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골목을 온전히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그 안의 모든 서사를 단 한 편의 에세이로 엮어내는 메인 콘텐츠입니다.
한강신도시 개발이 남긴 것은 아파트만이 아니었다. 상업과 문화를 담은 수변 운하, 야간이 되면 조명과 음악분수로 변신하는 거리. 베네
일산의 주택가는 길 하나를 경계로 둘로 나뉜다. 한쪽은 수십 년을 고이 자리를 지키는 원주민 마을이고, 다른 한쪽은 지난 십 년을 우
2003년 일산에 처음 선 스트리트형 쇼핑몰은 거리를 상품화하는 법을 보여줬다. 23년이 지난 지금, 이 골목에 남아 있는 것은 수평
2016년 신분당선이 흙을 헤친 자리에 역이 세워지고, 그 위에 사람이 내렸다. 철로 담장처럼 가른 역 동쪽과 서쪽, 두 개의 다른
국방부가 자리 잡은 지 아홉 해 만에, 그 앞 골목에 대구탕집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강풀의 순정만화 속 배경이 성내동 골목의 벽면으로 물질화했다. 2013년 시작된 도시재생 사업은 낙후된 주택가를 만화 거리로 만들었고
1884년 러시아공사관이 들어섰던 자리에서 시작된 이 골목은, 구한말 외교의 중심지에서 근대 종교·교육의 요람으로 변모했다. 덕수궁
서울의 경리단길을 따라 이름을 붙은 행리단길.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택가가 스스로 카페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봉산 등산로 입구, 첫차를 타고 온 이들의 발걸음이 닿기도 전에 가마솥에는 이미 김이 오른다. 1970년대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한
조선 도성의 문이 섰던 자리에서, 백 년이 지나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엔 동쪽 끝 광희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은 골목 전체가 하
1981년 서울프랑스학교가 내려왔을 때 서래마을은 아직 프랑스인의 마을이 아니었다. 그저 강남 부자들이 모여드는 한 동네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던 무릎 꿇은 자리에서 시작된 이태원 우사단길. 오래된 골목은 기우제의 어떤 성질, 빌고 바라는 마음, 하늘과
북촌한옥마을이 주거지에서 관광지로 바뀌어 온 변화 자체가 이 골목의 정체성이 되었다
관광객이 늘수록 주민의 밤은 깊어졌다. 2006년 도시예술 프로젝트로 시작된 벽화마을이 십 년 뒤, 주민들 손으로 벽화를 지우던 일이
조선 초기부터 미술을 담아온 거리가, 일제강점기에는 골동품 상점의 무덤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화방과 공예점의 요람이 되었다. 그
명동은 500년을 한 자리에서 살아온 동네가 아니다. 조선부터 일제를 거쳐 해방, 고도 성장, 글로벌 시대까지 시대마다 몸을 바꾼다.
종묘 앞 좁은 골목에서 1960년대부터 사과박스 위에 시계를 진열하던 이들이 있었다. 한때 300개가 넘는 점포가 빼곡했던 시계 부품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의도는 공동체였고, 결과는 생존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백 년을 이어온 일은 먹는 것뿐이다.
팔판길은 여덟 명의 판서가 살던 곳이었다. 그들이 매일 밟아 닦은 길이 지금은 관광객의 오르막이 되었다. 권력이 떠난 자리에서 문화가
종묘 담장을 따라 밤을 새던 순라군의 발걸음이 멈춘 자리. 그 길 위에 지금 사람들이 느긋하게 앉아 있다.
시장이 있던 자리에 학생들이 만든 길이 사로수길이다. 이름도 다른 길에서 빌려 왔지만, 만드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된다.
연희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궁 연희궁에서 비롯됐다. 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주택들이 들어섰다. 지금 이 골목에는 그 집들 사이
서울을 지은 화강암이 나온 채석장 자리에, 이제 사람들이 옷감을 자르고 바느질한다. 흙에서 나온 것과 손으로 만든 것 사이의 긴 전환
망원정은 높은 곳에서 먼 경치를 내려다보려고 지었던 정자였다. 오백 년이 지난 지금, 이 동네의 매력은 그 먼 경치가 아니라 가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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