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가 지워진 자리에 남은 것
관광객이 늘수록 주민의 밤은 깊어졌다. 2006년 도시예술 프로젝트로 시작된 벽화마을이 십 년 뒤, 주민들 손으로 벽화를 지우던 일이 벌어졌다. 그 갈등의 흔적 위에, 이제 이화동 골목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이화벽화마을

이화동의 이름은 이화장에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는 쌍계동이라 불렸으니, 지명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도성 안 오대 명소 중 하나로 꼽히던 이 골목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을 위한 고급 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가, 해방 이후로는 주택 밀집지역이 되었다.
흔해진 골목이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6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복권기금을 이용한 도시예술 캠페인을 진행했고,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이를 주관했다. 약 3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주민과 예술인, 대학생과 자원봉사자가 함께 참여해 이화동과 동숭동 일대에 벽화를 그렸다. 9월부터 12월까지 사흘마다 담벼락이 색으로 변했다.
벽화를 그리던 그해 가을, 골목은 온통 작업의 현장이었다. 사다리 위에서 붓을 든 사람들, 물감통을 나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광경을 신기하게 구경하던 주민들. 담벼락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작은 박수가 터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때만 해도 이 벽화가 훗날 어떤 갈등의 씨앗이 될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벽화마을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이 들어섰다. 해바라기 계단, 꽃 계단, 물고기 계단. 간판처럼 이름이 붙은 풍경들이 포토 스팟이 되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까지 골목으로 몰려들었다. 주말이 되면 이 길은 거의 산책로가 아니라 공개 전시장이었다.
계단마다 그림의 성격도 달랐다. 해바라기 계단은 노란빛으로 화사했고, 물고기 계단은 파란빛으로 시원했다. 꽃 계단은 알록달록한 색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그 각각의 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하나씩 붙잡았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와 집은 다르다. 사람이 들어오면, 거리만 변하지 않는다.


관광객의 밤과 주민의 밤
골목 곳곳에 사진기가 들어섰다. 인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주택 앞은 항상 붐볐다.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히고 싶지 않은 주민도, 결국 누군가의 사진 안에 들어갔다. 밤늦도록 울리는 소음,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카메라 플래시. 이화동 주민들이 호소한 불편은 사진 한두 장이 아니었다.
창문을 여는 일이 조심스러워졌다는 주민들의 말이 있다. 빨래를 널다가도 렌즈가 향하고 있지 않은지 살피게 되었고, 잠깐 나가는 사이에도 낯선 얼굴들과 마주쳤다. 관광지가 된다는 것은 풍경이 열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생활이 닫히는 일이었다.
관광객의 소음, 쓰레기, 사진 촬영. 주민들의 일상이 관광 상품이 되는 것에 더는 침묵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2016년 5월, 이화동 주민 5명이 벽화를 지웠다. 가장 유명했던 꽃 계단과 물고기 계단이 페인트로 덧칠되고, 일부는 철거되었다. 경찰은 그들을 공동재물손괴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쪽은 벽화를 지운 주민을 무너뜨리고자 했고, 다른 한쪽은 주민을 지켜내려 했다.
벽화 훼손을 둘러싸고 주민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렸다. 어떤 주민은 벽화를 지운 이들과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고, 어떤 주민은 여전히 조용한 마을을 원했다. 예술마을의 정체성을 누려야 하는 상인과, 오롯이 거주만을 원하는 주민. 그들의 이해관계는 결코 겹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집 담벼락에 페인트를 다시 칠하기까지, 그 결심에는 오랜 시간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말로 호소했을 것이고, 여러 번 참았을 것이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니 결국 손을 들었을 것이다. 그 순서를 짐작해보면, 이 일은 갑작스러운 분노가 아니라 누적된 피로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화는 일부만 지워졌다. 모든 것을 지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예술마을' 같은 거창한 이름도 아니고, 가려진 벽화도 아니었다. 오래도록 이 골목에 살아온 사람들의 겨울밤이었다. 소음을 피해 창문을 닫아야 했던 밤들. 자신들의 동네가 남의 풍경 속에서 흐려져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밤들.
겨울밤이라는 표현이 유난히 무겁게 다가온다. 다른 계절보다 해가 짧고, 창밖의 소음이 유독 크게 들리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밤의 소란은 그나마 계절 탓으로 넘길 수 있어도, 겨울밤까지 이어진 불편은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이 골목이 존재하는 방식
지금의 이화벽화마을은 조용히 변모했다. 화려한 벽화를 감상하는 관광지라기보다, 주민들의 일상을 존중하며 천천히 걷는 여행지로. 일부 벽화는 남았고, 일부는 지워졌다. 그 불완전성이, 오히려 이곳을 관광 명소가 아닌 누군가의 집으로 다시 돌려놓았다.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은 벽화 앞에 서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어떤 벽은 색이 바래 흐릿하고, 어떤 벽은 페인트 자국이 얼룩처럼 남아 있다. 그 미완의 흔적이 오히려 이 골목의 진짜 얼굴처럼 느껴진다. 깨끗하게 정리된 관광지보다, 다투고 화해하는 중인 동네가 더 정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방문객들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찾는 이들,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는 이들, 주택 앞에서 오래 사진을 찍지 않는 이들. 작은 배려가 모이면, 주민의 밤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화동 골목을 걷다 보면, 벽화보다 오래된 계단들을 마주친다. 성곽 아래 1970년대부터 쌓여온 시간들. 누군가의 벽화를 지운 선택이 가혹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이 골목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들은 자신들의 밤을 지켜냈다. 벽화마을이라는 이름보다, 이화동이라는 골목 자체로 존재하기를 원했다.
골목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이 사연을 아예 모르는 이들도 많다. 알록달록한 계단 사진만 찍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왜 어떤 벽만 색이 없는지 궁금해하다가 뒤늦게 사연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다. 안다고 해서 풍경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걷는 태도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공공미술과 사생활 사이의 거리는 아마 완전히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림은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하고,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화동은 그 모순을 없애지 못한 채로, 다만 견디는 법을 찾아가고 있다.
밤이 되어 골목이 조용해지면, 낮 동안 감춰졌던 소리들이 살아난다. 대문 여닫는 소리, 텔레비전 소리, 늦게 귀가하는 발걸음 소리. 그 소리들이야말로 이 골목이 여전히 누군가의 집이라는 사실을 가장 정직하게 말해준다.
지금 이 골목의 밤을 걷는다면, 벽화만 찾지 말 것. 대신 성곽 너머의 불빛들, 계단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느껴보자. 그것이 2006년 프로젝트 이후, 이 골목이 선택한 자신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