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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HOME / ALLEY / INTRO / 연희동 · 3분

궁이 있던 자리에 집이 들어선 동네

연희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궁 연희궁에서 비롯됐다. 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주택들이 들어섰다. 지금 이 골목에는 그 집들 사이에 가게가 조용히 들어와 있다.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연희동
SCENE 01 : 골목에 남은 집들의 흔적

연희동을 걸으면 이 골목이 주거지라는 것을 먼저 느낀다. 시장이 아니다. 관광지도 아니다. 사람들의 집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이 골목을 가장 먼저 설명하는 문장이다.

연희동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자리에 집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조선시대 이 자리에는 궁이 있었다. 연희궁이라 불렸던 이궁 가운데 하나다. 왕이 거처하지 않는 궁이 이궁이다. 연희궁은 그렇게 이 자리에서 왕의 두 번째 처소 역할을 했다.

궁이 있던 땅

연희궁은 지금 연세대학교 자리로 추정된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 동네를 움직이는 이름 속에 그 흔적이 있다. 궁이 없어도 궁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정자동, 염동, 궁동, 음월리라고 불리던 이곳이 후대에 연희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궁의 이름이 동네 이름이 되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은 연희정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가, 이천구백사십육 년에 연희동으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된다. 궁이 사라진 뒤 백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이 더 이상 궁이 아니라 동네가 되었을 때의 이름이다. 궁동에서 연희동으로, 동네는 이름을 새로 짓는 방식으로 변했다.

SCENE 02 : 주택지의 높이

집이 들어선 골목

이천구백육십팔 년 연희로와 증가로가 뚫린다. 도로가 생기면서 사람이 들어온다. 도시가 빠르게 자라고 있던 시기였다. 서울은 팽창하고 있었고, 모든 곳에 집이 필요했다. 연희동도 그렇게 주택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평지에는 고급 주택이 들어섰고, 높은 곳에는 시민아파트가 지어졌다. 성산로와 연희로 주변에는 상가가 생겼다. 궁의 자리를 사람들의 집이 차지했다. 집이 들어서는 속도에 맞춰 골목도 생겼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골목이 되었다.

이 동네에 화교가 많이 살면서 중국집이 들어섰다. 궁 다음에 올 것은 주택이었고, 주택 옆에 올 것은 가게였다. 그 순서대로 연희동은 자란다. 지금도 그 순서는 유지되고 있다.

SCENE 03 : 주택가 속의 상점

지금의 연희동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고즈넉함이다. 시장의 북적거림이 없다. 골목은 주택지다. 하지만 그 주택지 안에 가게가 조용히 들어와 있다. 카페, 소품샵, 식당들이다. 그들은 주택지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거기 있다.

이것이 연희동의 변화다. 궁에서 주택으로, 주택 가운데 가게로. 각 단계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그 자리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 여전히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고, 누군가가 매일 발 디디는 골목이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

연희동이라는 이름이 궁을 의미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 이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궁도 아니고, 거기 있던 주택들만도 아니다. 그 주택들 사이사이에 생겨난 가게들과 골목과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 어떤 동네다.

이름은 변한다. 하지만 뜻은 남는다. 궁의 자취는 골목에, 주택지의 자취는 골목의 높낮이에, 사람들의 자취는 문을 낸 각각의 가게들에 남아 있다. 연희동을 걸으며 느끼는 것은 그 모든 층이 한 번에 만나는 감각이다.

연희동의 역사와 지명 변화는 2026-09-08에 확인한 공개 자료에 따른 것이다. 동네의 현재 구성과 가게들의 위치는 같은 기간 방문 기록과 블로그 기사에서 반복해 나타난 서술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연희동서대문구주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