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이 남긴 공터에 사람이 걷다
신의주까지 가던 철길이 끊기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에는 공터가 남았고, 사람들이 그곳에 공원을 만들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연남동
경의선은 1906년부터 경성과 신의주를 잇던 철길이었다. 지금의 연남동을 포함한 이 철로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던 그 길이 분단으로 끝났다. 더 이상 신의주로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끊긴 길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폐선 구간은 그냥 버려진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다니지도, 머물지도 않았다. 철길 위에는 풀이 자라고, 고철이 쌓였다. 도시의 상처 같은 공간이었다.
그 상처를 치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폐선 구간을 정비해 공원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경의선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 길은, 이제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이 되었다.
끊김에서 연결로
경의선숲길의 전 구간은 육 킬로미터 삼백 미터다. 그중 연남동 구간이 가장 길다. 이 구간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그곳은 살아난 길이 되었다.
본래 끊긴 철길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혁신적인 일인지는 다른 도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도시에서 폐선 구간은 그냥 버려져 있거나, 개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연남동을 포함한 경의선숲길은 다른 선택을 했다. 끊긴 것을 다시 연결하기로 한 것이다.
경의선숲길이 만들어지면서 연남동의 지형이 바뀌었다. 동네를 가르던 철길이 동네를 잇는 공원이 되었다. 그 과정은 단순한 조경사업이 아니었다. 단절된 역사를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신의주로는 갈 수 없지만, 지상에서는 계속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
폐선이 된 철길은 도시의 상처였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만든 물리적 흔적이었다.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길이 되었고, 버려진 땅이 되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서울시의 선택은 개발이 아니었다. 다른 도시들처럼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을 수도 있었고, 상업지구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남동을 포함한 경의선 구간의 선택은 달랐다. 끊긴 길을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복원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복원 과정은 오래 걸렸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의 정비 기간이 있었다. 단순히 포장도로를 깔고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역사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경의선이 지나던 자리를 따라가며 걷는 사람들이 과거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연남동은 다시 변했다. 폐선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지역이 다시 연결되었다. 버려진 땅이 주민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그것은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불리게 되었다.
공원의 다른 이름
연남동 주민들은 이 길을 연트럴파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연남동 표준으로 바꾼 이름이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불렸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이 공간의 정체성이 되었다.
공원이라는 이름은 정적이다. 하지만 이 길은 매우 동적이다. 사람이 많고, 자전거가 오가고, 음악이 들리고, 때론 축제가 열린다. 본래의 정적인 공원의 정의를 벗어났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것은 공원이면서 동시에 거리이고, 광장이고, 사람들의 것이다.
끊긴 철길이 만든 공터가 그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주민들도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길은 마을의 중심이 되었다.
경의선숲길 전체가 운영과 관리를 맡는 비영리단체 경의선숲길지기가 있다. 그들의 역할은 이 공간의 성격을 지켜내는 것이다. 단순한 관리를 넘어서 시민이 주도하는 공원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이것이 이 공간을 다른 공원과 다르게 만든다.
연남동의 경의선숲길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단절된 무언가를 다시 연결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의 길은 끊겨 있지만, 동네 안에서의 길은 이어졌다. 그것이 바로 이 길이 만드는 의미다. 끊김을 다시 잇는 것. 그것이 가장 강한 치유다.
공원이 만들어질 때 경의선숲길지기라는 조직도 함께 탄생했다. 시민이 주도하는 공원이라는 개념은 다른 도시의 공원과는 다르다. 단순히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주민들이 만들고 지켜나가는 공간이 된 것이다.
폐선 구간을 공원으로 만드는 일은 도시 재생의 한 방식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복원만이 아니라 그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 신의주로 가던 길이 끝났지만, 연남동 주민들의 길은 계속 이어진다. 그것이 이 공원이 추구하는 의미다.
경의선숲길은 계속 변하고 있다. 카페와 소품샵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변화가 처음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끊김을 다시 잇는 의지는 살아 있다. 그것이 이 길을 지켜낼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