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Ditto) 소비'의 종말과 오답 노트의 미학
인플루언서를 무작정 따라 하던 소비가 저물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취향을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누구나 한 번쯤은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장소를 검색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편리함은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근육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셔츠를 사고, 유명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카페의 테라스 자리에 앉아 "나도(Ditto) 똑같은 걸로 줘"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행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그 기묘한 복제 도시 속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마주하곤 합니다.
타인의 취향을 무작정 복사하듯 따라 하던 '디토 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유행이라는 안전한 궤도를 이탈해 극도로 파편화된 '나만의 취향'을 찾아 나선 청춘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흐름의 조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남들 다 가는 카페'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시들해진 유행의 증거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인플루언서의 추천이 늘어날수록, 그 공간이 원래 갖고 있던 특별함은 오히려 옅어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수백 개의 계정에서 똑같은 구도로 태그된 장소는, 더 이상 '나만의 발견'이 될 수 없었습니다.
'디토'라는 표현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는 긍정적인 의미였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골라준 선택을 그대로 따르면 실패 확률이 줄어드니까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검증된 답'을 빠르게 찾아주는 인플루언서의 존재는 분명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몇 년간 쌓이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수백만 명이 똑같은 카페의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입니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획일화였습니다.

알고리즘 밖으로 탈출하기
이들은 인플루언서의 피드나 대형 광고가 닿지 않는 골목길 구석구석을 직접 발품 팔아 걷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발굴해 낼 때 짜릿한 희열을 느낍니다. 매주 유행이 바뀌는 대형 편집숍 대신, 주인장의 독특한 세계관이 짙게 배어 있는 공간들을 찾아다닙니다. 예를 들면 특정 연도의 재즈 바이닐만 고집스럽게 트는 바, 혹은 특이한 향조의 인센스 스틱만 들여놓는 모퉁이 가게 같은 곳들입니다.
대중적인 기준에서는 조금 낯설고 투박할지라도, 그 안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은 음악, 패션, 카페를 넘어 취미의 영역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 손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한 사람, 아날로그 라디오를 즐겨 듣는 사람들이 조용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이들은 효율이나 최신 유행과는 거리가 먼 취미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낯섦과 불편함이야말로 '아무나 갖지 못하는 나만의 것'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간의 주인들 역시 대중적인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손님이 많아지는 것보다, 정말 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이 향을 이해하는 사람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래서 이들은 매출을 위해 유행하는 메뉴나 상품을 억지로 들여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집스러움이 소문을 타면서, 정말 그 세계관을 원하는 손님들만 조용히 모여드는 선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손님도, 주인도 서로가 서로를 골라낸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흐름이 소비의 영역을 넘어 삶의 태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로를 정할 때도, 사는 곳을 고를 때도, 심지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도 '남들이 하는 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를 우선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취향의 파편화는 결국 삶의 방식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정답을 향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던 시대에서, 저마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받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탐색의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도 이 세대의 특징입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지 않는 가게를 찾기 위해 지도 앱 대신 두 발로 골목을 누비고, 어느 SNS에도 태그되지 않은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들어가 보는 그 순간의 긴장감. 검색 몇 번으로 모든 정보가 나오는 시대에, 스스로 발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우연성이 오히려 값진 경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굴한 가게를 아무에게나 알리지 않고 소수의 친한 이들과만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아는 곳이 되는 순간, 그 공간의 특별함이 옅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오답 노트를 쓰는 일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발굴된 취향들이 다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아끼던 골목의 바이닐 바가 입소문을 타고, 그 입소문이 또 다른 '디토'를 낳는 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그 흐름을 만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유행을 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이 좋아서 지켜온 공간이 뒤늦게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이 정직한 우연성이야말로, 만들어진 유행과 진짜 취향을 가르는 가장 분명한 기준일 것입니다.
유행이라는 정답지를 과감히 찢어버리고, 나만의 오답 노트(취향)를 써 내려가는 일은 조금 느리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아는 유명한 곳 대신 내가 발굴한 낯선 곳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을 감수하는 과정 자체가 이제는 하나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모두가 같은 정답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풍경. 그것이 지금 골목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변화입니다.
결국 취향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답을 써 내려가며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어제는 낯설게 느껴졌던 골목의 가게가 오늘은 가장 편안한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한때 확신했던 취향이 시간이 지나 시들해지기도 합니다. 그 흔들림과 수정의 반복 자체가, 남이 정해준 답을 그대로 베끼던 삶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감각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남들과 똑같은 '디토'의 삶 대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파편화된 취향을 당당하게 껴안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