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은 남기기로 한 것이다
성수동이 옛것과 새것을 이토록 다정하게 품게 된 데에는 우연이 아닌, 어느 사려 깊은 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골목을 가장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달콤한 커피 향이 아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연무장길
연무장길이라는 이름은 성수가 유명해진 뒤에 붙은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이 자리에서 병사들을 사열했다. 무예를 익히던 자리라는 뜻의 연무장(演武場), 그 이름이 길에 그대로 남았다.
그러니까 이 길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익히고 만드는 자리였다. 병사가 창을 들었고, 그 자리에 공장이 섰고, 수제화공이 가죽을 잘랐다. 지금은 누군가 화면 앞에서 도면을 그린다. 하는 일은 세 번 바뀌었는데, 일하는 자리라는 사실만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동네 이름도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다. 성수는 이 자리에 있던 정자에서 한 글자, 물을 끌어오던 자리에서 한 글자를 가져와 붙인 이름이라고 전한다. 조립된 이름이 백 년 가까이 쓰이다 보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들린다. 이 동네는 이름부터가 서로 다른 시간을 이어 붙인 결과인 셈이다.
일 킬로미터 남짓한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이라면 붉은 벽돌을 기억한다. 렌즈에 가장 많이 담기는 것도 결국 그 벽면이다. 빛바랜 벽돌 건물 옆으로 브랜드의 팝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래된 공장이던 자리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풍경. 성수동을 설명할 때 우리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문장이다.
그런데 그 벽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밤낮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결코 저절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우지 않기로 한 다정한 마음
1970~80년대의 성수동에서 붉은 벽돌은 특별한 재료가 아니었다. 공장이 서고 수제화 업체들이 둥지를 틀던 시절, 그저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흔했던 동네의 기본 마감이었다. 담을 쌓을 때도, 창고를 올릴 때도 같은 벽돌을 썼다. 골목 전체가 한 가지 색으로 물든 것은 미감이 아니라 형편의 결과였다.
원래 흔한 것들은 도시의 양지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기 마련이다. 오래되어 낡아지면 허물고 매끄러운 콘크리트를 새로 올리는 편이 훨씬 쉽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수동의 벽돌들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풍경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온기 어린 개입 덕분이었다. 성동구는 오래전부터 이 빨간 벽돌 공장들과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상인들의 실루엣을 서울이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산업 유산으로 정의하고 소중히 묶어두었다.
2018년부터는 벽돌 건물을 고쳐 쓰는 이들에게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헐고 새로 짓는 대신 원래 있던 벽과 구조를 살리도록 돕는 일이었고, 그 범위는 해가 갈수록 넓어졌다.
건물뿐만 아니라 그 길을 오가던 이들의 모습까지 보존하겠다는 문장 앞에서 잠시 발걸음이 멈춘다. 벽돌은 못으로 고정할 수 있지만, 사람이 오가는 일은 붙잡아둘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문장을 남겨두었다는 것은, 이 골목을 박제된 껍데기로만 남겨두지는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처럼 읽힌다.
겉을 남기고 속을 바꾸는 방식
고쳐 쓰는 방식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듯하다. 벽돌과 철문, 높은 천장과 공장의 뼈대는 손대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 커피를 내리는 자리를 두고, 옷을 걸고, 그림을 건다. 창고였던 건물이 문화공간이 되어 사람을 부르는 곳도 이 길에 있다.
그래서 이 길에는 이상한 겹침이 흔하다. 벽돌 공장 옆에 새로 낸 통유리 쇼룸이 서 있고, 오래된 작업장 간판 아래로 최신 브랜드가 들어와 있다. 철문은 그대로 두었는데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시대가 나온다. 두 시간대가 한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셈이다.
창고였던 건물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자리가 된 사례는 이 길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다. 물건을 쌓아 두던 높은 천장이 그대로 전시장의 층고가 되었고, 트럭이 드나들던 넓은 문이 사람이 드나드는 입구가 되었다. 쓰임이 바뀌었을 뿐 치수는 그대로다.
그래서 지금 이 골목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가
걸어서 십 분이면 닿는 이 길 위에, 천오백 개가 넘는 문이 매일 아침 열리고 저녁에 닫힌다.
이 골목의 얼굴이 된 카페는 서른일곱 곳뿐이다. 그 뒤로, 도면과 자와 모니터가 놓인 방이 사백일흔다섯 개 있다. 카페 하나가 문을 열 때 작업실 열둘이 함께 불을 켠다는 뜻이다.
주말 오후에 우리가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그 벽 안쪽에서, 평일 낮에는 누군가 도면 위에 자를 대고 있다. 사백일흔다섯 개의 서로 다른 아침이 저 창 안에서 불을 켠다. 연무장길은 놀러 오는 거리이기 전에 출근하는 거리다.
주말이 되면 이 골목이 차들을 막아서면서도, 이곳에서 일하는 상근자들과 조업 차량에게만큼은 조용히 길을 열어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화려한 방문객들이 밀물처럼 밀려든 뒤에도, 이 골목의 진짜 주인들은 여전히 묵묵히 일하러 길을 나선다.
한 블록 안쪽, 소음이 숨을 죽이는 거리
성수역에서 내려 안쪽으로 몇 분만 걸으면 소음이 뚝 끊긴다. 대로의 소란이 사라진 한 블록 뒤, 오래된 공장과 새로 들어온 가게가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고 벽을 맞대고 서 있다. 그 어색한 맞댐이 이 골목의 민낯이고, 잘 찍힌 사진에서는 대개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는 자리다.
웨이팅이 길게 늘어선 가게를 지나 방향만 조금 틀면 대기 줄이 붙지 않은 문이 나온다. 같은 길인데 몇 걸음 차이로 공기가 달라진다. 이 골목을 오래 다닌 사람들은 그 몇 걸음을 안다.
공장이 모두 떠났다고들 한다. 떠난 것은 간판이었다. 땀 흘리던 사람은 업을 바꾸어 남았다. 수제화를 꿰매던 자리에 지금은 화면을 들여다보는 청년이 앉아 있다.
붉은 벽돌을 남기기로 한 그 오래된 결정이 지켜낸 것은 벽의 색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이어져 온 일이었을 것이다. 병사가 창을 익히던 자리에서 누군가는 가죽을 잘랐고, 지금은 또 다른 누군가가 선을 긋는다. 그렇다면 이 골목이 언제까지 지금의 온기를 지닐지는 주말의 팝업 수가 말해주지 않는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 아직 남아 있는 저 방들이, 언제까지 밤늦도록 켜져 있는가가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