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름이 옮겨지는 것
1981년 서울프랑스학교가 내려왔을 때 서래마을은 아직 프랑스인의 마을이 아니었다. 그저 강남 부자들이 모여드는 한 동네였다. 그런데 어느새 언론은 이 자리를 '프랑스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 걸어보면 그 이름이 진짜 같다. 마을의 이름이 그곳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옮겨져 간 것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서래마을 카페거리

서래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따로 있다. 옛날 이곳을 흐르던 개울이 굽이진 모습이 서리서리 흘러내렸다는 데서 붙었다고도 하고, 서릿마을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수백 년 마을의 이름은 그렇게 물 때문에 생겼다. 하지만 지금 서래마을에서 물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이 자리도 물을 덮고 아스팔트를 깔았다. 그 과정에서 옛 지명도 함께 사라지는 대신, 강남 부자들의 마을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 걸어보면 그 물길이 있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발밑은 단단한 아스팔트고, 골목 양옆으로는 카페와 레스토랑의 테라스가 늘어서 있다. 다만 골목이 살짝 굽어지는 지점들, 어딘가 완만하게 휘어지는 길의 곡선을 따라 걷다 보면 예전에 물이 흐르던 자리라는 게 어렴풋이 짐작될 뿐이다. 이름은 남았지만 그 이름을 만든 풍경은 사라졌다.
그 시절 서래마을은 여느 강남 부촌과 다르지 않았다. 이름 있는 부자들과 연예인들이 넓은 대지 위에 양옥을 지었고, 언론은 이곳을 강남의 평창동이라고 불렀다. 낮은 건물들과 높은 담장, 녹음, 그리고 한적함이 골목을 채우던 때였다. 사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부촌이었다. 단지 여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거리일 뿐이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 동네를 지날 때면 옛 풍경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높은 담장 너머로 정원의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고, 대문 앞에는 승용차가 세워져 있는 그런 거리였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가게도 드물었다. 지금처럼 걸어서 구경할 만한 골목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살아가는 동네였다.
부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시절에도, 이 동네가 완전히 닫혀 있던 것은 아니다. 담장이 높았을 뿐 골목 자체는 늘 열려 있었다. 다만 그 골목을 일부러 걸으려는 사람이 드물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목적 없이 걷는 즐거움을 위해 찾아오는 발걸음은, 그때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을의 이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1년이었다. 용산 한남동에 있던 서울프랑스학교가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 뒤 프랑스인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 동네로 모여들었다. 학교의 아이들을 데려올 부모들, 그들의 생활을 돕는 이웃들, 그리고 1990년대 고속철도 개발을 위해 한국에 파견된 프랑스 기술자들까지. 처음엔 서래마을이 아닌, 그냥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 동네였을 테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드는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식 음식, 프랑스식 방식의 일상이 태어난다. 카페가 생기고, 베이커리가 생기고, 그렇게 한 골목이 조금씩 프렌치 컬러로 물들기 시작했다.
학교 앞이라는 게 그렇다. 등하교 시간이면 아이들과 부모들이 오가고, 그 오가는 발걸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가게들이 생긴다. 처음엔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곳이었을 그 자리에, 시간이 지나면서 프랑스식 빵을 굽는 손길이 더해졌다. 익숙한 재료로 만든 익숙한 맛이 타지에서는 더 그리웠을 것이다. 그런 그리움이 하나둘 가게로 태어났다.
빵을 굽는 사람도, 그 빵을 사러 오는 사람도 처음에는 모두 타지 사람이었다.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맛 하나를 찾는 마음이 이 골목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하나둘 늘어난 가게들이 어느새 골목 하나를 가득 채웠다.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그 시작을 모르는 이가 더 많겠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향이 풍겨 나온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풍경이 있다. 프랑스식 베이커리, 와인바, 그리고 좁은 골목을 누비는 카페들이 그것이다. 처음엔 그저 외국인들의 일상 같은 것이었을 그 풍경이, 2000년대 중반쯤 언론의 렌즈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나왔고, 관심이 모여들었고, 이곳은 언젠가부터 정식으로 '프랑스 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골목을 걷다 보면 간판의 글자체부터 다르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어떤 곳은 필기체로 프랑스어를 그대로 적어두었고, 어떤 곳은 한글과 알파벳을 나란히 써두었다. 그 작은 차이들이 모여 골목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지나가는 행인도, 그 앞에 멈춰 서서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이곳이 여느 골목과는 다르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낀다.
마을의 이름이 물에서 사람으로, 사람의 국적으로 옮겨진 것이다. 지금 이 골목에 서면 그 이름이 완전한 거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몇백 명의 프랑스인이 실제로 여기 산다.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 중 40%에 가까운 이들이 이 동네를 선택했다. 그 정도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사실을 만들어낸 것은 학교를 이전한 누군가의 결정이었다는 게 재미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서래마을은 언론의 렌즈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이곳을 '프랑스 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자리에는 수백 명의 프랑스인이 살고 있었다.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 중 상당한 비율이 이 동네를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언론의 이름이 거짓이 아니라 현실이 된 것이다.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이름은 스스로 힘을 갖는다. '프랑스 마을'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오히려 더 많은 프렌치 가게들이 이 동네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름이 현실을 만들고, 그 현실이 다시 이름을 뒷받침하는 순환이 몇 년간 이어졌다. 지금 이 골목의 풍경 상당 부분은 그런 순환 속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마을은 결코 고정되지 않는다. 2000년대 말부터 프렌치 레스토랑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다른 국적의 카페와 주점들이 들어섰다. 마을의 이름은 '프랑스 마을'이지만, 거리의 풍경은 그보다 더 빨리 변해간다. 어쩌면 마을의 이름이 옮겨가는 속도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일 테다. 기사 제목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리니까. 그렇게 마을의 이름과 거리의 현실 사이에는 항상 시간차가 생긴다. 그리고 그 시간차가 바로 한 마을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름에 잠겨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는 것 말이다.
지명이 물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다시 다른 무언가로 넘어가는 그 흐름을 지켜보는 일은 묘하다. 처음에는 그저 지형을 가리키던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한 국적을 가리키게 되고, 또 얼마 뒤에는 그 국적조차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말이 된다. 이름은 늘 그 자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늦게 겨우 따라잡는다.
골목을 몇 번이고 다시 찾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특별히 아쉬워하지 않는 눈치다.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서도, 그 골목을 걷는 즐거움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이 무엇이든, 그 이름 아래에서 사람들이 계속 드나든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마을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