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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영화관을 떠나며

영화관은 언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나. 명동의 거리는 선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2008년, 2010년, 그리고 올해. 세 번의 폐점을 거치며 명동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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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8
골목
명동 재미로
마지막 영화관을 떠나며

명동이 영화의 거리였을 때 이곳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극장 앞은 약속의 장소였고, 영화 보고 나온 거리를 거닐며 나누는 대화는 서울의 문화였다. 명보극장, 중앙시네마, CGV. 이 세 개의 영화관은 명동의 시간을 나눠서 점유했던 랜드마크들이었다. 각각의 극장 앞에는 독특한 기운이 있었다.

극장 앞에서 사람을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안다. 시계를 보며 서성이던 그 시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던 습관, 마침내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을 때의 안도감. 그런 기다림의 방식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 명동 골목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위치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니 그렇게 서성일 일이 없어졌다. 작은 습관 하나가 사라진 것도 이 거리가 잃은 것 중 하나다.

2008년 4월, 명보극장이 처음 문을 닫았다. 멀티플렉스가 번성하던 시대, 전용관(單館) 영화관은 경쟁력을 잃었다. 대형 시네마는 강남과 강변으로 몰려갔다. 명보극장은 폐관 후 2009년 명보아트홀로 재탄생했다. 영화가 떠나자 뮤지컬과 연극이 들어왔다. 공간은 남았지만 그것이 모였던 군중의 성격은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표를 사던 학생과 직장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표를 사려고 줄을 서던 자리에는 이제 공연 티켓을 사려는 다른 줄이 선다. 관객층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또래끼리 몰려와 영화를 고르던 학생들이 많았다면, 지금 명보아트홀 앞에 서는 이들은 뮤지컬 팬덤이라는 조금 다른 결의 관객이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의 취향은 완전히 새로 짜였다.

2년 뒤인 2010년 5월 31일, 중앙시네마가 문을 닫았다. 이곳도 영화인들의 성지였다. 예술영화와 인디 영화를 다루던 그 극장에는 영화 마니아들이 줄을 섰다. 그 거리에서 예술영화를 위한 극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명동이 더 이상 영화를 품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것은 도시가 무언가를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예술영화관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상영관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 극장을 중심으로 모이던 사람들, 상영 후 근처 술집에서 방금 본 영화를 두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까지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영화관은 스크린만 파는 곳이 아니라 대화가 이어지는 자리를 함께 팔았다. 그 부속물들이 흩어지자 거리의 결도 달라졌다.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2025년 10월 29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마지막 자막을 올렸다. 이것은 명동에 남겨진 마지막 상업 영화관의 폐점이었다. 영화를 위한 빨간 의자들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섰다. 패션 브랜드, 뷔티 샵, 카페. 명동은 더 이상 영화의 거리가 아니었다. 그 변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마지막 상영이 끝난 뒤 그 공간이 며칠이나 비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간판이 그 자리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명동에서는 빈 공간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임대료를 감당할 다음 주인이 항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이 거리의 생리이자, 동시에 이 거리가 무언가를 애도할 겨를을 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대신 들어온 것은 벽화와 포토존이었다. 2017년 만화의 거리 프로젝트부터 명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명하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지고, 거리의 모든 모서리가 카메라의 대상이 되었다. 셀카를 찍기 위한 거리가 명동이었던 거리를 대체했다. 그 변화는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시가 바뀌면 거리도 바뀐다.

방문객들의 동선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전에는 영화 시간표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거리를 걸었다면, 지금은 층별 안내판을 보고 포토존이 있는 층부터 찾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 앞에 줄이 서 있고, 각 층마다 사진을 찍기 좋은 자리가 따로 표시되어 있다. 관람의 방식 자체가 완전히 새로 설계된 셈이다.

▲ 2026.08 / 사진 ddoungee · hwisqueak · https://blog.naver.com/ddoungee/224380389327 / https://blog.naver.com/hwisqueak/224393779462 영화관이 있던 자리를 채운 캐릭터 굿즈 소품샵과 포토존들입니다. 작성자: ddoungee, hwisqueak

이 변화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벽화가 그려졌을 때만 해도 옛 명동을 기억하는 이들은 낯설어했다. 극장이 있던 거리에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다는 것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며 그 벽화 자체가 다시 이 거리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낯섦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된다.

코로나19 이후 이 변화는 더 극명해졌다. 2021년 명동의 공실률은 47.2%에 도달했다. 영화관도 없고, 관광객도 없는 명동이 되었다. 하지만 2023년이 되자 2.4%까지 떨어졌다. 그 차이를 채운 것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2022년 94만 명에서 2023년 977만 명으로 늘어난 외국인 방문객들이 명동의 공실을 채웠다. 명동은 한국의 거리에서 지구의 거리로 완전히 전환됐다.

공실률이 그렇게 치솟았던 시기, 셔터가 내려간 가게 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오래 이 거리를 봐온 이들에게는 익숙한 상권이 무너지는 불안이었을 테고, 처음 명동을 찾은 이들에게는 그저 조용한 거리로 보였을 수도 있다. 같은 풍경이 누구에게는 상실이고 누구에게는 낯선 첫인상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는 거리의 성격을 완전히 바꿨다. 캐릭터 굿즈점, 인생샷을 위한 카페, 무한이미지 생성 기계가 된 거리. 누군가는 이것을 거리의 상업화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거리의 국제화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명동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명동의 재생이라고 말한다. 명동은 단순히 그 흐름을 타고 있을 뿐이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아마도 어느 해석도 완전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캐릭터 굿즈점 앞에 줄을 선 이들의 언어를 들어보면 국적이 다양하다. 명동을 찾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특정 캐릭터의 한정판을 사러 왔고, 누군가는 그저 사진 찍기 좋은 배경을 찾아 왔다. 목적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이 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지탱하는 손님들이다.

매일 밤 10시를 넘어 누군가가 거리에 서 있다. 그들의 손에는 폰이 들려 있고, 배경에는 형형색색의 벽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영화관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상품이 붙박혀 있다. 그 상품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이미지를 수집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완전히 덮어버린 것이다.

명동의 마지막 영화관이 문을 닫은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그 영화관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강변이나 강남의 거대한 시네마로 산산이 흩어졌을 것이다. 명동은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명동을 영화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소비한다. 그것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명동 자체도 알 것 같지 않다.

그 늦은 시간까지 거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명동이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한 거리라는 걸 실감한다. 저녁 장사를 마친 가게들이 문을 닫아도, 벽화 앞에 선 사람들의 발길은 쉽게 끊이지 않는다. 조명이 벽을 비추는 각도가 낮과는 다르게 색을 바꿔놓기 때문에, 밤의 재미로는 낮과는 또 다른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 자리에 어떤 간판이 새로 걸리든, 이 거리를 스쳐 가는 발걸음의 총량은 줄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발걸음이 무엇을 보러 오는지가 계속 바뀔 뿐이다. 영화에서 캐릭터로, 캐릭터에서 또 다른 무언가로. 명동의 다음 변화가 무엇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명동 재미로명동영화관 폐점상권 변화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