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8 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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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국내 최초가 남긴 것

2003년 일산에 처음 선 스트리트형 쇼핑몰은 거리를 상품화하는 법을 보여줬다. 23년이 지난 지금, 이 골목에 남아 있는 것은 수평 구조의 상권이다.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고양 라페스타·웨스턴돔·일산가로수길
국내 최초가 남긴 것
SCENE 01 : 일산의 명동으로 불리는 거리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라페스타 · 2026.08 / 사진 selim0726 · https://blog.naver.com/selim0726/224386619653 selim0726이 촬영한 일산 라페스타 거리의 정취입니다. 호수공원 방향에서 바라본 상권 전체의 모습이 보입니다. 스트리트형 쇼핑몰이 이루는 수평적 구조가 명확히 드러나는 시점입니다.

호수공원 쪽에서 다가오면 이 거리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갑자기 나타난다.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에서 벗어나는 순간, 간판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조용한 공원과 시끌벅적한 거리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일산 라페스타는 2003년 7월 문을 열었다. 이곳이 처음 들어온 것은 국내 어디에도 없던 형태였다. 쇼핑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은 거리였다. 큰 건물 하나가 아니라 작은 상점들이 한 줄로 길게 이어진 '스트리트형 쇼핑몰', 국내 최초의 형식이었다.

그 이름은 라페스타(La Festa), 무도회다. 축제의 설렘을 거리의 이름에 담은 것이다. 서는 순간부터 이곳은 '일산의 명동'이라고 불렸다. 그 호칭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들이 많다. 라페스타는 단순히 가게들이 모인 거리가 아니라, 도시 상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 공간이 되었다.

이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돌리게 된다. 위로 올려다볼 건물이 없으니 시선이 자꾸 옆으로 향한다. 간판과 진열창이 눈높이에 맞춰 늘어서 있고, 걷는 속도 그대로 다음 가게, 그다음 가게로 넘어간다. 계단도 엘리베이터도 없이 발걸음만으로 상권 전체를 훑을 수 있다는 감각이 이 거리의 첫인상이다.

거리가 자본이 되는 방식

여기서는 상점의 위치가 곧 하나의 자산이 된다. 거리 초입에 자리한 가게와 안쪽 깊숙이 자리한 가게는 지나는 사람의 수부터 다르다. 그 격차를 좁히려 안쪽 가게들은 더 화려한 간판과 더 공격적인 이벤트로 승부를 건다. 같은 거리 위에서도 자리마다 온도가 다르다.

종로나 명동 같은 오래된 도심 상권은 다르다. 좁은 골목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자리 위에 가게가 들어섰다. 반면 라페스타는 처음부터 상권을 위해 그려진 거리였다. 그 차이가 지금도 걷는 느낌에서 드러난다. 자연스럽게 생긴 길과 그려서 만든 길은, 걷는 사람이 느끼는 리듬부터 다르다.

스트리트형 쇼핑몰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유럽의 거리 상권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랬다. 다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국내 도시는 대형 몰로 상권을 집약하는 쪽을 택했다. 큰 건물 안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만나는 가게들, 그런 수직 구조였다.

수직 구조의 몰에서는 각 층마다 정해진 업종이 자리 잡는다. 지하는 식품관, 위층은 의류, 꼭대기는 문화시설. 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다. 카페 옆에 옷가게가, 옷가게 옆에 다시 식당이 이어진다. 정해진 순서 없이 마주치는 대로 걷는 것이 이 거리의 방식이다. 그 무순서함이 오히려 이 거리를 걷는 재미로 이어진다.

라페스타가 가져온 것은 그것의 반대였다. 누군가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도록. 거리 위에서 고개만 들면 모든 가게가 눈에 들어오도록. 같은 수평선 위에서 동시에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고 고르도록. 그렇게 거리 자체가 상품이 되었다.

대형 몰에서는 안내판을 보고 층을 찾아야 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그냥 들어가면 된다. 망설임과 결정 사이의 거리가 짧다. 그 짧음이 사람을 계속 걷게 만드는 힘이다.

