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해 뒤에 끓은 국물
국방부가 자리 잡은 지 아홉 해 만에, 그 앞 골목에 대구탕집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삼각지 대구탕골목

지명 자체가 지정학을 말하는 곳이 있다. 삼각지가 그런 곳이다. 이름만으로도 이 동네의 위치와 정체성이 선명해진다.
지정학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삼각지에서는 그저 걷는 것만으로 확인된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곧 다른 길과 만나고, 그 만남이 다시 다른 길을 열어준다. 이 동네를 처음 찾은 사람도 몇 번 골목을 돌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삼각형의 구조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삼각지라는 이름은 지도 위에 그어진 세 개의 선에서 나왔다. 한강으로 가는 길, 서울역으로 가는 길, 이태원으로 가는 길이 한 자리에서 만나 삼각형을 그렸고, 그 삼각형이 그대로 동네의 이름이 되었다.
그 교차로는 1967년, 한국 최초의 사거리 로터리로 세워졌다. 자동차들이 둥글게 돌아나가던 그 자리는 노래로도 남았다. 배호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가 그리던 풍경이 여기였다. 그 로터리는 지반이 꺼질 위험을 이기지 못하고 1994년에 철거되었다.
노래는 남았지만 로터리는 남지 않았다. 배호가 그리던 둥근 길은 이제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신호등이 걸린 사거리가 들어섰고, 차들은 예전처럼 둥글게 돌지 않고 각을 지어 꺾어간다. 그래도 이 동네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삼각지라고 부르지, 사거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름은 도로의 모양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하나씩 짚어가며 걷다 보면, 이 동네가 왜 이런 모양의 이름을 얻었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느 길로 들어서든 결국 다른 길과 만나고, 그 만남의 반복이 삼각지라는 자리를 계속 붙들어놓는다.
같은 삼각형의 한 꼭짓점에는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들어와 앉았다. 을지로에 있던 부대가 이곳으로 옮겨와 문을 연 것은 1970년 9월이다.
국방부 정문에서 대구탕골목까지는 걸어서 금방이다. 정문을 나서면 몇 걸음 옮기지 않아 국물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군복을 입은 이들도, 사복으로 갈아입은 이들도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부대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좁은 골목 입구가 나타나고, 그 안쪽으로 간판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인다.


부대가 자리를 잡은 지 아홉 해가 지나서야, 그 앞 골목에 대구탕집이 하나 생겼다. 1978년의 일이다. 이듬해부터 몇 집이 더 문을 열며 나란히 늘어섰다. 아홉 해라는 시간은, 낯선 동네에 밥집이 뿌리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홉 해라는 시간을 지금 와서 계산해보면 짧지도 길지도 않다. 부대가 자리를 잡고, 그 주변으로 사람이 오가는 길이 생기고, 그 길을 따라 밥집이 하나둘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낯선 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그 골목의 첫 손님은 대개 부대에서 나온 군인들이었다. 얼큰한 국물 한 그릇으로 속을 데우고 돌아가던 이들이, 다른 부대로 전출될 때마다 삼각지의 대구탕을 입에 올렸다. 소문은 그렇게 발로 퍼져나가, 어느새 전국 어디서도 삼각지 대구탕을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전출은 군인의 숙명이다. 한 부대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으니, 삼각지에서 맛을 들인 이들은 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흩어진 자리마다 이 골목의 이름을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첫 부임지의 기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전역 전 마지막으로 먹은 한 그릇이었다. 그런 개인적인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골목이 전국적인 이름을 얻었다.
지금도 그 골목에 들어서면 대구탕 끓는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손님들은 자리에 앉아 냄비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걸 직접 지켜보며 국물을 뜬다. 이른 저녁이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발걸음들로 골목 전체가 활기를 띤다. 배가 부른 밤에도, 이상하게 국물 한 술 들어갈 자리는 늘 남아 있다.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하얀 김이 훅 솟아오르고, 그 안에서 국물이 출렁인다. 숟가락을 넣기도 전에 이미 향이 자리를 채운다. 옆 테이블에서 뚜껑을 열면 그 김이 넘어와 섞이고, 골목 전체가 하나의 부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이 골목의 냄새를 만든다.
같은 삼각지 안에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골목도 있다. 1950년대, 부대 주변으로 미군의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려주던 화방들이 모여들면서 미술거리가 생겼다. 국물을 끓이는 골목과 붓을 쥐는 골목이, 같은 삼각형 안에서 나란히 나이 들어갔다.
국물을 끓이는 골목에서 미술거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이 동네의 특징이다. 누군가는 대구탕을 먹으러 왔다가 우연히 화방 골목을 지나치고, 누군가는 그림을 구경하러 왔다가 국물 냄새에 이끌려 걸음을 옮긴다. 삼각형 안에서는 그런 우연한 마주침이 자주 일어난다.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그 아홉 해의 시간차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다들 그저 익숙한 국물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길 뿐이다. 하지만 그 무심한 걸음들이 모여, 처음 문을 연 가게가 몇십 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로터리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 골목에서 여전히 끓고 있는 것은, 아홉 해를 기다려서야 자리 잡은 그 국물이다. 삼각지라는 이름을 만든 세 개의 길은 지금도 여기서 만나고, 그 위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냄비 뚜껑을 연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방부 주변의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고, 전국에서 알음알음 찾아온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맛과 시간이 만난 그 자리에서 말이다.
삼각지라는 이름의 의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워진다. 처음에는 지도 위의 기하학적 교차점이었고, 그 다음에는 자동차들이 도는 로터리였고, 지금은 국물 한 술이 담긴 그릇이다. 하나의 장소가 가지는 정체성이 세 개의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동안,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해서 이 자리를 찾는다.
저녁이 되어 골목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아홉 해를 기다려 자리 잡은 국물이, 이제는 몇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로터리가 사라지고 세월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이 골목에서 냄비가 끓는 일만큼은 멈춘 적이 없다. 삼각지라는 이름이 앞으로 또 무엇을 뜻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분명히 이 국물을 뜻한다.
골목을 나서면서 뒤돌아보면 간판들이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수수함이 오히려 오래된 자리라는 걸 말해준다. 새로 생긴 가게라면 갖추었을 법한 요란한 장식 없이도, 이 골목은 매일 같은 손님과 새로운 손님을 함께 맞아들인다. 그 담담함이 삼각지 대구탕골목을 지금까지 지켜온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