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임시거주
머물 곳이 없던 사람들이 남산 아래 언덕에 모여 동네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 지금은 다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산다. 해방촌은 처음부터 임시거주의 공간이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해방촌
해방촌이라는 이름을 얻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아 붙인 이름이다.
이곳은 원래 군대의 땅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자리다. 그 후 미군정청이 땅을 접수했다. 하지만 넓은 사격장의 통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그 자리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들은 집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북에서 내려온 월남 실향민들이 먼저 이 곳 일본군 육군관사의 빈 건물에 몸을 숨겼다. 그러다가 미군정청이 그들을 내보내자, 사격장의 위쪽에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통제가 미치지 않는 그 높이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1945년 광복이 오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 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이 언덕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움막과 판자집이 계단식으로 솟아올랐다. 그들이 모인 이곳을 사람들이 해방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은 처음부터 임시거주의 공간이었다. 누구도 영원히 이곳에 살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임시로 시작한 것이 팔십 년을 지속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 언덕은 무엇이 되었을까.
장터에서 만나는 시간
모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장을 보는 것이었다.
1953년, 해방촌의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자리가 생겼다. 장을 보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을 사람들이 신흥시장이라 불렀다. 이름 지은 것이 아니라 모여 살면서 생겨난 장소였다. 신흥시장은 이 마을의 심장이 되었다.
신흥시장에 모인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아래층부터 위층까지, 이 언덕 곳곳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만나고 인사하고 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처음 이웃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물건을 파는 것 이상의 것이 장터에 모이기 시작했다. 음식의 냄새, 사람들의 목소리, 흥정의 싸움 같은 것들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냄새와 목소리를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높이를 견디는 일
해방촌이 언덕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발목이다.
신흥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계단이다. 경사가 가파르다.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신발이 닳고 다리가 떨린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택시를 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언덕을 정말 아는 사람들은 108계단의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움직인다. 위아래를 오가면서, 마치 케이블카를 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몇십 초의 상승 동안 이곳의 높이를 깨닫는다. 엘리베이터의 속도만큼 이 언덕이 얼마나 가파른지가 느껴진다.
높이는 그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었다. 임시거주자들이 처음 정착한 자리가 되는 고도였다. 미군정청의 통제 바깥, 도시의 시선으로부터 한 발 물러난 그곳. 높을수록 남들이 덜 찾는 곳이었다.
그 높이에 적응한 사람들은 강해졌다. 또는 그렇게 되어야 했다. 언덕을 오르는 것, 그것이 이곳에 사는 삶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다시 들어오는 사람들
신흥로 초입에 카페들이 생겨난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처음 해방촌에 온 사람들은 거주하기 위해 왔다. 그 다음 온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왔다. 신흥시장 주변에 가게들이 늘어났고, 임차료가 오르면서 다양한 상점이 들어섰다. 터키 음식점, 타코 바, 와인 바, 그리고 많은 카페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엔 여행객들이고, 관광객들이고,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편에는, 아직도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해방촌은 처음부터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자리였다. 전쟁으로 떠밀려 온 사람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언덕을 나누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해방촌 아랫동네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여 산다. 다만 그들의 신분이 바뀌었을 뿐이다.
임시거주는 계속된다
해방촌은 처음부터 임시거주의 공간이었다. 통제 바깥에 들어가 임시로 지은 움막, 임시로 모여 만든 마을. 그 임시성이 팔십 년을 지속되면서, 이제는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언덕에 오르는 경험은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오르고, 내려가고, 다시 오르고. 임시거주자들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 그들은 이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내렸다.
저녁이 되면 이 언덕에서는 남산타워가 보인다. 해방촌 자체가 높은 자리에 있어서, 서울의 건물들과 남산타워가 함께 보인다. 밤이 되면 그 경치가 더 또렷해진다. 높이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 임시거주자들도 같은 풍경을 보았을까.
임시라고 생각한 거주가 임시가 아니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팔십 년이 그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바뀌었고, 가게도 바뀌었고, 명목도 바뀌었다. 하지만 이 언덕은 여전히,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자리일 것이다. 임시성이 어느 순간부터 영원성이 된 마을.
이 언덕에 모인 사람들
해방촌의 이름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다. 광복의 해방, 그리고 그 자리를 점령한 사람들이 느꼈을 그 어떤 해방감. 제어 불가능한 그 높이가 주었을 자유, 통제 바깥의 자리가 제공했을 가능성.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언덕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한 가지는 공통이었다.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높은 자리가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 받아들임이 조직화되고 명시화되기까지는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움막이 집이 되고, 길이 골목이 되고, 만남이 장터가 되는 데.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해방촌에 오는 사람들도, 그 역사 위에서 걷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해방촌 방문객들이 보는 것과, 처음 이곳에 온 사람들이 봤을 것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을 잇는 것은 같은 자리, 같은 높이, 같은 언덕이다. 팔십 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언덕은 그대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