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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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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쓰는 골목

연무장길에서 팝업이 줄기 시작했다. 사람이 빠져서가 아니다. 이 길이 너무 잘 되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제는 브랜드가 다른 동네를 보고 있다.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연무장길
SCENE 01 : 이번 주의 얼굴

성수에 다녀온 사람들이 요즘 비슷한 말을 한다.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 예전만큼 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골목마다 북적이고 유명한 매장 앞에는 줄이 서는데, 걷고 나면 무언가 허전하다는 이야기다.

성수가 시들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수역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오히려 늘었고, 청소년 이용객은 눈에 띄게 불었다. 외국인은 더 빠르게 늘어서, 이제 명동보다 성수에서 지갑을 여는 쪽이 흔해졌다. 숫자만 보면 이 동네는 계속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도 허전하다면, 사람이 줄어서가 아니라 이 길이 하는 일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전함은 대개 비교에서 온다. 예전에 이 길에서 무언가를 얻어 갔던 사람일수록 그 차이를 크게 느낀다. 처음 온 사람은 그냥 사람이 많은 동네라고 생각하고 지나간다.

발견하는 재미가 있던 자리

예전 성수의 매력은 발견에 있었다. 낡은 공장 사이를 걷다가 뜻밖의 카페를 만나고, 창고 문을 열었더니 예상하지 못한 공간이 나오는 식이었다. 여기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문장이 이 골목의 감정이었다.

그 재미가 이 길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유명해지자 브랜드가 들어왔다. 브랜드가 들어오니 임대료가 올랐고, 오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쪽이 다시 들어왔다. 지금 이 길을 한 바퀴 돌면 카페와 팝업과 플래그십이 번갈아 나온다. 발견할 것이 줄어든 자리에 예정된 것이 들어섰다.

임대료가 오르면 먼저 나가는 쪽은 정해져 있다. 손님이 하루에 몇 명인지로 버티던 가게들이다. 작은 편집숍과 이름 없는 공방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런 곳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걷는 일이 재미있었다. 하나씩 빠져나간 자리는 대개 더 큰 이름으로 채워졌다.

큰 이름은 사람을 부른다. 그래서 방문객 수로만 보면 이 길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다만 부르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골목이 사람을 부르고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날지는 걸어봐야 알았는데, 지금은 무엇을 볼지 정하고 와서 그것만 보고 돌아간다.

동네가 이야기를 만들던 곳에서, 브랜드가 이야기를 들고 와 자리를 빌리는 곳으로 옮겨 간 셈이다. 빌린 자리는 기한이 있다. 계약이 끝나면 이야기도 함께 나간다.

SCENE 02 : 철거되는 며칠

팝업의 성지에서 팝업이 나가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연무장길에서 열린 팝업은 백아흔여섯 번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이백서른세 번이었으니 서른일곱 번이 줄었다. 같은 기간 용산은 예순여섯에서 백예순다섯으로 늘었다. 줄어든 쪽과 늘어난 쪽의 크기가 얼추 맞물린다.

이유는 대체로 돈이다. 연무장길에서 오십 평 남짓한 자리를 하루 빌리는 데 천만 원 안팎이 든다고 한다. 큰 건물은 그 두 배를 넘기기도 한다. 브랜드로서는 며칠 문을 열자고 억 단위를 쓰는 셈이니, 꼭 여기여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물을 수 있는 대상은 이제 많다. 용산이 있고 한남이 있고 연남이 있고 을지로가 있다. 팝업은 성수에서 한다는 문장이 오래 통했는데, 그 문장이 조금씩 헐거워지고 있다.

대관료가 그만큼이라는 것은, 며칠짜리 손님이 몇 년짜리 손님보다 건물주에게 더 나은 계산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계산이 골목의 생김새를 바꾼다.

브랜드가 옮겨 가는 이유가 돈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동네든 팝업이 너무 많아지면 하나하나가 묻힌다. 눈에 띄려고 온 자리에서 눈에 띄지 않게 되는 일이 생기면, 아직 붐비지 않는 쪽이 나아 보이기 시작한다.

비워두기로 한 자리

걷다 보면 비어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셔터가 내려가 있거나 유리 안쪽이 텅 비어 있다. 상권이 나빠졌나 싶어 걸음이 잠깐 멈춘다.

그런데 이 길의 빈자리는 다른 동네의 빈자리와 뜻이 다르다. 일부 건물은 세를 오래 줄 생각이 없다. 장기 임차인을 받는 대신 며칠씩 빌려주는 자리로 남겨 두는 쪽을 택한 것이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비워 둔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의 얼굴은 몇 주 단위로 바뀐다. 지난달에 지나쳤던 문이 이번 달에는 전혀 다른 이름을 달고 있다. 자주 오는 사람에게는 매번 새롭고, 오래 다닌 사람에게는 매번 낯설다.

그 대신 이 길에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 오래 있어야 생기는 것들이다. 단골이 그렇고, 문을 열자마자 인사가 오가는 사이가 그렇다. 며칠 머물다 가는 자리에는 그런 것이 붙지 않는다.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것

그렇다고 이 길이 곧 조용해질 것 같지는 않다. 팝업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이 동네에서 열리는 수가 서울에서 가장 많다. 다만 한 곳에 몰려 있던 것이 여러 동네로 퍼지는 중이고, 그 변화는 골목 안에 서 있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빌려 쓰는 이들이 떠난 뒤에도 이 길에 남는 것은 있다. 앞서 세어본 사백일흔다섯 개의 작업실이다. 저 방들은 팝업이 열리든 닫히든 평일 아침마다 불을 켠다. 임대료가 오르면 이들도 밀려나지만, 밀려나기 전까지는 이 골목의 바닥을 이룬다.

이 길이 어떻게 될지를 가늠하려면 주말의 줄보다 평일의 불빛을 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팝업은 계약이 끝나면 정리하고 나가지만, 저 방들은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이 골목에 아직 남아 있는 여유일 것이다.

밀려나는 속도에도 차이가 있다. 며칠짜리 자리는 계약이 끝나면 그날로 정리되지만, 몇 년을 들여 자리 잡은 쪽은 옮기는 데도 몇 년이 든다. 기계를 들어내야 하고, 거래처에 알려야 하고, 새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 느린 속도가 이 골목이 한 번에 바뀌지 않게 붙들고 있다.

물론 이 길이 처음부터 조용했던 것은 아니다. 공장이 돌아가던 시절에도 트럭이 드나들고 기계가 울렸다. 다만 그때의 소음은 이 골목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던 소리였고, 지금의 북적임은 다른 데서 만들어 온 것을 잠깐 펼쳐 보이는 소리에 가깝다.

팝업 개최 건수와 대관료, 방문객 증감에 관한 수치는 성동구·서울교통공사·부동산 자문사 자료를 인용한 2026년 방문 기록들에서 확인한 것으로, 원자료를 직접 조회하지는 않았다. 작업실 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가(상권)정보를 2026년 9월 7일에 조회한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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