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8 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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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아티클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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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퇴근하는 사람들이 만든 골목

을지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인쇄 골목이었다. 밤을 새고 일한 인쇄공들이 교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노가리와 생맥주로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목이 지금도 그 시간대에 산다.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을지로 노가리골목
SCENE 01 : 낮의 을지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지금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산업의 필요에서 비롯됐다. 을지로는 인쇄의 중심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큰 인쇄 골목이다. 모든 책이, 유인물이, 신문이 이곳에서 나왔다. 납기를 맞추려면 밤을 새야 했다.

인쇄 기계는 밤에도 돈다. 옆 사람이 언제 일어나는지 모르는 교대 근무 시스템이었다. 어떤 사람은 밤 열두 시에 들어와서 새벽 여덟 시까지 기계를 맡고, 그 사람이 나가면 다시 다음 사람이 들어온다. 그렇게 사람이 교대되고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을지로는 서울의 여러 동네를 거느린 거대한 산업 시설이었다.

을지로의 인쇄소들이 다루던 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전국의 모든 책이, 신문이, 광고 전단이 이곳을 거쳐 나갔다. 어린이 교과서에서부터 문학지, 작은 지방 신문까지. 을지로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문화 유통 자체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일이 끝난 뒤의 시간

한 사람의 퇴근은 다음 사람의 출근을 의미했다. 밤을 새운 인쇄공들은 아침 햇빛이 나올 때 일을 마쳤다. 그들이 할 일은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즉시 가지는 않았다. 맥주 한 잔과 노가리가 필요했다. 밤새 몸에 밴 기름냄새와 기계음을 씻어내려면, 찬 맥주와 바삭한 안주가 필요했다.

이천구백팔십 년 십일 월 을지 오비 베어가 노가리를 안주로 생맥주를 팔기 시작했다. 그 가게가 이 골목의 시작이었다. 남들이 이 조합을 따라했다. 생맥주는 비싸지 않았고, 노가리는 더 싸고 소화도 빨랐다.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그것이 퇴근하는 사람들의 밥상이 되었다.

SCENE 02 : 저녁이 되는 골목

골목이 된 필요

처음엔 한 가게였다. 그 다음 가게가 옆에 생겼다. 또 다른 가게가 그 옆에 생겼다. 모두 같은 것을 했다. 생맥주와 노가리. 그것이 업종이 되었다. 더 이상 누가 처음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 골목 자체가 노가리 골목이 되었다.

골목이 생기면 사람이 모인다. 퇴근하는 인쇄공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지역의 다른 직장인들도 왔다. 가게가 늘어나면서 메뉴도 다양해졌다. 노가리와 치킨, 골뱅이, 먹태.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맥주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 이 골목은 그 시간대에 가장 활기찬 곳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야외 테이블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사람들이 모이고, 네온사인이 켜진다. 그것이 이 골목의 본래 목적이다. 일이 끝난 사람들의 휴식.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지금도 그 역할을 한다.

SCENE 03 : 야장의 풍경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이천십오 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단순한 먹거리 골목이 아니라, 서울의 문화유산이 되었다는 뜻이다. 산업의 필요에서 비롯된 이 골목이, 결국 도시의 추억이 되었다.

인쇄 기계는 더 이상 그렇게 돌지 않는다. 밤을 새우는 인쇄공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골목은 여전히 그 시간대에 산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여기로 온다. 이제는 인쇄공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퇴근이 이 골목의 대상이 된다. 술꾼의 골목이 아니라, 퇴근하는 사람들의 골목이 되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역사와 성립 과정은 2026-09-08에 확인한 공개 자료에 따른 것이다. 가게의 운영 특성과 방문객의 흐름은 같은 기간의 방문 기록과 보도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을지로중구인쇄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