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렌즈 뒤로 숨어버린 '골목의 얼굴'
사진 한 장이 골목을 다 써 버리기 전에, 렌즈를 내리고 눈과 귀로 적어 두어야 할 것들에 대하여.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3.01

01. 문 앞에서 먼저 올라가는 손
이름난 가게 앞이나 벽화가 그려진 골목 어귀를 지나다 보면 사람들의 동작이 서로 닮아 있다. 멈추고, 한 발 물러나고, 손을 올린다. 손이 올라가는 높이는 대개 얼굴 앞이어서, 그 순간 얼굴은 손바닥만 한 기계 뒤로 반쯤 가려진다. 골목은 그 기계의 화면 안에 먼저 도착하고, 실제 골목은 화면 바깥으로 밀려난다.
찍고 나면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있다. 이제 다 보았다는 느낌,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이 셔터 소리와 함께 온다. 그 안도감 때문에 눈은 더 이상 그 자리를 꼼꼼히 훑지 않고, 나중에 보면 되겠다는 생각은 대개 나중에 오지 않는다.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그 벽 앞에서 무슨 소리가 났는지는 어느 장에도 남아 있지 않다.
화면 속의 골목은 정돈되어 있다. 지나가던 사람은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가고, 머리 위의 전선은 각도를 틀어 비켜 가고, 창에 비친 반사와 발밑의 물기는 손질을 거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목은 실제보다 말끔해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고개를 들어 진짜 골목을 다시 볼 때 어딘가 어수선하다고 느끼기 쉽다. 손안의 말끔한 골목과 눈앞의 어수선한 골목 사이에서 어느 쪽이 본래 얼굴인지 잠깐 헷갈리는 순간이 생긴다.
얼굴은 원래 정면 한 장으로 되어 있지 않다. 웃다가 굳고 피곤하다가 풀리는 시간의 움직임이 얼굴이다. 골목도 그렇다. 오전의 셔터와 오후의 화분과 저녁의 간판불이 이어져야 한 골목의 표정이 된다. 사진은 그중 한순간의 정면을 아주 정확하게 붙든다. 다만 정확한 정면만 여러 장 들여다보다 보면 표정이 있었다는 사실부터 흐릿해진다.

02. 한 장을 위해 쓰이는 자리
사진이 잘 나오는 자리는 대개 정해져 있다. 밝은 벽 앞, 색이 진한 문 앞, 간판 글자가 온전히 들어오는 각도 같은 곳이다. 그 자리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고, 자리 바깥은 배경이 되지도 못한 채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가게 하나가 통째로 있는데도 실제로 쓰이는 것은 벽 한 면과 문 하나일 때가 있다. 나머지 공간은 그 한 면을 세우기 위한 무대 뒤가 된다.
그런 자리가 알려지고 나면 그 자리가 사진을 위한 모양으로 조금씩 바뀌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벽은 더 눈에 띄는 색을 입고, 입구 앞의 화분과 의자는 화면에 어울리는 위치로 옮겨지고, 메뉴판은 사진에 잘 담기는 글씨로 다시 쓰인다. 골목이 사진에 맞춰 바뀌는 것인지 사진이 골목을 바꾸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을 넘은 자리는 예전 얼굴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이미 누군가 찍은 각도를 찾아가 같은 자리에 서 보는 일도 잦다. 화면에서 본 골목을 확인하러 가서 같은 구도로 같은 사진을 한 장 더 쌓는 것이다. 디토 소비라 불러 온 습관은 사진 속에서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난다. 다녀온 자리와 다녀올 자리가 사진 한 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걸음이 지나간 길의 표정은 남지 않는다.
이런 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의 하루도 떠올려 본다. 사진을 찍는 손님과 사진에 찍히는 벽 사이로 쟁반을 들고 비켜 다니는 걸음이 있을 것이다. 손님에게는 잠깐 머무는 자리가 주인에게는 종일 서 있는 자리다. 한 장의 사진 안에는 그 자리를 지켜 온 하루치의 수고가 찍히지 않는다.
03. 우리도 사진을 싣는다
여기서 하나는 짚고 가야 한다. 이 지면에도 사진이 실린다. 앨리매거진의 화면을 열면 글 사이사이에 골목의 사진이 놓이고, 그 사진에 끌려 글을 열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렌즈 뒤로 숨는 습관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만 렌즈 바깥에 서 있는 척할 수는 없다. 사진을 찍는 손과 사진을 싣는 손은 같은 쪽에서 같은 골목을 바라본다.
찍는 손을 나무랄 마음은 없다. 사진이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일은 실제로 있고, 그 덕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골목이 적지 않다. 곤란해지는 때는 사진이 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문 안까지 대신 들어가 버릴 때다. 이미 보았으니 안에서는 확인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 들고, 그러면 눈은 화면에서 본 것과 같은 것을 찾느라 다른 것들을 지나친다.
