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이름을 짓기로 한 것이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따라 이름을 붙은 행리단길.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택가가 스스로 카페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수원 화성 행리단길

행리단길이라는 이름은 공식 지명이 아니다. 2017년경 SNS와 블로그를 통해 온 만들어진 것이고, 지금 이 거리를 가장 빠르게 부르는 말이 되었다. 행궁동에 경리단길이라는 서울의 거리를 붙인 것은 여기가 경리단길처럼 카페와 맛집, 소품샵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부터 그 모양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름 하나가 이렇게까지 강한 힘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여전히 행궁동이지만, 사람들의 입에서는 행리단길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지도 앱에 검색해도, SNS에 태그를 걸어도 이 이름이 먼저 뜬다. 공식 명칭보다 비공식 애칭이 더 널리 통용되는 드문 사례다.
이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대문 옆에 작은 손글씨 메뉴판이 걸려 있는 풍경을 자주 마주친다. 화려한 간판 대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표지판이다. 그 소박함이 오히려 이 거리를 다른 상업 거리와 구분 짓는다. 화려함으로 승부하지 않는 골목이라는 인상을 준다.
수원 화성을 둘러싼 성곽 때문에 행궁동은 문화재 보호법이 적용되었고, 신축과 증축이 거의 불가능했다. 낡은 주택과 역술관, 철학관만이 이 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리단길처럼 자리 잡은 곳이 아니었다. 옛 수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한 동네였을 뿐이다.
그 시절 이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은 대개 정해진 목적이 있었다. 철학관에서 사주를 보러 오거나, 오래된 이웃을 만나러 오는 걸음이었다. 지금처럼 정처 없이 골목을 구경하며 걷는 발걸음은 드물었을 것이다. 목적지가 아니라 통과하는 길이었던 골목이, 지금은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었다.
변화는 2013년에 시작되었다. 수원시가 개최한 '생태교통수원 2013'은 이 골목길들을 벽화와 꽃, 나무로 정비하고 낡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 추진된 화성행궁 복원도 함께 진행되면서 이 거리로 관광객들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정비 사업이 시작되던 무렵, 이 골목에 살던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을 것이다. 오래 살아온 동네가 낯설게 바뀌는 것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익숙한 풍경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벽화가 그려지고 화단이 놓이는 동안, 이 골목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정비가 끝난 골목길들에 누군가가 한옥을 개조한 카페를 열었다. 그 옆에는 한옥 인테리어의 소품샵이 문을 열었다. 상가건물을 지어서 가게를 모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주택가의 오래된 집들을 그대로 살려서 새로운 쓰임새를 입혀주었을 뿐이다.
그 첫 카페를 연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낡은 한옥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기둥과 서까래를 그대로 두고 그 안에 테이블을 놓았다. 그 선택 하나가 이 거리 전체의 방향을 정해버렸다. 뒤이어 들어온 사람들도 같은 방식을 따랐고, 그렇게 지금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행리단길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골목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건물마다 시간이 다르다. 매장들이 공중에 떠 있지 않고, 원래 그곳에 살던 누군가의 일상 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낡은 대문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예쁜 가게를 만들었고, 좁은 골목은 그대로 두고 그 안을 사람들로 채웠다.
그 결과 이 거리에는 지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굴곡이 많다. 곧게 뻗은 대로가 아니라, 원래 주택가였던 흔적을 따라 이리저리 꺾이는 골목이다. 처음 온 사람은 자주 길을 잃는다. 하지만 그 길 잃음조차 이 거리에서는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된다.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가게가 뜻밖의 발견이 되기 때문이다.
골목 하나를 두고도 사람마다 다른 경로로 걷는다. 정해진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카페부터 들르고, 어떤 사람은 소품샵부터 구경한다. 정답이 없는 동선이야말로 이 거리가 상가건물로 짜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계획된 몰이 아니라 자라난 골목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100곳을 넘는 카페와 음식점, 소품샵이 지금 이 거리에 흩어져 있다. 2020년 경기관광공사의 관광테마골목 선정을 받으며 공식적으로도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하지만 이 거리의 정체성은 그 많은 가게들이 아니었다. 오래된 한옥의 골격과 그것을 살려 쓰기로 한 누군가의 다정한 결정이 이름을 짓게 했다. 그렇게 이름이 생겨난다.
100곳이 넘는다는 숫자는 크지만, 그 하나하나는 여전히 작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거리를 걷다 보면 같은 간판을 두 번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저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공간들이 촘촘히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경리단길의 성공 이후 많은 도시들이 '~단길'이라는 이름의 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성공하는 곳은 드물다. 행리단길이 다른 이유는, 그 이름이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솟아올랐다는 점이다. 블로거와 방문객들이 자발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 이제 공식적인 관광 코스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주택가의 힘이다.
위에서 만든 이름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사람들의 입에 붙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이름은 다르다. 누군가 처음 그렇게 불렀고, 그 말이 마음에 들어 다음 사람도 따라 불렀다. 그렇게 쌓인 반복이 결국 하나의 지명 아닌 지명을 만들어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결국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아무 감흥이 없는 장소에는 별명이 붙지 않는다. 행궁동의 골목이 행리단길이라는 애칭을 얻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마음에 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름이 곧 그 골목이 받은 사랑의 총량인 셈이다. 그 사랑이 지금도 조금씩 더해지고 있다.
이런 이름이 지닌 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행리단길이라는 호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고,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는가. 공식적 지명이 아닌 비공식적 호칭이 가진 강력함은, 이것이 얼마나 자발적인 사랑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증명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름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경제를 만든다는 사실이 행리단길의 성공에 담겨 있다.
지금도 이 거리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개 누군가의 추천이나 사진 한 장을 보고 온다. 광고판이 아니라 사람의 입과 손끝을 거쳐 전해진 이름이다. 그렇게 전해진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행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오래 살아남을 것 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