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다시 오르는 사람들
같은 언덕인데 오르는 사람들의 이유가 다르다. 예전에는 살기 위해 올랐고, 지금은 보기 위해 온다. 그 사이에 뭔가 바뀌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해방촌
해방촌은 경사다. 그것이 첫 인상이다.
버스를 타고 신흥 교회 앞에 내리면, 바로 그곳부터 기울어진다. 신흥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계단이 되고, 그 계단이 본격적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처음 오는 사람은 그 경사에 놀란다. 첫 겨울 겪어보는 해방촌의 미친 경사, 오르막길의 연속.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 경사를 참으며 내려가는 것, 또는 올라오는 것이 이 동네를 경험하는 첫 번째 일이다. 편의성이 없다면, 사람들은 여기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동시에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108계단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이 동네는 여기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생겨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팔십 년 동안 이 경사를 참으며 오르내리던 주민들, 그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움직인다.
몸을 기울인 채로 앉아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상승한다. 그 느린 속도가 이 언덕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를 말해준다. 마치 케이블카를 타는 듯한 느낌. 그 몇십 초의 상승 동안 이곳의 높이를 깨닫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신흥시장이 수평으로 펼쳐진다. 방금 올라온 경사의 크기가 그때 비로소 느껴진다. 높이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이 경사를 맨발로, 또는 낡은 신발로 올라야 했다. 매일. 먹을 것을 사러, 물을 기르러.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강해졌을 것이다. 또는 견뎌내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골목 안의 보물
신흥시장의 입구에는 1953이라고 적힌 간판이 있다. 그 간판 앞에서 모두가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 간판 뒤쪽의 골목이 더 오래 보인다. 지금도 현지인들이 찾는 맛집이 있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공간들이 있다. 이 동네는 여전히 골목 안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찾는 재미가 있다. 물론 그 재미를 찾으려면 몇 걸음을 더 걸어야 한다.
여유로운 평일 낮 나홀로 해방촌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주말의 혼잡함을 피한다. 북적이는 주말보다는 한가로운 평일 오후가 이 공간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가게 간판을 읽고,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고, 좁은 골목의 분위기를 느낀다.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명소가 아니라 공간 자체다.
높이가 주는 경치
해방촌에서 가장 먼저 들어서는 감정은 피로다. 그 다음이 발견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경치다.
이 언덕의 위쪽에 서 있으면, 남산타워가 딱 보인다. 해방촌 자체가 높은 곳에 있어서, 서울의 건물들과 남산타워가 함께 보인다. 밤이 되니 확실히 분위기가 좋다. 노을을 보면서 디저트를 먹고 와인 한 잔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경치를 보기 위해, 이 경사를 올라오는 것이 가치 있어진다. 높이가 없었다면 그 풍경도 없었을 것이다. 불편함이 경치를 만든 셈이다.
루프탑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낮에는 햇살이 좋다. 저녁에는 칵테일과 와인을 즐기는 비스트로 같은 기분이 든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경치를 봐도 시간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된다.
반복되는 오르내림
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은 반복된다. 처음에는 생존의 일이었고, 지금은 경험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신체는 같은 반응을 한다.
다리가 떨리고, 숨이 가쁘다. 그 불편함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목적이 바뀌었다. 엘리베이터는 편의를 제공하지만, 완전한 편함을 주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또 다시 계단이 나타난다.
이것이 해방촌의 특수성일 것이다. 편의가 증가했지만,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 그 미완의 편의가 동시에 이곳의 매력을 지킨다. 모든 것이 편하면 이곳도 다른 관광지처럼 될 것이다.
팔십 년 동안 이 경사를 참으며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금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언덕 위의 공간에 선 사람들은, 뭘 해야 할까. 그냥 경치를 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으로 충분히 많은 일을 한 것이다. 올라온 높이만큼, 경치도 크다.
느리게 내려가는 시간
해방촌을 떠날 때는 내려간다. 올라올 때보다는 빠르지만, 그래도 느리다. 무릎이 받는 충격 때문일 수도 있고, 뒤를 돌아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덕을 내려가는 것도 경험이다. 올라가는 일과 내려가는 일은 같은 경사이지만 다른 운동이다.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은 올라갈 때와 다르다. 뒤에서 밀려오지 않는 압박감이 있어서, 주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가게의 간판들, 담벼락의 색, 골목 안쪽으로 이어진 계단들. 정신없이 올라갈 때는 못 본 것들이 보인다. 내려가면서 느끼는 것은 이 동네를 더 깊이 있게 본다는 것이다.
내려가다 뒤를 돌아보면, 올라온 높이가 얼마나 큰지 느껴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자리가 언덕 아래의 신흥시장 입구보다 훨씬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높이를 통해 이곳의 모양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팔십 년 동안 이 경사를 매일 올라내렸던 주민들은, 이 변화를 모두 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움막이었던 자리가 집이 되고, 집 옆에 가게가 들어오고, 가게 앞에 줄이 서고. 그 모든 것을 높이로부터, 또는 높이 속에서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이 느낀 이 경사는, 처음에는 생존의 고스란함이었고, 나중에는 일상의 무게였을 것이다.
지금 이 경사를 오르는 사람들은 어떨까. 대부분은 몇십 분의 관광이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 속에도, 이 자리의 본질이 담겨 있다.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 자리, 그래서 올라왔을 때 보이는 것이 더 특별한 자리.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이 길을 오르내린다. 사진을 찍으러, 밥을 먹으러, 와인을 마시러. 목적은 다르지만, 신체가 받는 경험은 비슷할 것이다. 다리의 떨림, 숨의 가쁨, 올라온 높이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그것이 해방촌이 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험일 것이다. 그 경험이 계속되는 한, 이 언덕은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