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의 높이만큼 보인다
명동 재미로를 걷는다는 것은 거울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벽이 다른 색깔로 나타나고, 그 벽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명동 재미로

명동역 3번 출구에서 내린다. 발걸음을 한 걸음 떼자마자 색깔이 몰려온다. 벽은 하나의 색이 아니다. 건물 전체가 캔버스가 되고, 그 위에 여러 손의 터치가 겹쳐 있다. 파란색, 노란색, 분홍색. 그리고 그 벽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이댄다. 시간은 오후 2시. 아직 밤이 아니라, 이 거리는 한낮의 속도로 움직인다.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사람들의 발걸음 속도가 달라진다. 지하철 안에서는 다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었는데, 지상으로 올라오자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벽화가 시선을 붙잡기 때문이다. 걷다가 멈추고, 사진을 찍고, 다시 걷는다. 이 리듬이 재미로 특유의 것이다.
오후 2시쯤 골목에 들어선다. 아직 저녁이 아니라 그다지 혼잡하지 않다. 인스타그램 세대가 만든 거리라고 들었는데, 오후의 명동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거리는 넓어 보이고, 사람들은 제각각의 속도로 움직인다. 어떤 사람은 벽의 글씨를 읽고, 어떤 사람은 셀카 스틱을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관광객도 있고, 지나가는 직장인도 있다. 이 거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동시에 담는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는 지도 앱을 켜 놓고 다음 벽화를 찾아 걷는 이도 있고, 아무 계획 없이 눈에 보이는 색을 따라 걷는 이도 있다. 두 방식 모두 이 거리에서는 통한다. 골목이 좁고 짧아서, 어느 쪽으로 걸어도 결국 비슷한 풍경을 마주치게 되어 있다.
벽화를 가까이 보면 여름날씨의 손길이 닿아 있다. 색이 바래고, 일부는 벗겨져 있다. 2017년 만화의 거리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의 벽화와 지금의 벽화는 다르다. 같은 색이라도 햇빛과 비를 거친 벽은 처음과는 다른 무엇이 되어 있다. 벽화는 살아 있는 것이다. 매일 다시 만들어진다. 그래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의 벽을 담으려는 사람들의 손은 쉼 없이 움직인다.
손끝으로 벽을 살짝 만져보면 페인트의 두께가 느껴진다. 어떤 부분은 여러 번 덧칠한 흔적이 남아 울퉁불퉁하고, 어떤 부분은 최근에 새로 칠한 듯 매끈하다. 그 차이가 이 벽화들이 한 번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계속 손봐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건물 입구로 들어간다. 밖의 북적임과는 다른 공기가 있다. 넓은 내부, 높은 천장, 쾌적한 공간. 각 층의 상점마다 다른 세계다. 어떤 층은 굿즈점이고, 어떤 층은 카페고, 어떤 층은 옷가게다. 엘리베이터는 항상 줄을 선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거울을 보듯 자신을 정렬한다. 층별로 다른 구매 경험, 다른 소비. 명동은 이제 한 거리가 아니라 수직의 쇼핑몰이 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지루함을 견디는 방식은 다들 비슷하다. 문이 열리면 우르르 들어갔다가, 각자의 층에서 흩어진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잊힌다. 층이 갈리는 순간 목적도, 동행도 갈린다.


건물을 나서면 다시 거리의 소음이 밀려든다. 실내의 정돈된 조명과 달리 바깥은 여전히 알록달록하고 산만하다. 그 전환이 오히려 반갑다. 정제된 공간에 있다가 다시 원색의 골목으로 나오면, 이 거리가 얼마나 과감하게 색을 쓰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저녁이 가까워진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벽화의 색이 더 진해진다. 간판의 불이 들어오고, 거리의 분위기는 점점 다른 것이 된다. 낮에는 평화로워 보였던 그 거리가 밤으로 접어들며 더욱 강렬해진다. 손에 든 폰의 불이 더 밝아 보인다. 일몰 후 10분간이 가장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 시간, 명동 재미로는 정말 그렇다.
이 시간 벽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의 실루엣이 하나둘 늘어난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마지막 빛을 받으려는 사람들이다. 사진 한 장을 위해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잡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다들 이 순간의 빛이 얼마나 짧은지 아는 눈치다.
밤 10시를 넘는다. 여전히 사람들이 거리에 있다. 주말이면 길을 건너기 어려울 정도겠지만, 이날은 저 정도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벽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누군가는 친구와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오른쪽을 보면 한 블록 뒤로 명동의 여느 거리처럼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 거리의 사람들은 그쪽을 잘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의 눈은 벽 위에만 있다.
골목 안쪽 후미진 곳에는 사람이 뜸하다. 큰길에서 벗어난 몇 걸음만으로도 소음이 확 줄어든다. 그 경계가 뚜렷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것도 이 거리의 특징이다.
누군가는 이 거리를 인생샷의 거리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거리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과거 명동을 잊었거나 회피한 거리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맞다. 하지만 그 말들 뒤에는 무언가 아쉬운 것이 숨어 있다. 영화관이 있던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아쉬움은 부정도 아니고 긍정도 아니다. 단지 변화를 마주하는 방식일 뿐이다.
영화관을 기억하는 사람과 벽화만 아는 사람이 같은 골목을 걸으며 전혀 다른 것을 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머릿속에 그리는 풍경이 다르다. 그 차이를 메울 방법은 없다. 각자의 명동이 있을 뿐이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도, 유모차를 끄는 부모도 이 좁은 골목을 지나간다. 벽화를 보는 눈높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색이 주는 인상만큼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가닿는 모양이다. 걸음이 느린 사람도, 빠른 사람도 결국 이 거리 앞에서는 한 번씩 멈춰 선다.
벽의 높이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그 벽 위의 하늘은 정말 좁아 보인다. 빌딩의 틈 사이로 별이 보일까. 명동은 별을 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도시의 밤하늘은 항상 주황색이다. 그 밝음 속에서 명동은 밝음을 더한다. 거리는 스스로 빛난다. 그 빛 아래서 누군가는 여전히 셀카를 찍고 있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면 좁은 틈 사이로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보인다. 벽 색깔에 비해 하늘은 늘 무채색으로 느껴진다. 이 거리에서는 위를 보는 사람이 드물다. 다들 눈높이의 벽을 보느라 하늘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 노을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골목 뒤편 식당가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슬며시 섞여 든다. 벽화의 거리와 식사의 거리는 한 블록 차이인데도 전혀 다른 감각을 자극한다. 이 좁은 간격 안에 이렇게 다른 두 개의 명동이 공존한다는 것이, 걸을 때마다 새삼스럽다.
거리를 나간다. 뒤돌아보니 벽화들이 밤의 조명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누군가는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있다. 명동 재미로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렇게 존재한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그럴 것이다. 거리는 변하고, 사람은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명동은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