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에 문을 닫는 골목
북촌로11길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관광 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관광지가 손님을 거부하는 역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북촌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에 수백만 명이 몰린 지는 이제 십 년을 넘었다. 처음엔 한옥을 보려 왔다. 그다음엔 사진을 찍으려 왔다. 마지막엔 그냥 있는 곳이 되었다. 심야에 짐을 들고 다니는 관광객들이 골목길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술취한 사람들이 한옥 담장에 몸을 기댔다. 캐리어의 바퀴음이 밤마다 울렸다. 소음 민원이 쌓였다. 하지만 민원을 낸 사람들은 대부분 세입자였다. 집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집이 아닌 곳을 지키려 했다. 이 골목을 정말로 소유했던 주민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중에 온 사람들이 원래 살던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때, 더는 들을 사람이 거기에 없었고, 들어줄 방법도 없었다.
모든 곳이 다섯 시에 맞춰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북촌동양문화박물관처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다. 관광 통행이 제한되는 오후 5시 이후에도 이런 곳들은 방문객을 받을 수 있다. 정책이 그은 선 안에서, 각 공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규칙은 하나지만, 그 규칙에 적응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2024년 7월, 서울시는 북촌로11길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2025년 3월부터 이곳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관광 목적의 출입을 허용한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손님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역설은 그것뿐 아니다. 이 결정은 '거주자'를 지키려는 것이었는데, 이미 거주자는 대부분 떠나간 뒤였다. 정책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다. 문을 닫는 것으로 지킬 사람이 없는 거리를 지키는 셈이 되었다. 20년이 상처를 남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복구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서울시는 이 구역을 '레드존'이라 부른다. 이름 자체가 경고에 가깝다. 그런데 이 레드존을 만든 것이 온전히 관광객만의 책임은 아니다. 1999년, 이 동네 주민들은 스스로 조직을 꾸려 한옥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냈다. 그 요구가 정책이 되어 돌아왔을 때, 정작 그 정책이 지킨 것은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었다. 목소리를 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2001년 북촌가꾸기사업 이후 지가는 1억 원대까지 올랐다. 땅이 금이 되면서 주거의 개념이 사라졌다. 원주민은 세를 주고도 그 돈으로 이웃을 살지 못했다. 한옥을 개수하고 지었던 사람들의 손자가 아니라, 금수저 집단이 북촌을 채웠다. 그들은 집을 점유하되 거주하지 않았다. 강남의 오피스텔처럼, 북촌의 한옥도 투자 수단이 되었다. 명의는 남았지만 사람은 없다. 불이 켜지지 않는 한옥들이 관광을 위해 셔터를 올린다. 그것이 현대 서울에서 '보존'의 의미가 되었다. 역사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삶은 사라진다. 16채 중 정주하는 한옥이 2채만 남았다는 보도가 나온 지도 수년이 되었다. 북촌은 고스트타운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유령의 집들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재벌가가 한옥을 사들였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들려온다. 사실이든 소문이든, 그 이야기가 계속 도는 것 자체가 이 동네의 성격을 보여준다. 한옥 한 채의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 집에서 밥을 짓고 잠을 자는 사람은 줄어든다. 소유와 거주가 이렇게 벌어진 동네에서, '보존'이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20년 전의 북촌은 단순한 주거지였다. 아침마다 셔터를 열고 밤마다 닫고, 밥을 짓고 아이를 기르던 곳이었다. 이웃들은 세대를 거쳐 서로를 알았고, 골목은 누군가의 놀이터이자 누군가의 산책로였다. 그런 북촌에서 문화재와 관광 수익이 주인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20년이 아니었다. 변화는 빠르고 후회는 늦다. 그것이 북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이 골목을 걷는다. 사진을 찍고, 좁은 길을 오르내리고, 어딘가의 담장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규제가 관광을 줄이지는 못했다. 다만 관광이 허용되는 시간을 좁혔을 뿐이다.
규제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오후 5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도, 그 시간을 넘겨 골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시간 제한은 강제라기보다 권고에 가깝게 작동한다. 그런 허술함 속에서도 상징적인 효과는 분명하다. 이 동네가 더 이상 무제한으로 열려 있지 않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 제한을 미리 알고 오는 사람과, 모르고 왔다가 골목 초입에서 안내판을 마주하는 사람이 나뉜다. 후자는 당황한 얼굴로 지도를 다시 살핀다. 관광지가 시간을 정해두고 문을 연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오전 10시 직후의 골목과 오후 두세 시의 골목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이른 시간에는 그나마 남아 있는 정적을 느낄 수 있지만, 한낮이 되면 그마저도 인파에 묻힌다. 짧은 개방 시간 안에서도, 진짜 고요함을 만나려면 다시 더 이른 순간을 노려야 하는 셈이다.
레드존이라는 이름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이 규제가 느슨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더 강화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번 무너진 거주의 질서는 규제 하나로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관광과 주거는 원래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는 위축된다. 북촌은 그 긴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표본이 되었다. 시간을 나누어 쓰는 것으로 그 긴장을 봉합해 보려 하지만, 봉합은 봉합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이 정책을 지켜보는 다른 지역들도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다른 동네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촌의 시간 제한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지,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다.
분명한 것 하나는,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책이 바뀌어도, 규제가 강화되어도, 이 골목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 사이에서 정작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도 있다. 오래된 한옥 그 자체다. 자신이 관광지가 될지 주거지로 남을지, 건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지금 시간 제한은 남은 주민들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북촌이 더 이상 '산다'는 개념이 없는 공간임을 공식화한 것이기도 하다. 주거지에서 관광지로 변한 공간에 대해 도시는 이제 '폐쇄'를 답으로 내놨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언제까지 한옥마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혹은 부를 필요가 있을까. 북촌은 이제 뮤지엄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 주거지가 되어야 하는가. 역사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 둘 다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북촌은 묻혀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향수하는 발걸음들이 점점 잦아들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