 적힌 글씨가 낡은 벽돌과 벗겨진 페인트 사이에 붙어 있었다. 몇 걸음 옆에는 나무판에 써 내려간 다른 문장도 있다. 오늘을 살고 있었다, 언젠가 그리워질. 우산 하나가 그 아래 접힌 채 기대어 있었다.
공구를 팔던 자리에 누가 이런 문장을 걸어둘 거라고 짐작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셔터와 간판 숫자만 있던 벽에, 지금은 누군가의 손글씨가 붙어 있다. 이 거리를 스쳐 간 사람들이 그 글씨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남기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을 벽인데, 누군가 거기에 마음을 적어 붙여둔 순간부터 그 벽은 그냥 벽이 아니게 됐다.

가을이 되면 이 거리로 가는 이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향긋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고 쓴 사람이 있었다. 해질 무렵에는 오후 시간대에 운영 종료를 신경 써야 할 만큼 느긋하게 머무는 손님이 많다고도 했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가까운 거리에서 열리는 작은 축제를 찾아가는 것만으로 기분이 바뀐다고 적은 글도 있었다.
어느 레트로 카페는 다방이라는 말을 그대로 간판에 쓴다.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에 LP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고, 다녀간 사람은 적었다.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는 말도 함께였다. 공구상가의 간판이 내려간 자리에, 또 다른 과거의 공기를 일부러 들여놓은 셈이다.

에스프레소와 플랫화이트의 밸런스가 좋았다고 적은 사람, 디카페인 메뉴까지 신경 써서 만든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적은 사람. 저마다 마신 커피는 달랐지만, 이 골목에서 보낸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들 같았다.
공구와 나사를 팔던 자리에 지금은 커튼과 화분이 놓여 있다. 그 볕이 언제까지 이 골목을 이런 방식으로 통과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그 빛 아래서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창밖으로는 좁은 골목이, 창 안으로는 식물 그림자가 긴 오후를 나눠 가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