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선도로 넘어서면 달라지는 언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2번 출구에서 골목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도, 세상의 결이 바뀐다. 귀에 들리는 말이 달라진다. 코에 닿는 냄새가 달라진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

간선도로를 등진 골목 입구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은 바닥이다. 까만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골목 전체에 수놓여 있다. 중앙아시아 각국의 전통 카펫에서 가져온 무늬들이다. 기하학적이고 규칙적이고, 어딘가 음악처럼 보인다. 발걸음이 자동으로 느려진다.
발밑의 문양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의 폭이 좁아진다. 무늬가 이끄는 방향으로 몸이 따라가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면 좌우로 늘어선 간판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직은 익숙한 한글 간판이 섞여 있어, 완전히 낯선 곳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남아 있다.


몇 걸음 더 들어가자 그 안도감도 서서히 옅어졌다. 익숙한 글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낯선 문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걸음을 옮길수록 서울이라는 감각이 흐릿해졌다.
한 걸음 더 들어서면 언어가 바뀐다. 한글보다 키릴문자가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환전소, 택배, 식료품점. 간판 아래에는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 몽골어가 함께 쓰여 있다. 절반은 읽을 수 있지만 절반은 읽을 수 없는 그곳, 그곳이 바로 여기다.
진열장 안의 상품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향신료 봉지, 낯선 글자가 적힌 통조림, 화려한 색의 전통 옷감들이 좁은 매대를 채우고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 모호함이 오히려 걸음을 붙잡았다.
코 끝에 닿는 냄새는 동대문에서는 맡을 수 없는 것들이다. 향신료. 고기를 구우면서 나는 그을음. 밀가루와 버터. 뜨거운 물에 우려낸 차의 향. 식료품점 앞에서 서 있으면 그 여러 냄새들이 겹쳐 하나의 장소를 만든다.
그 냄새들 사이를 걷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 시장 골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낯선 향신료인데도 어딘가 그리운 구석이 있다. 냄새는 언어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 모양이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소리가 먼저 온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의 음성. 높낮이가 한국어와 다르다.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화덕의 열음과 냄비가 식재료에 닿는 소리. 음식을 담는 음식기의 금속음. 그 모든 소리가 직조되어 이곳의 공기가 된다.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빠르고 리드미컬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억양만으로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리듬을 만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달라지는 것들
식당의 문을 열면 실내의 분위기가 골목과 완전히 다르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던 이국적인 모습이, 문을 닫은 순간 더 강해진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여행지다. 벽에 붙은 사진들은 바이칼호수이고, 울란바토르이고, 타슈켄트다. 테이블 위의 식재료도, 음식 담는 그릇도 여기가 아닌 그곳의 것들이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낯선 언어로 된 메뉴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사진과 한글 설명이 함께 붙어 있어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그 사진 속 음식이 실제로 어떤 맛일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 알 수 없음이 오히려 기대를 키운다.
밥상의 물을 마신다. 설탕 없이 사과와 복숭아만을 우려낸 차다. 달콤하고 시원하다. 입 안에서 향이 펼쳐진다. 밥숟가락을 집는 손의 움직임도 다르다. 한국 식당에서는 하지 않는 방식으로 밥을 집는다. 익숙하지 않은 손질이 이 순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
음식을 먹으면서 안다. 이것이 그곳의 맛이 아니라, 그곳의 맛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평일 저녁, 퇴근길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배보다 마음이 먼저 채워진 기분이 든다. 낯선 맛을 낯선 자리에서 경험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 주인은 익숙하지 않은 억양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 인사말의 뜻은 몰라도, 담긴 마음만큼은 그대로 전해진다.
밤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아주 짧은 순간, 조명도 햇빛도 아닌 애매한 빛이 거리를 덮는다. 낮의 표정도 밤의 표정도 아닌 얼굴이다. 그 몇 분의 틈이 지나야 비로소 이 거리는 밤의 얼굴을 완전히 갖춘다.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진다. 골목 전체가 밝아진다. 간판의 불이 켜지고, 선큰 도로의 조명도 켜진다. 낮에 글자로만 보이던 것들이 밤에는 불빛으로 반짝인다. 간판의 한글과 키릴문자가 모두 같은 밝기로 도시를 밝힌다.
낮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간판들이 밤이 되면 저마다의 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붉은 네온, 푸른 형광등, 노란 백열등이 골목 하나에 뒤섞여 걸려 있다. 국적도 글씨체도 다른 그 불빛들이, 이상하게도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밤의 광희동은 더욱 마법 같다. 보안 조명 때문에 어두운 곳이 거의 없다. CCTV들이 골목을 지키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밝게 밝혀진 이 공간이,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환영하는 얼굴로 보인다.
골목을 오가는 발걸음 소리도 낮과는 다르게 들린다. 낮의 발걸음이 목적지를 향한 것이었다면, 밤의 발걸음은 조금 더 느긋하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이들이 이 거리를 산책 삼아 걷는 모습도 눈에 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빵 한 조각을 뜯어 먹어보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화덕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한 온기가 손끝에 전해졌다. 익숙한 빵과는 결이 다른 맛이었지만, 낯설다는 이유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표정만으로도 즐거운 자리라는 것이 전해졌다. 낯선 언어 속에서도 감정은 그대로 읽혔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다시 큰길로 들어서는 순간, 방금까지의 풍경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익숙한 서울의 야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골목 안에서만큼은 분명 다른 세계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냄새와 소리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짧은 산책 하나가 이렇게 오래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이 골목이 가진 힘일 것이다. 다음에도 퇴근길에 문득 이 골목으로 발길을 돌리게 될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이 골목을 찾을 때는 조금 더 여유를 두고 걷고 싶어졌다. 한 번의 산책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냄새와 소리, 표정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골목 끝에서 골목 입구를 본다. 들어왔을 때는 낯선 문양이었던 카펫 거리의 무늬도, 이제는 하나의 길을 만드는 안내선처럼 느껴진다. 그곳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시간대를 산다. 평일의 주민들과, 주말의 여행자들. 그 중첩된 시간 속에서 광희동이라는 이름의 골목은 계속 열려 있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골목. 한글과 키릴문자가 함께 쓰이는 거리. 그곳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떠나온 것이다. 퇴근길에, 주말에, 언제든 들어서면 되는 작은 출국 같은 경험.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는 여권이 필요 없는 그런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