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팔판길) 팔판길 13번지,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야 만나는 그림
같은 흰 건물인데 봄에 들어간 사람과 가을에 들어간 사람이 본 그림이 서로 다릅니다. 세 번의 걸음이 세 번 다른 전시를 만났습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1
- 골목
- 삼청동 팔판길

팔판길 13번지에 흰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갤러리제이원 서울입니다. 삼청동 문화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이라, 작정하고 찾아오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자리입니다. 한 방문자는 옆을 지나가다가 새하얀 외관과 창 너머로 보이는 작품에 홀린 듯 들어갔다고 적었습니다. 계획에 없던 걸음이 전시장 문턱을 넘은 셈입니다.
들어가는 길부터 보통 갤러리와는 다릅니다.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어야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봄에 다녀간 방문자는 적었습니다. 1층과 2층으로 나뉜 공간이라 같은 전시인데도 층마다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1층에서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바깥 풍경이 그림과 함께 눈에 들어와 기분이 좋아졌고, 계단을 올라 2층에 서면 유럽의 소도시에서 만났던 작은 갤러리들을 떠올리게 하는 아늑한 방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지하 공간도 있었지만 그때는 전시가 없어 올라가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얼굴
9월에 다시 문을 연 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신광호 작가의 개인전 《21번째 잔해》가 걸렸고, 두껍게 겹친 색과 반복된 붓질로 그린 인물화가 벽을 채웠습니다. 인물의 얼굴이 또렷한 정체성을 갖는 대신 색과 물질 속에서 생성되고 무너지는, 중간에서 멈춘 상태로 남아 있다고 이 방문자는 설명했습니다. 봄에 걸려 있던 산수화와는 완전히 다른 공기였을 겁니다. 같은 벽, 같은 조명 아래 전혀 다른 그림이 걸린다는 것, 이 건물이 계속 바뀌는 자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같은 9월, 다른 날 찾아온 사람은 또 다른 전시를 만났습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키아프·프리즈 아트페어를 기념해 참여 작가들의 다른 작품을 모은 특별기획전이었습니다. 사람과 개가 어우러진 몽환적인 화면을 그린 이우림 작가, 깊고 짙은 산수를 그린 이원희 작가, 스티로폼과 한지로 입체감을 만든 전광영 작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 크뇌벨 작가, 선택과 우연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짜는 이여몽 작가까지, 다섯 명의 손이 한 공간에 모였습니다. 봄에는 산수화 한 사람, 가을 초입에는 다섯 사람, 가을 중순에는 다시 한 사람. 같은 건물 안에서 사람과 그림이 계속 자리를 바꿉니다.


관람은 무료이고, 운영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일요일은 쉽니다. 삼청동 메인 거리에서 한 블록만 들어오면 되는 거리라,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보던 걸음이 우연히 이 흰 건물 앞에 멈추기도 합니다. 마당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야 하는 수고 때문인지,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안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고 적었습니다.
팔판길은 돌담이 이어지다가 갤러리가 나오고, 다시 돌담이 이어지는 식으로 걷게 되는 골목입니다. 간판이 크지 않은 갤러리가 많아서 지도를 보지 않으면 몇 걸음 차이로 지나치기 쉽습니다. 봄에는 산수화를, 가을에는 얼굴을, 또 가을에는 다섯 사람의 그림을 걸었던 이 흰 건물도 그런 자리 중 하나입니다. 같은 문을 열어도 매번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 길을 한 번 걸은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가 됩니다.
갤러리제이원 서울
갤러리삼청동 문화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 자리한 갤러리입니다. 흰 외관의 건물로,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어야 전시장에 닿는 독특한 동선을 갖고 있습니다. 1층과 2층으로 나뉜 공간에서 봄에는 개인전, 가을에는 또 다른 개인전과 여러 작가가 함께하는 기획전이 이어집니다.
옆을 지나가다가 새하얀 외관과 창 너머로 보이는 작품에 홀린 듯 들어갔다
- 주소
- 서울 종로구 팔판길 13
- 영업
- 오전 11:00 - 오후 6:00 (매주 일요일 휴무)
- 가격
- 무료 관람
- 비고
- 전시가 계절마다 바뀌는 상설 갤러리 / 1층·2층 전시 공간, 지하 공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