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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동쪽에서 옮겨온 마을, 다시 옮겨가는 마을

조선시대부터 이씨 집성촌으로 알려졌던 동편마을이 반세기 만에 택지 단지로, 그리고 카페거리로 변모했다. 이 골목의 지명처럼, 이 자리는 언제나 다른 무엇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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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8
골목
안양 동편마을 카페거리
동쪽에서 옮겨온 마을, 다시 옮겨가는 마을

동편마을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붙은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샌말이라 불렸던 마을의 동쪽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동(東)편마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중기부터 전주 이씨 익양군파가 이곳에 정착했고, 1991년까지도 57가구 중 30여 가구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던 집성촌이었다. 조선시대 임무를 다한 내시들이 한양에서 멀지 않은 풍수지리명당인 인덕원 인근의 동편마을에서 평안한 노후를 보내도록 집단을 이뤄 살던 역사도 전해진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찾아와 정착하고 싶은 곳이었다.

안양이라는 이름 자체도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안양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절이 있던 자리라는 뜻이, 오랜 시간을 건너 지금의 도시 이름으로 남았다. 큰 지명도 작은 지명도, 이 땅에서는 언제나 그 위에 있던 것의 이름을 물려받으며 이어져 왔다.

인덕원이라는 지명도 이곳과 이야기를 나눈다. 남에게 덕을 베푸는 사람이 산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한양의 소란에서 물러난 내시들이 노후를 보내던 동편마을과, 덕을 베푸는 사람이 산다는 인덕원. 두 지명이 나란히 놓인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조용한 자리를 골라 정착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땅이 오래전부터 쉼을 위한 곳이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지금의 카페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느끼는 여유도, 어쩌면 그 오래된 성질이 이어진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마을은 더 이상 그곳에 없다. 1978년, 안양시 구획정리사업으로 관양동이 택지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일대는 도시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필연이었다. 도시는 계속 외로 확장되고, 원래 거기 있던 것들은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법칙이다.

1990년에는 관양동이 관양1동과 관양2동으로 나뉘었고, 동편마을은 관양1동 28통이 되었다. 이름도 변했고, 행정 구역도 변했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씨 집성촌은 사라졌다.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섰다. 하지만 이 변화를 슬픔으로만 봐야 할까. 시간이 필요했지만,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들어찬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기도 했다.

택지지구로 지정된 뒤에도 한동안 이 자리는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오래된 마을이 헐리고 새로운 마을이 들어서기까지는 시차가 있는 법이다. 그 사이, 이 땅은 잠시 비어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채로. 그 공백의 시간을 거쳐야, 지금의 유럽풍 골목이 태어날 수 있었다.

2009년부터 2010년에 걸쳐 관양택지지구의 공공분양이 시작되었다. 중대형과 중소형 주택들이 늘어나면서, 이 골목은 다시 한 번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2012년 재개발 사업이 완료된 이후, 마을 곳곳에 녹지가 늘어났다. 산책로가 생기고, 주민들의 발걸음이 잦아지자, 따뜻한 조명의 카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이 자리는 조용한 전원마을에서 유럽 감성의 문화거리로 다시 거듭났다. 지명이 동일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도, 거리가 만드는 풍경도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것이 도시의 진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동편마을이라는 이름은 오래되었지만, 지금 이 이름으로 불리우는 거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자리가 현재의 카페 중심 문화거리로 변모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다. 2012년 관양택지지구의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고, 넓은 녹지공간이 생기면서 주민들의 발걸음이 늘어났다. 그 발걸음 따라 카페들이 하나둘씩 들어섰고, 지금은 이 골목이 가장 활발한 소상공인 밀집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이 골목을 걸으면 그 변화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호점까지 낼 만큼 사랑받는 커피집 그라비에, 우리밀빵을 굽는 브런치집 노튼, 새벽부터 줄이 서는 곰이네 고래빵,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헤이도우, 수제 케이크로 이름난 버터비버 부티크. 이런 가게들이 좁은 골목 하나에 촘촘히 들어차 있다. 조선시대 집성촌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사람이 모이고 자리를 잡는 방식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 골목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로 드라마 촬영지라는 사실이 꼽힌다. 유럽 감성 가득한 골목 풍경이 화면에 담기면서, 이곳을 찾아온 적 없던 사람들도 이 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화면 속 배경이었던 자리가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골목이라는 사실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골목 깊숙한 곳에는 톤앤블루처럼 차분한 톤으로 자리를 지키는 카페도 있고, 에그룸처럼 가족 단위 손님들이 몰리는 브런치집도 있다. 인생 복숭아빙수로 입소문이 난 키에라코트도 이 골목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 다른 이름과 메뉴를 걸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가 한때 이씨 집성촌이 있던, 그리고 그 뒤로 몇 번이고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온 바로 이 땅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옛 마을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남아 있는 건물이나 표지는 거의 없다. 대신 남은 것은 이름 하나, 그리고 그 이름 아래 새롭게 채워진 사람들의 시간이다.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이 거리를 채우고 있는 온기를 눈여겨보는 편이 이 골목을 이해하는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베이커리 진열장 앞에 서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 테라스에 앉아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오래 머무는 사람들. 그들은 이 땅의 지난 역사를 모른 채 이곳을 찾아온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어떤 자리는 그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사람을 머물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동편마을이 그런 자리였고, 지금도 그런 자리다.

조선시대의 흔적이든, 택지지구의 흔적이든, 지금 남은 것은 이름과 이야기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위에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쌓아 올린다. 대문이 있던 자리에 카페의 문이 생기고, 마당이 있던 자리에 테라스가 놓인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람이 모이고 머무는 기능만큼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동편마을은 그렇게 쌓이고 또 쌓이는 땅이다.

지명은 역사 속에 남지만, 그 지명이 가리키는 장소는 계속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도시의 방식이다. 옮겨오고,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놓고, 또 다시 옮겨간다.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이 찾아온 이 자리는, 지금도 누군가의 아침을 담아내고, 누군가의 오후를 채워주는 곳이 되어 있다. 골목의 지명처럼, 이 마을도 동쪽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남기고 다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이 골목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속 변한다는 것이 이 곳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SCENE 01 : 테라스의 오후
▲ 경기 안양시 동안구 동편로183번길 · 2026.06 / 사진 so_seewty_hbro · https://blog.naver.com/so_seewty_hbro/224325566909 골목 내 카페의 테라스 풍경입니다. so_seewty_hbro가 촬영한 따뜻한 햇살 아래의 야외 좌석과 푸른 잔디가 안양 동편마을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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