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무게를 받아줄 다음이 없다
시계를 고치는 기술은 배움의 자리에서 전해진다. 그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예지동 시계골목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자본의 변화보다 더 무겁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예지동 시계골목



시계 수리는 책으로 배우는 일이 아니었다. 스무 살 갓 된 젊은이가 점포에 들어와 선배 기술자의 손 옆에 서서, 몇 년을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배우는 것이 시계골목의 기술 전수였다. 한 명이 배우는 데 최소 오 년은 걸렸다. 그리고 배운 그 손가락이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지려면 또 오 년이 필요했다.
그 배움의 과정은 말보다 손이 먼저였다. 선배가 부품을 다루는 손놀림을 곁눈질로 익히고, 실수를 해가며 몸에 새기는 방식이었다. 누구도 매뉴얼을 써서 가르치지 않았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가는 감각이었기에, 그 감각을 이어받을 손이 사라지면 다시 되살릴 방법이 없다.
그런데 지금 골목에 남은 상인들은 나이를 먹고 있다. 60대 중반을 넘긴 기술자들도 있고, 70에 가까운 장인도 있다. 그들이 기술을 나눌 수 있는 나이의 제자를 찾은 지 이미 십 년이 넘었다.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 대부분은 조용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기술자들은 낡은 시계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며 시간을 보낸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을 놀리지 않는 것이 이들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없어도 손은 쉬지 않는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라디오 소리가 골목 안을 채운다. 뉴스나 트로트가 낮게 흘러나오는 가게 안에서, 상인은 그 소리를 배경 삼아 작업에 몰두한다. 오래 반복된 이 리듬이 깨지는 순간은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뿐이다.
왜 젊은이가 들어오지 않는가. 그건 둘이 아니라 셋, 넷의 이유가 있다. 재개발이 지구로 묶여 있으니 건물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다. 투자가 없으니 점포 임차료도 안 떨어진다. 고객도 줄고, 팔리지도 않는 자리에 들어와 오 년을 일해야 한다는 건, 삶의 도박이다.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건 당연했다.
몇몇 젊은이가 잠깐 관심을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손기술을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벌 수 있는 돈을 견주어보면 답이 쉽게 나왔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만큼 벌 수 있는데 굳이 오 년을 배움에 쏟을 이유가 없었다. 이 계산 앞에서 대부분의 관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드물게 자식이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경우도 오래가지 못했다. 부모 세대가 겪은 고생을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기술을 전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대물림을 막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 자신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은 역설적이다.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으니 기술이 더 귀해진다. 반대로 기술이 귀해질수록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리는 더 불안정해진다. 이 골목을 채웠던 3백여 점포가 지금은 시를 읽을 수 없는 숫자가 되어버렸다.
남은 상인들끼리는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옆 점포 사장이 몸이 아파 며칠 문을 닫으면, 굳이 묻지 않아도 소문이 돈다. 손님이 뜸한 날엔 서로 차 한 잔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이 골목에 남은 몇 안 되는 동료라는 이중의 관계가 여기서는 자연스럽다.
한 기술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은 벌써 십 년 전부터 했다.' 예지동 시계골목의 미래는 이미 십 년 전에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끝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고,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뿐이다.
종로청계관광특구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 골목은 관광지가 아니다. 관광객들도 들어오지 않고, 골목 자체가 홍보되지도 않는다. 종로 일대의 전통 상권이 재생되는 와중에도, 예지동 시계골목은 방치되어 있다. 건물이 살아있지만 그 안의 일들은 사라지는 중이다.
관광특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 골목을 안내하는 표지판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광장시장이나 방산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예지동 초입을 스쳐 지나가지만, 대부분은 이곳이 시계골목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지나간다. 이름만 걸려 있는 관광특구인 셈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이 골목은 신혼부부들의 필수 코스였다. 혼수 장만을 이곳에서 마쳤다. 그들이 들어 놓은 시계와 귀금속은 아직도 누군가의 손목 위에서 시간을 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고, 새로운 신혼부부는 이곳을 찾지 않는다.
가끔 옛 추억을 되짚으며 이곳을 다시 찾는 중년의 손님들이 있다. 신혼 때 맞춘 시계를 아직 차고 있다며 줄을 갈아달라고 내미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상인들의 손끝에는 평소와 다른 무게가 실린다.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였던 예지상가 안에서, 지금도 시계는 분해되고 세척되고 조립된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려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끝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지막을 지켜내려는 저항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인 자신들은 자신들의 일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다.
시곗줄 하나가 교체되었을 뿐인데, 멎었던 시계가 다시 살아난다. 나이 든 손가락들은 느리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이 손이 지켜낸 시각들, 사람들이 빠뜨린 시간들이 몇십 년이나 쌓여 있다. 누군가는 그 경험을 소중히 여기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예지동 시계골목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려앉음의 과정 중에도, 여기 남은 사람들의 손은 여전히 움직인다. 그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이 골목이 멈추지 않는 한, 누군가의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손가락이 부품을 들 수 있는 동안은.
이 골목을 취재하며 만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억울함이나 원망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전하는 말투였다. 오랜 세월 손끝의 정밀함을 다뤄온 사람들 특유의 담백함일 수도 있다. 화려한 언어 없이도 그 무게는 충분히 전해졌다.
취재를 마치고 골목을 나서는 길에, 문 닫힌 어느 점포의 유리창 너머로 먼지 쌓인 시계들이 여전히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주인은 이미 이 골목을 떠난 지 오래인 듯했다. 그런데도 그 시계들은 멈춘 채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지동을 취재하며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제 몇 년 안 남았다'였다. 몇 년 뒤에는 이라는 단서가 늘 붙었지만, 그 몇 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그 말이 벌써 여러 해째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럼에도 다음 날 아침이면 셔터는 다시 올라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여는 것, 그것이 이 골목에 남은 사람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