그래서 이 지면에서는 사진 옆에 문장을 붙이려 애쓴다. 사진이 문의 손잡이라면 문장은 문 뒤의 방을 조금 열어 보이는 일이다. 그 방에는 사진에 나오지 않는 소리와 바닥의 기울기와 문턱의 높이가 있고, 어떤 것은 문장으로도 다 옮겨지지 않는다. 옮겨지지 않은 부분은 독자가 직접 서서 채우는 몫이다.
이 글 사이에 놓인 사진을 볼 때도 한 가지만 권하고 싶다. 사진 속의 문이 열리면 어떤 소리가 날지, 그 골목의 바닥이 발밑에서 어떻게 울릴지를 잠깐 상상해 보는 것이다. 사진이 보여 주는 것보다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는 버릇은, 나중에 그 골목 앞에 실제로 서게 되었을 때 눈이 화면과 다른 곳을 먼저 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04. 눈과 귀가 먼저 적어 두는 것들
렌즈를 내리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귀다. 골목의 소리는 사진에 들어가지 않아서 찍는 동안에는 자주 잊힌다. 이를테면 미용실 앞에서는 드라이어의 바람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세탁소 앞에서는 스팀다리미가 쉭 하고 숨을 내쉬고, 분식집 유리문 안에서는 국자가 냄비 가장자리에 닿는 금속음이 난다. 문이 열리는 순간에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문 안의 하루가 어느 만큼은 그려진다.
눈이 적는 것은 사진과 다르다. 사진은 한 번에 전체를 담지만 눈은 하나씩 옮겨 다니며 적는다. 문손잡이의 광택이 손 닿는 자리만 벗겨져 있다든지, 벽에 붙은 메모의 글씨가 어느 손으로 쓴 것인지 알 것 같다든지, 오전에는 벽 아래에만 닿던 빛이 시간이 지나 창틀까지 올라와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어느 하나도 사진의 주인공이 되지 않지만 합쳐지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말해 준다.
몸이 적는 것도 있다. 문턱을 넘을 때 바닥이 바뀌는 감촉, 손잡이를 잡았을 때 손바닥에 닿는 쇠의 온도, 문을 여는 순간 바깥 공기와 안쪽 공기가 섞이는 경계 같은 것들은 화면이 옮기지 못한다. 그런 것은 적어 두려고 애쓰면 오히려 달아나서, 적는다기보다 기억에 눌러 두는 쪽에 가깝다.
적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문을 열기 전에 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문한 것이 나올 때까지 들리는 소리 세 가지와 눈에 걸리는 것 세 가지를 마음속으로 꼽아 본다. 나중에 수첩에 한 줄씩만 옮겨도 그날의 골목은 사진첩과 다른 서랍에 담긴다. 쓰는 일이 번거로우면 외우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향하는 쪽이 달라지곤 한다.
05. 에디터의 안목: 화면이 꺼지면 보이는 것
찍는 일을 아예 접자는 것은 아니다. 순서만 바꿔 보자. 눈으로 다 보고 귀로 다 들은 뒤에도 남는 한 장이 있다면 그때 셔터를 누르면 된다. 늦게 찍은 사진은 그 자리에 다녀갔다는 표시보다 그 자리를 알게 된 다음의 사진에 가까워서, 화면 속 골목과 실제 골목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골목의 얼굴은 정면에 있지 않고 시간 속에 있다. 아침에 문을 여는 손, 오후에 물을 뿌리는 손, 저녁에 불을 켜는 손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표정이라 한 번 다녀와서는 다 알 수 없다. 같은 골목을 두 번 세 번 지나가 본 사람만이 사진에 없는 표정 하나쯤을 갖게 된다. 그 표정은 어디에도 올릴 수 없어서 오래 남는다.
골목의 얼굴은 결국 그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렌즈를 든 눈에는 낯선 얼굴이 프레임의 배경이 되기 쉽지만, 렌즈를 내린 눈에는 같은 얼굴이 목례를 나눌 수도 있는 이웃이 된다. 누군가의 얼굴이 사진에 크게 들어갈 때는 그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먼저다. 찍기 전에 한 번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이는 일은 화면 속 어떤 보정보다 그 사진을 덜 낯설게 만든다.
골목을 나서며 폰의 화면을 켰다가 끄면 검은 유리 위에 골목 한 조각이 비친다. 그 위에 내 얼굴이 겹쳐 있다. 렌즈 뒤로 숨어 있던 얼굴이 유리 속에서 골목의 얼굴 옆에 나란히 서 있고, 둘 중 누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잠깐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