이 형식은 23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가게는 수십 번 바뀌었지만, 거리가 이루는 선형의 구조, 평면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그 특성은 여전하다. 웨스턴돔이 2007년 돔형 쇼핑몰로 들어왔을 때도, 일산가로수길이 호수 공원과 만났을 때도, 라페스타의 기본 설계는 한 줄 거리의 원리를 지켰다. 이는 초기 설계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이자, 동시에 현대 도시 상권의 요구에 맞추기 위한 지속적인 도전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저녁이 되면 늘어선 가게들의 불빛이 한 줄로 이어진다. 어느 한 곳만 밝은 게 아니라 거리 전체가 고르게 빛난다. 그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처음 걷기 시작한 자리에서 꽤 멀어져 있다. 발걸음을 세지 않아도 거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구조다.

SCENE 02 : 선택지가 연이어 나타나는 거리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라페스타 · 2026.09 / 사진 nstartkkh · https://blog.naver.com/nstartkkh/224398756195 / https://blog.naver.com/nstartkkh/224398428322 nstartkkh가 촬영한 라페스타 거리의 또 다른 시점입니다. 평일 낮 시간, 거리를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과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의 모습입니다. 스트리트형 상권의 수평적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 두세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 구간과, 처음 보는 간판들이 몰려 있는 구간이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 더 오래 살아남을지는 걸어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

화려하게 시작했다가 몇 년을 못 버티고 간판을 내린 자리들이 곳곳에 있다. 새로 들어온 가게는 이전 가게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바닥의 타일이나 벽의 이음매에는 예전 구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자세히 보는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흔적이다. 거리는 그렇게 매번 새로워 보이지만, 뜯어보면 여러 겹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거리 상권의 약점은 명확하다. 계절의 변화에 노출되고, 날씨에 따라 발길이 끊기며, 대형 쇼핑 시설에 밀리기 쉽다. 라페스타도 그 약점을 피하지 못했다. 개장 초기의 붐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이 거리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처마나 아케이드가 없는 구간에서는 우산을 써야 하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걷는 속도마저 느려진다. 대형 몰이라면 겪지 않을 불편함을 이 거리는 고스란히 안고 간다.

다만 이곳이 지켜낸 것도 있다. 거리의 수평적 구조 자체가 그것이다. 한 줄 거리 위에서는 가게 하나가 망해도 나머지는 걸어간다. 대형 몰에서처럼 한 건물의 상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선택지가 계속 이어지는 한, 발걸음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이 거리를 찾는다. 날씨가 궂은 날은 실내가 많은 웨스턴돔 쪽으로 흐르고, 날이 좋은 날은 다시 거리로 나온다. 서로 다른 두 상권이 나란히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곳이 계속 버티는 이유일 것이다.

23년 동안 라페스타가 증명한 것이 있다면, 국내 도시 상권에는 수평과 수직 두 가지 방식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줄 거리의 약함과 큰 몰의 강함, 그 둘이 나란히 서 있을 때, 비로소 도시는 선택지가 많아진다.

결국 이 거리가 남긴 것은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걷는 방식이다. 계단 대신 걸음을, 안내판 대신 눈짐작을 택하게 만든 이 구조는, 지금도 이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의 발걸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국내 최초라는 이름표를 떼고 봐도, 이 거리는 여전히 걷기 좋은 거리로 남아 있다.

라페스타는 2003년 7월 개장하였으며, 웨스턴돔은 2007년 5월 30일에 개장하였다. 두 시설은 함께 일산의 양대 상권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산의 명동'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스트리트형 쇼핑몰 형식은 당시 국내 최초의 사례였으며, 이후 국내 도시 상권 발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본문의 대형 몰과의 비교는 국내 상권 발전 역사에 나타나는 일반적 추세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23년간 지속된 이 거리의 특성이 현재의 상권 구조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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