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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하늘에 빌던 자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던 무릎 꿇은 자리에서 시작된 이태원 우사단길. 오래된 골목은 기우제의 어떤 성질, 빌고 바라는 마음, 하늘과 땅을 잇는 자리를 아직도 놓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이태원 우사단길
하늘에 빌던 자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우사단(雩祀壇)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에서 벌어진 의식에서 시작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기우제, 그 제단이 있던 자리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 말에 담긴 마음을 따라가 보면, 그것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빌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오백 년이 넘게 같은 이름으로 불려 온 자리는 결국 기우제의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라는 것이다. 하늘에 빌던 이들의 열망이 세월 속에서 다른 형태로 이어져, 지금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바람을 담는 자리가 되었다.

우사단길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은 대개 이곳이 기우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표지판 하나 없이도,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를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 사원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의 바람, 오래된 가게 문턱을 넘는 손님의 기대.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것들이다.

이태원이 처음부터 이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6.25전쟁 이후 미군 기지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1970년대 초반에는 미군 관련 종사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이태원의 다문화적 성격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전환은 1976년 5월 21일에 일어났다.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인 서울중앙성원이 우사단길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 골목은 믿음의 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성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 골목을 드나들던 신자들의 국적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중동과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들이 각자의 언어로 기도문을 외우면서도 같은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종교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이 국적과 상관없이 이 골목에 자리를 잡았고, 그들을 따라 음식점과 식료품점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신앙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생활이 그 뒤를 따라왔다.

이 골목을 처음 찾는 방문객들은 종종 사원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문화가 다른 공간에 들어선다는 긴장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들이다. 그 표정은 몇 걸음 더 걸어 카페 거리에 들어서면 다시 편안해진다. 낯섦과 익숙함을 오가는 이 짧은 산책이, 우사단길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억에 유독 오래 남는 이유일 것이다.

그 이후로 우사단길은 다양한 믿음과 바람이 만나는 자리가 되었다. 사원의 돔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아래로는 중동의 음식을 팔고, 아랍어 간판을 달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의 언어와 웃음이 넘실댄다. 동시에 이 길 위에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가져온 카페, 와인바, 독립 서점들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냄새부터 먼저 바뀐다. 향신료를 쓴 음식 냄새가 골목 초입부터 퍼지고, 그 사이로 갓 내린 커피 냄새가 섞여 든다. 귀에 들리는 말도 한 가지가 아니다. 아랍어와 한국어, 영어가 뒤섞인 대화가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오간다. 낯선 언어들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흐르는 골목은 흔치 않다.

▲ 2026.03 / 사진 nuriworldd · jhbluesss · https://blog.naver.com/nuriworldd/224214459437 / https://blog.naver.com/jhbluesss/224206250723 서울중앙성원의 돔과 그 아래로 이어진 우사단길 골목입니다. 작성자: nuriworldd, jhbluesss

사원의 흰 돔은 골목 아래쪽에서부터 보인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문득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과 맞닿은 곡선이 눈에 들어온다. 기도 시간이 되면 그 앞으로 신발을 벗어 든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든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하루를 걸고 온전히 기도에 집중하고 있다. 두 개의 시선이 같은 자리에서 부딪히지 않고 겹친다.

기우제는 본래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같은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빌던 의식이었을 것이다. 우사단길 위에 서면, 그 옛날 의식의 흔적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이들이 같은 골목 위에서 각자의 바람을 펼치고 있다.

하늘에 빌던 자리, 그 자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빌음의 형태가 하늘 위의 비에서, 만나는 이들의 손 위의 커피와 음식과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바뀐 형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저녁 무렵의 골목을 걸어보면 된다. 낮 동안 조용하던 카페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고, 사원 쪽에서는 저녁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흩어져 나온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발걸음, 오래된 간판 밑에서 담배를 태우는 상인의 뒷모습까지 한 화면 안에 담긴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골목 위에서 마주치는 순간들이다.

이태원의 다문화적 형성 과정은 6.25 이후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대 초반 미군 관련 종사자들이 정착하면서 이곳은 이국적인 음식과 문화의 교집합이 되었다. 하지만 1976년 5월 21일 서울중앙성원의 개원은 우사단길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이태원은 단순한 미군 주둔 기지촌을 넘어 세계 종교의 교차로가 되었다.

1997년 이태원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외국인 방문객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우사단길 주변에는 새로운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카페, 와인바, 독립 서점들이 낡은 건물 1층을 차지했고, 그 위로는 여전히 원주민 상인들의 삶이 계속되었다. 이 공존의 방식이 우사단길을 특별하게 만든다. 새로움은 과거를 지우지 않고, 오래된 것도 새로움을 받아들인다.

지금 우사단길을 오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자도 있고, 여행자도 있고, 그저 골목 산책을 좋아하는 동네 사람도 있다. 이들이 딱히 서로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뿐이다. 그런데도 이 골목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각자의 걸음이 결국 같은 오르막 위에서 마주친다는 사실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기도의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쉼의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길이다.

오래된 상점의 셔터가 반쯤 열려 있는 모습이나, 사원 담장에 기대어 신발을 정리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관광 엽서에는 잘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골목을 진짜로 설명하는 것은 그런 장면들이다. 화려하게 꾸며지지 않은, 그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조각들이 이 오르막 곳곳에 흩어져 있다.

우사단길을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는 지점이 있다. 오르막의 굽이가 꺾이면서 사원의 돔과 카페의 간판이 한 시야 안에 함께 들어오는 자리다. 그 자리에 서면 이 골목이 지나온 시간의 켜가 한눈에 겹쳐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기우제를 지내던 흙바닥 위로 신앙의 자리가 얹히고, 그 위로 다시 생활의 자리가 얹힌 셈이다. 층층이 쌓인 시간 가운데 어느 하나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로, 지금의 우사단길을 이루고 있다.

우사단(雩祀壇)은 기우제와 기설제를 지내던 제단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태원은 조선시대 영남대로 상의 역원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서울중앙성원은 1976년 5월 21일 이태원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다. 이태원의 다문화적 성격은 6.25전쟁 이후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970년대 초반 121후송병원의 이전과 미군 관련 종사자의 정착으로 본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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